배병우 사진에 붙이는 글
배병우의 카메라는 시간의 한 순간과 공간의 한 구획을 셔터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그의 카메라는 오히려 풍경의 고정된 틀을 풀어헤쳐서 대상이 새로운 시간을 맞아 깨어나게 한다.
그의 뷰파인더는 풍경을 토막으로 끊어내지 않고 오히려 풍경이 그 안으로 흘러들어와서 새 자리를 잡게 하는데, 이 때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내면은 외계의 사물과 행복한 교섭을 이룬다. 그는 바라봄으로써 끌어들이고, 끌어들여서 포개고, 포개서 새롭게 빚어낸다. 이 교섭의 질감과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배병우 사진을 읽는 경이로운 즐거움이다.
배병우의 사진 속에서 빛과 시간은 움직이는 현재이다. 빛과 시간은 운동의 모습과 운동의 리듬으로 화면 속을 흘러간다. 그의 화면 속에서 빛과 시간은 분리되지 않는다. 빛과 시간은 서로 스며있다.
그의 화면에서 빛과 어둠은 대척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개되어 가는 연장 위에서 흐름을 이룬다. 빛이 어둠을 품고 어둠이 빛을 낳는다. 알람브라 궁전의 담벽이나 창덕궁 기와의 처마 끝에서 빛과 어둠은 그렇게 서로 품고 또 빚어내면서 매달려있다. 매달려서 흘러가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시간은 빛 속에 숨어있다. 숨어 있다기 보다는 얹혀 있거나 올라 타있다. 그래서 그 빛은 시간을 건너오는 빛처럼 보이고, 그 시간은 공간을 건너가는 시간처럼 보인다. 그 빛과 시간이 창덕궁회랑과 알람브라의 창문에서 자글거린다. 운동하는 빛과 시간은 멀리서 와서 먼곳으로 가고 있다. 그의 화면은 그 여정의 현재태를 보여준다.
나는 과거를 유효하게 포함하는 현재의 시간을, 그리고 현재가 살아있는 미래의 시간을 나의 모국어로 묘사하고 싶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소망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배병우의 화면을 읽으면서 나는 안다.
김훈(소설가)
사진 작가 배병우는 2년 동안 알람브라 궁전과 히네랄리페의 숲과 정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줄 것을 요청 받았다. 배 작가의 결과물은 일찍이 그라나다(Granada)를 방문하고, 그라나다의 아름다운 숲의 경관에 관한 자신들의 감상을 열렬히 표현했던 수많은 여행자들에 의해 세워진 역사적 기록에 새로운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locus amoenus'(마음에 위안과 기쁨을 주는 장소를 의미하는 라틴어)는 물과 신록의 축제로서 감각의 즐거움을 위해 디자인 되었다. 14세기의 이븐 알-쟈티브(Ibn al-Jatib)는 궁전 성루들이 '녹색 숲' 위에 펼쳐져 있다고 표현하여 알람브라 궁전의 비옥한 자연경관을 묘사했다. 15세기~17세기 동안의 페드로 마티르(Pedro M?tir)와 루이 델 마르몰(Luis del M?rmol)과 같은 작가들은 궁전의 황홀함을 강조하였으며, 제레니모 문저(Jer?nimo M?nzer) 같은 여행가들은 히네랄리페의 아름다운 정원, 분수 및 호수를 찬양했다. 안드레아 나바게로(Andrea Navaggero)는 이 곳을 "스페인에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최고"라고 말했다. 18세기가 되면서 자연에 대한 사랑을 선언한 루소의 '고백'(Confession)으로 영향받게 된 유럽 문화는 계몽주의 사상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후에 낭만주의 운동에 의해 강화되고 부활되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채택하게 된다. 바론 찰스 드 다비에(Baron Charles de Davillier)는 그의 저서 '스페인'(Spain)에서 알람브라 궁전 숲들의 신비한 매력과 에메랄드 천장 같이 솟아나 있는 "느릅나무가 만들어 놓은 녹색 아치들 아래를 걸어가면서 마법의 땅으로 들어간" 듯한 감상에 대해 기술했다.
배병우 작가는 알람브라 궁전의 또 다른 여행가이며, 탐구적인 현대의 방문객으로서, 워싱턴 어빙 (Washington Irving)처럼, 자신이 머물렀던 장소의 주술에 걸려 있었다. 실제로 배 작가는 카메라 렌즈을 통해 알람브라 궁전을 모색하고, 감정하며, 궁전의 변화무쌍한 분위기들과 무한한 다양성, 변화하는 계절을 통한 영속적인 균형성, 그리고 과거와 현재, 꿈과 실제의 공존성을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배 작가는 자연이 제공한 소재들을 이용하여 생생한 기록을 일궈내었다. 그는 예술가적 통찰력으로 자신의 동양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영혼의 정원인 알람브라 궁전을 포착하여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알람브라의 숲과 정원의 영혼을 감지한 방문객이라면 소위 호세 세페다 아단(Jos? Cepeda Ad?n)이 그 언덕의 신비라 찬양했던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워싱톤 어빙처럼, 방문객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알람브라 궁전을 떠납니다.
배병우 작가는, 21세기의 여행가로서 서울 창덕궁의 후원과 같이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의 알람브라 궁전을 소개합니다. 이 두 장소들은 영혼의 정원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배 작가는 각 장소에서 창조된 고품격 문화의 정신을 감각적인 유형의 축제로 변환시켰습니다.
Maria del Mar Villafranca Jimenez(알람브라 궁전 및 히네랄리페 정원 관리위원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