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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나그네

바람 나그네

: 켜켜이 쌓인 외로운 그림자 어루만지는 소설

이기원 | 한솜 | 2010년 1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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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50g | 153*224*20mm
ISBN13 9788957482179
ISBN10 895748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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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가 넘어 심야 할증이 풀리는 시간이 되었건만 도무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한 평 남짓의 보금자리가 없어 전깃줄에 걸쳐 앉은 새처럼 동이 터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동이 트면 날개를 퍼덕여 푸른 창공으로 솟으려는지 모른다. 아니면 가장 거리가 먼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나름대로의 추억 여행을 즐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행인들을 의식한 듯 까만 모자를 눌러쓴 채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또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9

태평양 한가운데서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태풍에 휘말려 해저 암석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달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조용히 대문을 열고 나와 골목길을 재촉했다. 가로등을 오른쪽에 끼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거의 자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저 한참을 걷다 보니 ‘흑장미’ 골목이 나타났다. 연어처럼 회귀 본능일까? 태어나고 자란 이곳이 스스로를 이끌었는지 모른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손님도 보이지 않는 ‘흑장미’엔 색시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미스 진이 문 닫을 채비를 하고 있다. --- p.28

막걸리 사발을 앞에 놓고 조촐한 회갑을 자축하는 달구는 순국선열에게 묵념을 올리듯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발 속에 작은 돛단배가 떠있다. 윤희와 두 아이가 타고 있는데 미소 한 조각으로 만든 노를 하염없이 저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달구가 아무리 소리쳐도 배는 점점 멀어져갔다. 아스라이 수평선 너머로 배가 사라져버리자 달구는 막걸리 사발을 들이켰다. 윤희와 아이들이 더이상 노를 젓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그렇게 몇 사발을 들이켰는지 모른다. 배를 띄울 막걸리가 바닥을 드러내자 다소 안도의 숨을 쉬던 달구는 약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숙소까지 가는데 한참 걸렸다. 스산한 날씨 탓인지 뼛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한 바퀴 휘저은 다음 반대편으로 뚫고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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