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현대사에서 큰 업적을 남기거나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그린 예술 작품들이 드물다. 그렇다고 전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깊은 이념적 분열이 낳은 너그럽지 못한 사회 풍토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사소한 결점이나 과오를 터무니없이 부풀려서 나라를 위해 애쓴 평생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심하다. 예술계의 이념적 편향이 유난히 심해서 관점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사정도 거든다.
어쨌든, 예술가들이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기를 꺼려서 그들의 처지와 역할에 대한 예술적 이해가 결여되면, 그 사회는 자신을 성찰할 중요한 수단 하나를 잃는다. 예술적 성찰은 다른 것으로 대신하기 어려우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만큼 얄팍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들에서 나오는 천박함의 뿌리 하나가 거기 있다고 나는 여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그의 역할이 그리도 중요하고 업적이 그리도 크므로, 그의 삶을 살핀 예술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안타깝다.
《박정희의 길》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듯, 이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제시한 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제시한 길은 해외로 뻗었다. 그 길이 옳은 길이었으므로, 우리나라는 경제를 발전시켰고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해외로 뻗었으므로, 그 길이 처음 만난 나라는 일본이었다. 지리가 나라의 숙명이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서양 문명이 동아시아에 들어오는 도관(導管)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조건은 문화적으로도 한국은 일본을 거쳐야 해외로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박 대통령은 두 나라의 외교 정상화를 추구했다.
그런 결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실행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한일수교를 반대한 ‘6·3세대’에 속한 나는 현장에서 체험했다. 그래서 나는 박 대통령의 큰 업적들 가운데 한일 수교를 으뜸으로 꼽는다. 시간적으로도 그것이 맨 먼저 나왔다.
만일 박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두 나라는 아직도 수교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것은 나라가 가야 할 길을 뚜렷이 인식하고 그 길로 국민들을 이끌 수 있었던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위안부 소녀상’ 문제가 근년에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덧나게 하는 논점으로 추가된 것을 생각하면, 이 점이 아프도록 명백해진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에게 무슨 비참함을 강요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지금 강대국이 되어 동아시아에 군림하려는 중국의 행태가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수교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므로, 일본과의 수교는 박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두 나라에 다행스럽게도, 당시 일본엔 걸출한 지도자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대신이 나라를 이끌었다. 그는 한일 수교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센 나라를 이끄는 박 대통령의 처지도 충분히 이해했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두 위대한 지도자들의 협력은 포항종합제철의 건설로 뚜렷한 성과를 냈다. 다른 선진국들이 한국의 종합제철 사업을 가난한 나라의 백일몽으로 여겼을 때, 일본 정부와 제철기업은 박 대통령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잊지 못할 친구를 얻었다.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正英) 주한 일본대사의 헌신적 봉사가 없었다면, 박 대통령의 굳은 의지만으로 포항종합제철이 세워졌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의 기억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 역사의 물길이 남긴 짙은 앙금을 지금도 조용히 씻어내고 있다. 함께 일한 경제기획원 요원들이 ‘김 대사’라 부른 그의 영전에 이 작은 작품을 바친다.
생각이 운명을 결정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사람의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갖가지 생각들이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념의 결정적 싸움터는 사람의 뇌다. 선거든 시가전이든 사람의 뇌라는 싸움터에서 나온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에 감정이 근본적 영향을 미치므로,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예술 형식은 영향력이 크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이런 사정을 일찍부터 깨닫고 영화나 연극을 통한 선전에 공을 들였다. 반면에, 자유주의 국가들은 예술을 통한 영향력의 확대에 둔감하고 서투르다.
우리 사회에서 나오는 예술 작품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에 적대적이다. 그런 작품들의 영향력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깊이 배어들어서 마음을 지배한다. 원래 ‘예술적 현실참여’라는 평가는 체제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대해 부여된다.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성취를 드러내는 ‘학예회 수준’의 연극 공연이 ‘예술적 현실참여’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건강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인가 보여준다.
올해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그 분이 우리 운명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온 사회가 그 분의 공과를 열심히 논의하고 그 분의 영도 아래 대한민국이 이룬 위대한 성취를 기리는 것이 당연하다. 현실은 다르다.
전망이 암울할 때면, 나는 오든의 한 구절을 뇌곤 한다, “모든 힘들이 다했을 때, 우리는 듣는다 잘못된 시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이 가리킨 길을 보여주는 공연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노래는 드물 터이다. 그리고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지식인에겐 가장 깊은 뜻에서 행운이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