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은 첫 번째 10년(2000~2009)이 굉장한 변화를 이뤄낸 데 이어 진정한 디지털 뉴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약간의 디지털을 가미한 신문사와 이제 막 온라인 서비스를 시도하는 방송사의 출현을 목격했다. 다음 시대에 이들 기업은 과거는 유산으로 남기고 주로 디지털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신문과 저녁뉴스 방송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이전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특별한 뉴스 혁명의 끝점이 아닌, 시작의 끝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은 ‘레코드 앨범’이나 ‘트랜지스터라디오’, ‘단방향 TV’가 갔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뉴스는 멈추지 않는다.---p.10
하루에 몇 번이나 뉴스 기사나 블로그 포스트, 팟캐스트, 또는 다양한 종류의 웹 기사가 링크된 이메일과 트윗, 페이스북의 월 포스팅을 접하는지 생각해보라. RSS 리더는 다양한 뉴스의 시냇물을 끊임없이 흐르는 거대한 강물로 바꿔놓았다. 우리는 뉴스레터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이메일이 도착하면 휴대전화에서 정보 수신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린다.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창조하는 세계다.
그렇다고 전혀 낯선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이 세계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옛 마을이, 내가 요술이라고도 부르는, 우리 시대의 기적에 의해 확대된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현대 기술은 그것을 포장했던 것, 즉 신문, 라디오 방송, TV에서 뉴스를 해방하고, 보존하며, 자유롭게 흐르게 했다.---p.29
지역 저널리즘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최소한 일곱 개의 지역 신문이 파산했으며, 나머지 신문도 사업을 하는 시간만큼이나 은행과의 협상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앞서 본 숫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최소 20퍼센트가 줄어든 기사는 최소 20퍼센트는 줄어든 뉴스룸 직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디지털 12기업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의 숫자가 1000명을 헤아리는 데 반해, 지역 일간지들은 오랫동안 100명 이하에 머물렀다. 2001년 5만 6900명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미국 뉴스룸 일자리는 22퍼센트 또는 1만 2900명 감소했다. 지난 2년간 8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독자들은 수만 년 분량의 지역 정보를 손실한 셈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할수록(당연히 급여가 높다) 조기 퇴직이나 해고 대상이 된다.
2009년, 하이브리드 저널리즘이 탄생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가 업계 최초로 주말 인쇄판을 제외한 종이 신문 사업을 접고, 온라인 뉴스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84개 이상의 일간지가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대부분은 그보다 더 많이 발행을 쉰다. 독자들에게는 온라인 뉴스를 보라고 권유한다. 일간지가 더는 일간지가 아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pp.75-76
앞서 본 것처럼, 거의 100개의 미국 도시에서는 더 이상 일간지가 발행되지 않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신문사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이브리드 뉴스 회사들은 더 빠르게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그러는 와중에 많은 언론 분야의 재능과 생산력을 잃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신문의 놀라운 쇠퇴기’에 살고 있으며, 어디서나 뉴스업계의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한때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세상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으며, 어떻게 빨리 그렇게 되었을까?
낡은 미디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터넷, 변화하는 독자층과 광고주의 선호, 그리고 단지 우연과 운이 전통적인 인쇄매체(신문과 잡지 모두)와 영상매체가 구축해 놓은 요새를 무너뜨렸다. 때로는 용맹스럽게 싸우기도 했지만, 때로는 웃음만 나오는 노력 끝에, 이들 낡은 미디어는 구글, 페이스북, 유투브, 아이폰이 이끄는 새로운 미디어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다.---p.116
독자 혁명은 사람들이 신문의 콘텐츠를 외면한 결과가 아니다. 30세 이하의 사람들에게 신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도 특별히 혐오스럽다는 반응은 없을 것이다. 신문은 단지 시대에 뒤졌을 뿐이다. 왜 그렇게 나무를 잘라내고, 종이를 운반하느라 트럭에 연료를 채우는지 그러고도 이미 지난 시점의 뉴스를 전하는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아니면 야후나 구글 검색창에 단어를 몇 개 쳐넣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뉴스나 견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데? 왜 특정 신문사나 방송사의 사이트에 가서 그 언론사의 뉴스만을 보는가? 수백 군데서 만든 뉴스를 접할 수 있는데(‘뉴스노믹스: 구글과 친구들-새로운 매스미디어’)? 이는 더 많은 선택권과 용이함 때문에 일어난 혁명이다.---p.122
저는 일찍이 웹뉴스를 시작한 사람이면 모두가 그것을 ‘그저’ 새로운 미디어라고 여겼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사전 포장된 상품을 놓을 또 다른 공간으로 여긴 거죠. 그건 대단한 실수였습니다. 인터넷은 단순히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방식이며,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이었던 거죠. 2003년 이전까지는 저도 그 점을 깨닫지 못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래도 제가 상대적으로 빨리 깨달은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직과 업계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점을 인식시키는 데 또 한참이 걸렸어요. 저는 회사 CEO인 톰 컬리가 2004년 말에 온라인 뉴스협회에서 대규모 강연을 하도록 준비를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그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죠. 그러나 AP를 포함한 우리 중 누구도 그 선언에 충분히 빨리 응답하지 못했어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것을 결정적인 행동으로 연결짓지 못한 거죠. 우리에게는 점진적 변화가 아닌 급진적 혁명이 필요했는데, 우리 모두 자연스레 점진적 변화를 선호했던 거죠.---p.150
뉴웨스트의 조너선 웨버는 지난봄에 만났을 때 막 트위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가 재판을 보도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툴이라며 매우 놀라워했다. “늘 했던 일을 그대로 하면 됩니다. 재판장에 가지요.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죠. 그리고 재판 내용을 트윗합니다. 이건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이지요. 그건 뉴스라기보다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논평 같은 형태의 글입니다. 제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알아내서 사람들의 귓가에 속삭여 주는 사람 같군.’”
이것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뉴스란 단순한 사실을 알리는 것 이상이다. 관점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앞서 보았던 블로깅의 역할을 보면 소셜 네트워킹이 근사한 저널리즘 툴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셜 네트워킹은 저널리즘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지만 그 근간까지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p.301
간단히 말해 저널리즘 교육자들이 말하는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널리즘의 변화를 감당하고 있는 뉴스룸 최고의 편집자들 역시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그것은 저널리즘이 스토리텔링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오디오와 비디오, 플래시, 독자 교류(reader interaction)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런 근본적인 특성 안에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고결함이 있다. 그것은 오래전 뉴욕타임스의 애돌프 옥스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의 앞잡이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다. 멀티미디어로 누구나 발행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저널리스트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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