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근본을 장악하라!’
이해와 수용의 모토입니다. 저의 학습 방식이 추구하는 슬로건입니다.
기존의 학습 방식의 문제점은 그 학습 방식이 본질이 아닌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입니다. 편의상 두 축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한 축은 각종 논리 도구들을 쏟아내며 지극히 선생 편의적인 방식의 ‘논리 지상주의자들’의 학습 방식이, 다른 한 축은 모든 것을 1:1 대응으로 바라보는 ‘1:1 대응 만능주의자들’의 방식이 있습니다.
특히 이런 학습 방식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학생은 이미 그러한 국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학습 방식에서는 학생들이 이미 그러한 국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지극히 선생 편의적이면서 피상적인 학습 방식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 탓에 어느 정도 국어 능력이 발현되어 있는 학생의 경우 그 수업을 듣고 성적이 올랐지만, 아직 그런 국어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학생의 경우 수업을 들어도 성적이 오르지 못해 좌절감만 겪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이런 후자의 모습은 어떤 강사의 수업을 듣든지 간에, 하위권에게서 비일비재하게 있어왔습니다.
저는 하위권이 머리가 나빠서 하위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어떤 능력’이 발현되지 못해서 문제를 잘 풀어내기 힘들었고, 그에 따라 학습 성과가 저조하여, 하위권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질문은 명확합니다. 이런 학생은 어떤 학습을 해야만 그런 잠재되어 있는 국어 능력이 ‘발현’될 수 있을까요?
잠재된 국어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본질적인 학습으로, 저는 이 책에서 ‘시 이해와 수용 쓰기’와 ‘비문학 이해와 수용 쓰기’를 제시합니다.
* 시 이해와 수용: 시 날 것 그대로 파악하자는 것에 대해서
시는 시인 자신의 특유의 시각에서 다분히 자신의 정서를 드러낸 식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비유적 표현은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점이 생깁니다. 그렇게 온전하게 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시인의 생각’을 학습해야 할까요?
만약, 고등 교과 과정 내라면, 아니 ‘수능’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본질적인 시각에서 볼 때, 시인의 생각도 주관적인 것이며 실제 어떤 시인의 시가 시험에 나왔을 때조차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시험에서 밝히는 시(주로 〈보기〉를 제시하면서 밝힙니다.)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 비문학 이해와 수용: 사고력에 대해서
‘이해력’을 기르려면 사고력과 판단력을 길러야 합니다. 여기서 ‘이해력’이란 그때 그 시점에 텍스트를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왜 이해와 수용에서는 현대시와 비문학만 학습할까요?’에서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특히 국어는 수학보다 이런 이해력을 더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의 발문에 비해 국어는 그 지문의 길이가 훨씬 더 길고, 이런 긴 것을 ‘이해’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어는 수학과 달리 제시문의 이해된 정보들을 ‘최소한 희미하게나마’ 머릿속에 간직하고서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수학보다 더 높은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실전적인 이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문장 수준이든, 전체 글 수준이든 간에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준비를 제대로 갖추도록 해 주는 것이 ‘시와 비문학의 이해와 수용 연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부단히 연마해야 합니다.
한편 ‘사고력’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사고력’의 정의를 새롭게 내립니다. ‘사고력’이란 ‘새로운 정보를 끄집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비문학 학습’으로 한정해서 보자면, 비문학 텍스트를 이해하고 나서 문장 수준에서, 문단 수준에서, 혹은 그 이상의 수준에서 새로운 정보를 끄집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또한 더 자세한 것은 ‘왜 이해와 수용에서는 현대시와 비문학만 학습할까요?’에서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사고력 연습을 부단히 한다면, 반드시 실전에서 제시문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시와 비문학 이해와 수용 쓰기를, 목표로 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랍니다.
정도(正道)로 공부하여 성취하는 바를 이룹시다!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