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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리뷰 총점7.3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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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99쪽 | 555g | 152*225*20mm
ISBN13 9791196135508
ISBN10 119613550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피해의식이 아니다, 피해의 경험이다’ 경향신문 기자 김서영의 글 중에서
돌아보면 나는 그놈의 ‘피해의식 있다’는 딱지와 낙인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다. 꽤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위 두 가지 일화를 이토록 자세하게 털어놓는 건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페미니스트임을 당당하게 내보이고 싶지만 피해 경험을 공개하면 “피해의식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됐다.” “역시 피해의식 있는 애들이 페미니즘에 빠진다.”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그 비아냥거림이 페미니스트로서의 내 의견과 주장에 흠집을 내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를 내놓는 건, 여성의 ‘피해 경험’과 일상적 두려움을 ‘피해의식’(피해망상)이란 오염으로부터 구하고 싶어서다.

- ‘더 더러워지는 중입니다’ 잡지 사심 에디터 최나로의 글 중에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는 이유 없이 나타난 게 아닌데, 사람들의 관심은 ‘일베 말투를 쓰는 젊은 여자들’이라는 점에만 집중됐다.
‘일베 말투를 쓰는 젊은 여자들’에는 정형화된 몇 가지 이미지가 겹쳐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20대 여자, ‘살만 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딸이며, 남자들을 미워하는, 까칠한 프로불편러 그리고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 메갈리아에 호의적인 진보 인사나 페미니스트들마저 가끔 메갈리안을 이렇게 일반화한다. 그러나 내가 메갈리안으로서, 잡지가 출간되고 난 이후로는 잡지 사심의 에디터로서,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수많은 메갈리안들을 만나본 후 내린 결론은, 그들을―우리를―하나의 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나부터가 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틀에 맞지 않는 메갈리안이다.

-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강남역 10번출구 활동가 안현진의 글 중에서
지난 해 5월 18일,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진행된 자유발언대에서 처음으로 많은 이들 앞에 내가 당한 성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러자 또 다른 증언이 이어졌다. 이후 자유발언대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증언의 행렬에 동참했다.
당시 온라인에는 자유발언대에 참가자들의 사진이 게시글로 올라와 품평을 당하는 한편, 각종 위협을 암시하는 댓글이 달렸다. 자유발언대에 참가한 이들은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벌 떨면서도 참가했다”며 “다시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살아남은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발언했다. 우리는 위협을 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함께 항의하고, 서로를 지켜주며 고백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도 그랬어’라는 고백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고백이 되어 돌아왔다. 두려움이 용기가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왜 찍히고도 사랑이라고 했나?’ 여성신문 이세아의 글 중에서
결국 구글 검색창을 켰다. ‘애인이 성관계 중 몰래 동영상을 찍었어요’를 검색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이런 일에까지 구글의 도움을 빌리다니! 그런데 Q&A 결과만 수백 개가 뜨는 게 아닌가. 끔찍한 일을 겪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하지만 손을 내밀지 못해 익명으로만 조심스레 입을 연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글 제목을 훑어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런 상황에 처한 여자가 나 혼자는 아니라니 조금은 안도해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불편한 진실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들은 드물었다. “사랑한다면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세요. 이런 데 글 올려서 망신당하지 말고. 자랑도 아니고...” 댓글 한 줄에 맥이 빠졌다.

- ‘클리토리스 감수성’ 페미니즘 퍼포먼스 아티스트 홍승희의 글 중에서
끼워 맞추고 강요하고 소외되는 삽입감수성 VS 마주보고 문지르고 쓰다듬는 클리토리스 감수성
그러나 나는 한동안 파트너와 섹스할 때 포르노감수성에 나를 끼워 맞췄다. 흥분하려고 남자친구와 함께 포르노와 야동를 보곤 했다. 커다란 화면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체위를 따라하면서. 포르노 감수성을 좋아하고, 거기서 흥분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두 야동에서 섹스를 배우니까 똑같이 어디어디를 애무하고 삽입하고 사정하고 끝나버리는 섹스를 한다. 이상한 일이다. 먹는 음식도 매일매일 다르고, 핸드폰도 이렇게 다양한 세상인데 왜 섹스는 포르노 감수성으로 획일화되어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포르노 감수성에 나의 감각을 끼워 맞추려 했을까. 나는 파트너와 침대에서 섹스 후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자위를 하면서 오르가즘을 따로 챙겼다. 나의 오르가즘은 침대에서도 소외되었다.

- ‘소라넷을 아웃시켰다’ 디지털성범죄아웃 대표 하예나의 글 중에서
어느 날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남자들의 은혜를 모르는 괘씸한 여자들이라는 글에’ 당시 여성 노동의 흔적은 죄다 뒤엎어 찾아봤다.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가발 공장으로, 섬유 공장으로 다니는 소녀들의 사진이 가득한 그때 그 시절. 똥물을 맞아가며 노동운동을 한 여성들, 그리고 당시 성매매의 현장을 보여주는 몽키 하우스, 알고 보니 한국은 여자들의 피눈물로 세워진 나라라는 걸 덕분에 알았다. 나는 ‘키보드 싸움’ 의 논쟁을 볼 때마다 밤새도록 관련 반박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그것이나의 첫 번째 페미니즘 운동이 되었다. 소라넷 폐지 운동도 그러한 맥락으로 참여했다.

20대~30대 페미니스트의 고백 Chapter2 더 이상 개념녀가 되지 않겠다
홍승은 / 계속 말하겠습니다
달리 / 나는 너다, 너는 우리다
조남주 / 딸, 엄마, 페미니스트
파랑 / 괜찮아, 너의 이야기를 해
서보라 / 메갈리아, 워마드 그리고 헬페미


- ‘계속 말하겠습니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의 글 중에서
글을 쓸 때마다 침묵으로 안전해지기 바라는 욕망과 불쑥 솟아오르는 내 안의 무언가가 대립한다.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한 혐오의 역사와 그것을 뚫고 나오려는 내 목소리가 격렬하게 다툰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발견한 글, “알지, 아름답게 살려면 존나 싸워야 한다.” ‘존나’ 싸우는 법은 간단하다. 침묵을 강요받았던 존재가 입을 떼는 순간, 세상을 크게 놀랄 것이다. 여성은 누구든 각자만의 돌멩이를 몸에 지니고 있다. 그 돌멩이를 내 안에 간직하고 스스로를 무겁게 할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던져서 함께 흔들릴 것인가.
평화는 약자의 침묵을 전제한다. 그것이 평화라면, 나는 그런 평화를 거부하고 싶다. 아직 내면에 감춰진 각자의 돌멩이가 던져질 때 크기와 상관없이 물살은 흔들린다. 소란스러운 혁명의 시작이다. 다시, 내 몫의 말을 시작한다.

- ‘나는 너다, 너는 우리다’ 지글스 편집장 달리의 글 중에서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든 건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친척, 친구, 애인, 동료, 선생님, 선배, 후배, 이웃들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영화감독, 미술작가, 소설가, 시인들이다. 택시기사, 버스기사, KTX 승무원, 항공사 승무원들이다. 카페 직원, 서비스센터 상담사,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들이다. 청량리, 미아리, 신사동, 시골 다방, 작은 섬의 유흥업소 여성들이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지나가다 나를 툭 치고 “씨발년아 똑바로 보고 다녀!”라고 욕했던 일반 남성 시민들도 나의 페미-파워에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니 우리는 이토록 페미니스트 양성소와 같은 사회, 국가, 행성에 살고 있다!(할렐루야?)

- ‘딸, 엄마, 페미니스트’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의 글 중에서
아이에게는 분명 아빠가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있는데 왜 육아에 따르는 모든 물리적 정신적 노동은 엄마인 나만의 몫인지 그때는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가사 및 돌봄 노동에 재능과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 일을 떠맡은 상태였고, 못하는 만큼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로지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생명 하나가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다. 습관대로 성실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 ‘괜찮아 너의 이야기를 해’ 여성단체 활동가 파랑의 글 중에서
“어디 기지배가 재수없게 축문을 읽어!”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이들과 하나가 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때가.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대학 학과 행사로 고사를 지냈었는데, 거기서 과 부학생회장이 축문을 읽어야 했다. 부학생회장이던 내가 축문을 읽으려 하자 나보다 한참 높은 학번의 남자 선배가 막아섰다. ‘기지배’가 축문을 읽어선 안 된다고.
대학교 2학년 과 부학생회장이었던 나는 남자 선배들에게 ‘부대장’으로 불렸다. 그렇게 나름 남자 선배들에게 ‘존중’받던 나는 내가 그들의 ‘동지’인 줄 알았다. 밤새 같이 술을 마시고, 어깨 걸고 동지가를 외쳐 부르고, 손잡고 시위현장을 뛰어다니며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으니 말이다. (당시 소위 ‘운동권’에 왜 여자 선배들이 드문지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 ‘메갈리아, 워마드 그리고 헬페미’ 메갈리안과 워마드 활동가 서보라의 글 중에서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소수자 운동들이 날로 팽창하고 있다. 그 사이에 교차성의 문제와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워마드가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연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협상하고 비판하고 지지하고 때로 대립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워마드가 하고 있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은 워마드를 일베와 같이 취급하며 골치아픈 문제적 집단으로 인식하기 전에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는, 워마드라는 웹사이트 이름 뒤에 숨은 수많은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워마드가 익명으로 싸우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있고 그만큼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만큼 여성들이 절실하고 절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0대 페미니스트의 고백 Chapter3,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정박미경 /나는 페미니스트 힝크족입니다
변경미 / 홀로인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박선영 / 밥상 뒤엎은 년이 다시 차리는 거여
박지아 / 나는 여성‘운동’을 한다
김영란 / 이프 마케터의 깃털만큼 가벼운 고백
전현경 / 나는 매일 페미니즘을 목도한다
이진옥 / 탄성적인 페미니스트


- ‘나는 페미니스트 힝크족입니다’ 전 이프4대 편집장 & 현 소설가 정박미경의 글 중에서
이렇게 해서 나는 무자녀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선택이기도 하고 능력 부족이기도 했다. 임신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 능력부족을 만회하기 위한 의학적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내 선택이기도 했다. 아이 낳기를 접고서도 평안할 수 있었던 것,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의 신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정확히는 딱 한번만 신파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은 역시나 페미니즘의 은총이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이십 년 세월이 나를 살렸다. 모성 신화에 거리를 둘 수 있었고 여자의 몸을 자궁으로 환원하는 남성중심의 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기에, 신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페미니즘은 늘 그렇듯 내게 생존이요 자존감이고 지금의 삶을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식인 것이다.

- ‘홀로인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대문풀뿌리여성단체 너머서 활동가 변경미의 글 중에서
그렇게 일과 사람을 만나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일을 하면서 육아에 몰입하며 불안했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고, 나 같은 초보엄마들에게 공감어린 조언을 하면서 그들의 성장을 돕고, 반추해 나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나 또한 성장시켰다. 여성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성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 몰입하거나 혹은 의존하거나 ‘나’라는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타인에게 맹목적으로 몰입 혹은 의존한다는 것이 나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힘들게 할 수 있는지 깨닫고 홀로 서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외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면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 ‘밥상 뒤엎은 년이 다시 차리는 거여’
이프 팟캐스트 웃자!뒤집자!놀자!진행자 조박선영 글 중에서
고백컨대 나는 잠시 나를 포기했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부모님을 잃는 그 모든 과정에 나는 나를 놓아버렸었다. 그러니 나를 불행하게 했던 ‘죄책감’은 순전히 나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다.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말을 잠깐 믿었다. 부모님을 잃은 상실감이 아이를 통해 채워질 줄 알고 ‘임신과 출산’을 감행했으나 독박육아의 덫에 걸렸을 뿐이고 그 독박육아의 덫을 핑계 삼아 나 자신을 한없이 지워냈다. 얼마나 불행했는지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과거에 점령당하지 않고 내 길을 찾은 현재의 내가 중요하다.

- ‘나는 여성’운동‘을 한다. 서울시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 박지아의 글 중에서
사실 나는 여성운동이 맘에 안들 때도 많았다. 물론 여성운동이 없다면 지금의 내 삶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언제나 갖고 있다. 1970년대 선배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나는 합의이혼이라는 당연한 절차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선배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나는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내 몸무게와 신장을 밝혀야 했을 것이다. 1990년대 선배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성폭력 사건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가해자에게 ‘당신 그냥 법으로 합시다’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성운동에 불만이 많았다.

- ‘이프 마케터의 깃털만큼 가벼운 고백’ 김영란의 글 중에서
난 진지하게 여성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성운동의 치열한 경험도 없다. 니가 무슨 페미니스트냐 할 수 도 있다. 나의 가벼움이 탐탁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식으로 완전무장한 전사만이 페미니스트라면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남들이 뭐라든 뭔상관이랴 난 그냥 좋아하는 언니들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 하다 보니 이렇게 생긴 사람으로 된 거다. 나에겐 깃털만큼의 가벼움과 유쾌함과 어디에 내놔도 별로 쫄지 않는 뻔뻔함이 있다. 이게 바로 이프 언니들이 알려준 페미스니트다. 그래서 나도 말한다.
너의 욕망을 숨기지 마! 꼴리는 데로 잘 살아봐! 언니가 응원한다!

- ‘나는 매일 페미니즘을 목도한다’ 아름다운재단 간사 전현경의 글 중에서
1996년 5월 29일 저녁 7시 몇분, ‘고대생 이대 대동제 집단 성폭력 사건’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었다. 이대 대동제 행사장에 고대생 400여명이 집단으로 난입하여 행사참여자들이 짓밟고, 다음 날 행사를 위해 설치된 무대를 부쉈다. 생명공학과 95학번의 차모씨는 기차놀이 대형으로 지나간 남자들에 의해 팔 뼈가 여러조각으로 부서졌는데, 응급차로 옮기면서 본 그녀의 티셔츠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그녀가 실려간 후에도 삼사십분간 더 지속된 난동장면, 그리고 사고를 키우지 않기 위해 그 혼란 중에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조용히 노래를 부르던 이대생들을 보며 전체 행사 기획자였던 내 눈과 가슴에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려도 그 불은 잦아들지 않았다. 내 인생 전부를 써서라도 저 놈들을, 저런 일들을, 이런 걸 가능하게 한 지금의 세상을 1도라도 바꾸지 못하면 이 불에 내가 타죽을 것 같았다.

- ‘탄성적인 페미니스트’ 여.세.연 대표 이진옥의 글 중에서
정치학과 여성학은 여러 모로 닮았다. 여성학과 정치학은 현실을 설명할 것인가 또는 현실을 바꿀 것인가라는 이중 긴장을 공통적으로 내재하고 있고, 이는 학문의 목적이 실천 지향에서 출발했다는 걸 지시한다. 인문학적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이 출산한 정치학에 젠더를 불어넣고 싶었고, 그를 통해 정치학을 페미니스트 변혁의 도구로 삼고 싶었다. 이프를 읽고 떠날 수 있던 행운을 누리며, 영국에서 난 나의 바람을 이루었다. 하지만 정치학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한편 생계를 꾸리는데 더 집중해야 했고 활동가로서의 과거와 연구자로서의 현재 사이에서 방황했다.

40~50대 페미니스트의 고백 Chapter4, 페미니즘 콤플렉스가 있었다
박미라 / 우리는 왜 그토록 불화했는가
권혁란 / 여자에게 문학을 가르쳐 주겠다고요?
제미란 / 가위 리추얼, 나는 자유를 입는다
김미경 / 페미니즘은 내 인생의 나침반
황오금희 / 어쩌다 페미니스트


- ‘우리는 왜 그토록 불화했는가’
이프 초대편집장 & 현 심신치유 상담가 박미라의 글 중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때도 나의 고민은 친구들과 달랐다. 친구들이 세상의 차별, 그리고 그 차별과 싸우는 것에 몰두하는 동안 나는 페미니스트들간의 우정이나 관계 맺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나는 선배 페미니스트나 사회에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성공한 여성들을 존경하고 선망했다. 아니, 어느 집단에서든 페미니스트는 다 멋져 보였고 사랑스러웠다. 그 멋진 여성들과 진정으로 멋진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어주었고, 그들의 장점과 미덕을 찾아냈으며 그들에게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데 힘을 다했다. 그것이 내가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의리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 여성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는 건 아니었다.

- 여자에게 문학을 가르쳐주겠다고?
이프 3대편집장 & 『트레블테라피』저자 권혁란의 글 중에서
술잔을 붙든 손으로 생의 비밀을 혼자만 아는 양 한껏 문학의 포즈를 취한 후, 앙상한 문장들을 꿰어 묶은 자기 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옆에 끼고서 여자야, 이리 와, 다 가르쳐 줄게, 시인 만들어 줄게, 작가 하게 해줄 게, 그러니 일단은 한 번 하자! 나랑 연애해야 사랑을 알지. 나랑 자봐야 남자를 알지. 내 문학세계를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내 줄을 잡아야 등단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소리쳤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제법 작가의 포즈로 찍은 사진 속 얼굴을 본다. 제발! 문학을 가르치지 말아줘. 그냥 성석제 소설 속의 저 문학 폐인처럼, 머리칼을 붙들고 골방에 앉아, 자기만의 깊디깊고 넓고 넓은 세계를 이루는 꿈을 꾸면서 문하-학,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혼자 뱉어줘. 혼자 장렬히 산화해 달라고.

- ‘가위리추얼, 나는 자유를 입는다’
이프 초대 아트디렉터, 아트 워크숍 리더 제미란의 글 중에서
본시 근본 없는 재단이니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천을 다 망쳐버릴까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옷이란 자고로 이러이러해야하는 건 아니야?
오래된 고정관념이 가위의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럴 땐 차라리 눈 질끈 감고 주저와 두려움을 잘라버렸다.

나의 누더기 옷을 입은 여성들은 자.유.를 입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체를 조이거나 구속하지 않는 스타일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희와 놀이로 만들어진 옷의 에너지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 ‘페미니즘은 내 인생의 나침반’ 서촌옥상화가 『서촌오후4시』저자 김미경의 글 중에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의 고백’이라는 섹시한 제목에 홀려, 덜컥 쓰겠다고 해놓고 한참을 도망 다녔다. ‘고백’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태껏 세상에 이야기하지 못했던 뭔가를 이야기해야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떠올린 게 스물세 살 딸이다. 미국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지 1년차. 맨해튼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아르바이트하며 ‘페미니스트 글쓰기’를 시도 중인 딸. 딸이 내게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 ‘어쩌다 페미니스트’ 이프 2대편집장 & 마이스토리돌컴퍼니 대표 황오금희의 글 중에서
더 늙기 전에 고백해야겠다. 나에겐 페미니즘 콤플렉스가 있었다. 나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폭력 혹은 차별을 겪다가 자력갱생한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여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모순에 항거하며 머리끈을 불끈 매고 광장으로 나온 여성운동가도 아니다. 학생운동을 하다 운동권내 남성들의 여성차별을 내부고발로 항거한 진보진영 열혈 여성활동가도 아니다. 여성학 이론으로 무장하고 탁월한 글 솜씨로 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칼럼니스트도 못 됐다. 구구절절 간증할 과거지사도 없고, 비분강개하며 ‘주먹 쥐고 일어서’ 할 사건사고에 얽힌 일도 없다. 있었어도 젠더감수성이 둔해서 감지를 못했거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내겐 페미니스트가 될 밑천이 없었다. 페미니즘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페미니즘은 내 일거리였다. 페미니즘 진영이 일터였고, 페미니즘이 업무의 대부분인 직업을 가진 것이다. 밥벌이로 페미니즘을 만난 나는 그야말로 ‘어쩌다보니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50대~60대 페미니스트의 고백 Chapter 5,
미친년이란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야
유지현 / 아름다운 여성주의자로 사는 것이 복되도다
고은광순 / 62세 내 인생의 페미니즘
유숙열 / 놈들이 나를 미치게 했고, 엄마의 재혼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 ‘아름다운 여성주의자로 사는 것이 복되도다’ 시집『달의 역사』저자, 시인 유지현의 글 중에서
차가운 분노가 냉기처럼 나를 관통해 갔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래, 나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면, 싸워야겠지.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기꺼이 내 손에 피를 묻히겠다! 이건 부당하니까, 단 하루를 살아도 이건 아니니까.
네댓 살 때였나. 작은 한옥에 살았는데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이 있었다. 빨랫줄 한가운데 아버지 빤쓰와 남동생 빤쓰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펄럭이고 있었고, 엄마 속옷과 내 속옷은 어두침침한 재래식 부엌 한 귀퉁이에서 마치 죄인처럼 숨겨져 겨우 꾸들꾸들 마르고 있었다.
“엄마, 왜 우리 건 여기다 놨어?”
“아휴~ 여자들 속옷은 남들에게 보이면 안 돼~”
이상했지만 난 너무 어려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엄마가 그러니까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내 기억 속 최초의 불평등은 바로 그 장면일지 모르겠다. 햇빛 받으며 긍정적으로 펄럭이던 남자들 속옷과 어두운 부엌에 그늘로 숨어있던 여자들 속옷. 이상했다. 똑같은 사람인데. 똑같은 옷인데.

-‘62세 내 인생의 페미니즘’ 평화어머니회 대표 고은광순의 글 중에서
나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석한 다음날 결석계를 가지고 가면 담임이 ‘너 어제 결석했니?’라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그 말은 오래도록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존재감 없는 어린 시절을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해주었다. 어린이나 젊은이가 뛰어난 면모를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열 번 된다고 격려했던 지혜로운 옛 어른들처럼 사랑의 눈빛으로 지켜보며 기다려줄 일이다. 내가 뒤늦게 씩씩한 페미니스트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뒤늦게 철이 들기도 한다. 호주제폐지운동을 하면서 마초들과 살벌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그들 역시 미숙한 시대에 휘둘렸던 미숙한 존재였다. 시대가 성숙해지면 그들에게도 진화할 기회가 온다. 그러니 무시하고, 경멸하고, 증오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들은 자기의 영적레벨을 낮은 상태로 붙잡아두어 정확하게 해결할 길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도움도 얻어내지 못하고 혼자 씨를 뿌리고 밀을 거두어 빻고 빵을 만드는 암탉 우화를 생각하며 내가 그 암탉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서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면 세상에 태어나 저질렀던 민폐를 줄이는 일이 될 테니 얼마나 뿌듯한가.

- ‘놈들이 나를 미치게 했고 어머니의 재혼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이프북스 대표 유숙열의 글 중에서
결국 나의 논설위원실 진입은 논설실장의 반대로 불발되고 나는 다시 편집국으로 내려와 후배가 부장으로 있는 문화부 소속 여성전문위원으로 발령이 났다. 그러나 배당된 지면은 없이 부장으로 있는 후배에게 일일이 기획을 들이밀어 후배기자들의 지면을 경쟁해서 빼앗아 와야 하는 고약한 입장이 되었다. 당시 문화부장이었던 B부장은 등단한 시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정희 시인과 함께 지리산에 갔다가 고시인은 실족사하고 혼자서 살아온 바로 그 사람이기도 했다. 기획안을 써내는 족족 퇴짜를 놓는 그를 보며 “이 X한테 한국의 페미니스트 죽이는 귀신이 붙었나?”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치부장을 했던 L부국장(그도 후배다)이 자기가 내 담당이 됐다며 나를 만나자고 했다. 편집국에서 나에게 지면도 안주면서 후배들 사이에 뺑뺑이를 돌리는 꼴이었다. 나는 문화일보의 ‘나병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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