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네게 말하고 싶다. 네가 책임져야 할 대상은 자식과 같이 분명 존재하지만, 너를 책임져야 할 대상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모든 사람의 업보이며 진리다. 명심하고 보상을 바라는 희생 따위는 애초부터 하지 마라. 인간에게는 조건 없는 희생만이 주어지며 보상을 바랄 시 사람은 언제나 상처를 받는다. ---「여행」중에서
“우리 아버지는 말이다. 정말 강한 분이셨다. 세상 누구보다 의지가 강했거든. 아저씨도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살았어. 치약을 머리 부분 먼저 짜서 쓴다고 맞은 적도 있고, 아침에 강아지 밥을 주지 않았다고 맞은 적도 있었지. 정말 나도 아버지가 싫었어. 그런데 아저씨가 오늘 여행을 하는데 말이야.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곳을 찾았더구나. 예전에는 아저씨 자식들과도 그곳을 찾아갔더구나. 앞으로의 여행지를 다 정해놨었는데 모든 곳이 자식들과 가기 전 아버지와 찾아갔던 곳이더구나.” ---「동행」중에서
나는 자식에게는 그래도 괜찮은 아비였다고 생각한다. 허나 네 할아버지에게는 천하의 불효자였다. 세상 아비 중 자식에게 잘했다 말하는 아비들은 있지만 부모에게 잘했다는 아비는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늦은 후회를 했다는 얘기뿐이다. 억울한 건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는 점이다.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낀 죄의식은 미련이었다. 지금은, 바로 혀를 깨물고 죽어버려 당장이라도 하늘로 올라가 네 할아버지께 속죄하고 싶다. ---「자식의 이야기」중에서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아버지가 말이다, 라고 높여 칭한 적이 없었소. 항상, 아비가 말이다, 라고 스스로를 낮춰 불렀소. 댁의 아버지는 어떠오” (……) “나나 댁이나, 우리 아버지나, 댁의 아버지나, 아버지보다 아비로 살아간 시간이 더 많은가 보오. 그러니 우리 기억에도 분명, 아버지가 말이다, 라고 칭했던 우리 아버지들이 존재하건만 우리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나 보오. 참으로 못된 우리요.” ---「아비라면 말이다」중에서
네 아버지, 믿어 보아라. 반드시 이겨낼 테니. 아비들은 모두 같다. 다만 아비들의 능력에 따라 무게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걱정하는 아비들의 마음은 능력이 있든 없든 한결같다. 네 아버지도 그럴 게다. 잠시 일어서는 과정이 힘에 부칠 뿐이다. 반드시 일어난다. 아비라면.” ---「아비라면 말이다」중에서
나중에 내 나이가 되면서 우리는 다시 아버지의 추억을 간직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삶이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음을. 내 삶이 아버지와 같았음을. 오묘한 감정 속에 아버지를 추억하게 되며 동병상련의 기억들 속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편지’에서, 217~218쪽.
치매 판정을 받은 노년의 아버지와 명예퇴직을 당한 중년의 아들이 시간차를 두고 같은 추억을 더듬어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끝내 말하지 못한 채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삶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한편 아들은 30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퇴직을 당했지만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출장을 간다고 말한 후 용산역으로 향한다. 부자는 같은 추억이 깃든 장소를 시간차를 두고 거치며 동행 아닌 동행을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로, 아들로, 남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