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매일 | 2005년 1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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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무게/크기 | 150g | 크기확인중 |
연령제한 | 15세 이용가 |
발매일 | 2005년 1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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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무게/크기 | 150g | 크기확인중 |
연령제한 | 15세 이용가 |
※ 4K블루레이, 3D 블루레이 재생 관련 안내 1) 4K UHD 디스크는 대용량의 데이터 전송이 필요하므로 4K전용 플레이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플레이어 소프트웨어 최신 버전의 업데이트, 대용량 케이블 사용이 필수입니다. 2) 3D 블루레이는 전용 플레이어와 3D 지원 TV를 통해서만 재생 가능합니다. ※ 아웃케이스/구성품/포장 상태 1) 제작/배송 과정에서 경미한 아웃케이스 주름, 모서리 눌림 및 갈라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을 원하실 경우 미개봉 상태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2) 스틸북 케이스 제작 과정에서 기포 혹은 경미한 인쇄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렌티큘러 스틸북의 경우, 보호필름이 붙어 판매되기도 합니다. 보호필름 손상에 의한 교환/반품은 불가합니다. 4) 본품 보호를 위해 노란색의 카톤 박스로 재포장한 경우, 카톤박스 손상에 의한 교환/반품은 불가합니다. 5) 아웃케이스/구성품/포장 상태 불량에 의한 교환/반품 신청시 불량 확인을 위해 개봉 시의 동영상을 요청할 수 있으며, 동영상이 없는 경우 교환/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디스크 재생 불량 1) 기기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재생 불량 현상에 대해서는 반품/교환이 불가하니 최신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된 DVD/BD 전용 기기에서 재생하실 것을 권유해 드립니다. 2) 정전기와 먼지로 인해 재생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디스크를 마른 천으로 닦으시거나, DVD 클리너 등 전용 제품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3) 일부 PC 연결형 ODD의 경우 호환 상의 문제로 정상적인 디스크도 재생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독립형 전용 플레이어 사용을 권장드리며, ODD 사용으로 인한 재생 불량의 경우 교환 시에도 동일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디스크 외관 불량 디스크에 미세한 잔 흠집이 남아있거나 인쇄 면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상품의 불량이 아닙니다. 단,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불량으로 인한 반품/교환이 가능합니다. ※ 교환/반품 안내 1) 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 요청 시에는 불량 확인을 위해 개봉 시의 동영상을 요청할 수 있으며, 동영상이 없는 경우 교환/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관련 사진과 동영상 및 재생 기기 모델명을 첨부하여 첨부하여 고객센터에 문의 바랍니다. 2) 사양 오인지, 오 구매, 변심 사유로의 반품은 제품 개봉 전에만 운임비 부담 후 처리 가능합니다. 3) 스틸북 한정판, 초회 한정판의 경우 제작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택배 이동 과정에서의 손상이 발생하면, 재 판매가 어려우므로 신중한 구매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4) 한정판 상품의 변심, 오구매로 인한 반품은 회송된 상품의 상태 확인 후 진행이 가능합니다. 택배 이동 중 파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완충 포장을 부탁드립니다. |
- Making - 예고편 - 제작발표회 - Gallery - 프로덕션 이슈 - 스토리 라인 - Cast and Crew : 감독 김기덕, 촬영 백동현,음악 박지웅, 배우 김종호, 서재경, 김영민" |
- 출시일 : 2004-03-12 - 출시사 : 비트윈 - Video Format :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1.85:1 - Audio Track : DTS, Dolby Digital 5.1 Surround - Running Time : 106 Min - 지역코드 : 3 - 제작년도 : - 관람등급 : 15세 이상 - 디스크수 : 1 Disk - 자막 : 한국어 영어 |
계절의 흔들림이 몸으로 느껴지는 시기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곧 계절이 바뀐다. 우리는 새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변신을 할 것이다. 계절은 자연의 모습과 기온뿐 아니라 사람도 바꾼다. 옷의 변화 등 외양부터 심정적 변화까지. 각 계절이 꺼내놓는 보따리는 다양하다. 무릇 계절의 바뀜으로 우리는 일상의 껍질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계절의 바뀜 혹은 순환을 사람살이의 각 시기에 대응하는 것도 익숙하다. 사계절은 오래도록 인생의 단계별 진도와 호흡을 맞춰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아동기, 으스러질 듯한 정염이 불타오르는 여름은 청년기, 하나둘 낙엽 떨어지는 가을은 장년기, 을씨년스러운 겨울은 노년기. '영원한 젊음은 없다'는 식의 경구도 계절의 바뀜을 의식하라는 얘기와 통한다.
헌데 이런 얘기,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더구나 스크린에서 뻔하디 뻔한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단계를 대입하는 건 별 매력 없어 보인다. 대개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거치는 삶이란 알고 보면 별거 없다. 스크린은 이런 얘기하지 않았나. "젊고 빠르게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거지, 뭐. 인생이라는 거, 별거 있어?..."
맞다. 그게 우리가 아는 인생. 계절의 순환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 겪으면서 지지고 볶고 엎치고 메치고 업 다운하다가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니 한번 읊어주고 '쫑' 내면 그만인 우리네 인생.
그런데 말이다. 인간은 그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도 선함과 악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인생 단순한거야 그렇다치자. 매순간 인간을 시험대에 세우는 찰나적 상황 앞에선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단순함으로 치부하기엔 그 무게가 심상찮다는 얘기다. '나쁜' 인간과 '좋은' 사람의 사이. 인간은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는 없다.
봄날은 간다
김기덕 감독의 9번째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계절의 바뀜과 인생의 시기를 대입시켰다. 묵상(黙想)의 영화라는 혐의를 씌울 수 있다. 우회하지 않고 직사광선을 쏘던, 관객의 감정의 극심한 동요를 이끌던 행보와는 이질적이다. 관객의 눈과 귀를 경악시키던 '김기덕표' 이미지와 비명소리는 분명 잦아들었다.
잔혹 또는 엽기를 꼬리표처럼 붙였던 그에게 변화의 봄바람이 분 것일까? 첫 장면부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 내 주산지 위의 암자. 아름답다. 한 인간의 사계절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아 병풍처럼 펼쳐진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는 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 과연 이 곳에서 누가 악한 마음을 먹겠는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봄날의 푸르디푸른 정경도 천진난만한 동자승에게 어떤 '운명'을 짐지운다. 개구리, 물고기, 뱀의 몸에 돌을 매달고 즐기는 동자승에게 '업보'의 전조가 닥친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은 한낮 미물(이라고 인간중심주의는 말한다)의 생명도 중시하라는 가르침이다. "하나라도 죽으면 너는 평생 마음속에 돌을 짊어지고 살 것이다"라는 노승의 말씀은 봄날에 취한 한 인생의 '업'을 예고한 것은 아닐까?
여름 이야기
격정은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 나절에 본격화된다. 생명의 약동시기를 지나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시기, 여름. 욕망은 속세와의 인연을 통해 자아증식한다. 건장한 청년승에게 허여멀건 소녀의 몸은 정념의 불꽃을 피우게 하는 매개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노승의 말씀대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성의 침전물로서 형성된 사랑보다는 몸이 요구한 욕망이다. 불타오르는 청춘 남녀에게 '문(門)'은 거추장스런 형식이다. 선택이 늘 타당한 논리로만 무장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門'은 이 영화에서 많은 메타포(은유)를 품는다. 암자로 들어가기 위한 門부터 암자 안에도 벽이 없는 門이 있다. 오직 그 門을 통해서만 드나들던 청년승과 소녀는 어느 순간 그 門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욕망이 인간사를 지배하는 순간이다. 욕망을 넘기 위한 고행보다 욕망에 몸을 맡기며 '업'을 강화하는 여름날의 이야기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집착으로 얼룩진 채 암자를 떠나는 청년승으로 귀결된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는다"는 노승의 말씀. 의당 업을 짊어진 자의 '운명'을 되새김질 시킨다.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생은 빡빡하게 짜여진 타임스케줄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가을이 오면
이 영화, 다르다고 했지만 앞선 '김기덕표' 영화의 인장은 여전하다. '인간'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죄의식에 근간을 둔 인간본성의 '악함'(으로 치부되는 도덕률)은 김기덕 영화의 단골소재다. 파괴본능과 공격적인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의 나약함도 여전하다. 그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땡볕을 물리친 가을의 식은 기운은 구원과 죄사함의 길을 터놓는다. 암자를 떠났던 청년승은 살인범이라는 딱지를 달고 회귀했으나 그에겐 분노만 뒤범벅돼 있다. 노승은 그를 내치지 않는다. 다만 한마디 내던질 뿐이다. "제가 좋으면 남도 좋은 것을 몰랐더냐. 그렇게 참을 수 없더냐."
그에게도 인생은 만만치 않다. 속세의 삶은 그렇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지 않는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또 다스리는 행위다. 나와 타인의 거리는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돼 있다. 숙명처럼 몸에 밴 그 속세의 거리감이 그에겐 분노로 다가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라 믿었던 허상에 대한 산산조각.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파면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남자. 선함과 악함은 인간 내부에서 화해가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그 화해의 과정을 숙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겨울 나그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봄
홀로 남겨진 산사에서 노승은 다비식을 치른다. 그리고 중년의 몸으로 출소한 남자는 다시 암자로 돌아와 수련에 정진한다. 우연찮게 절을 찾아온 한 여인을 통해 어린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나 여인은 결국 죽는다.
그리고 죄사함을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장년승의 걸음걸음은 업을 풀기 위한 씻김굿과도 같이 처절함을 동반한다. 잰 체 하지 않고 묵묵히 롱숏으로 보이는 장면은 묵직하다. 과연 그에겐 내면의 평화가 장착됐을까.
아이는 다시 동자승이 됐다. 윤회의 굴레는 쉽게 비켜나지 못할 것이다. 업보는 세대를 건너 회항한다. 과연 사람살이에 참된 깨달음과 가르침은 있는 것인가? 묵상의 테마를 던져주는 김기덕 감독의 물음표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단순함 속에서도 사람살이는 선함과 악함의 외줄을 타는 고행길인 지도 모른다. 짧고 미흡한 앎은 각자의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팍팍한 사람살이의 해결책 따위는 없다.
인생은 '희망'이란 단어로 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삶을 억압하는 것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정작 희망을 안고서도 불구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단순한 묵상의 잔잔한 영화가 아님을. 김기덕은 여전히 인간 내부의 악함에 우선 주목한다. 그것이 내가 김기덕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곧 개봉할 <피에타>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