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에게는 내가 어마어마한 벌을 줄 거다. 그러니 각오해."
선생님의 단호하고도 위엄 있는 말투에 둘은 몸을 움찔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
명수와 정태는 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저러시지?'
둘은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 뒤, 웃음을 멈추더니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좀 놀랬지? 오늘의 벌은 바로 '웃음'이다. 알겠냐?"
"우, 웃음요?"
정태는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명수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새롭게 개발한 벌이다. 바로 '웃음벌.' 자, 너희들이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지. 서로 쳐다보도록 해."
선생님의 말씀대로 명수와 정태는 마주보았습니다. 둘은 여전히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둘 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정확히 2분 동안 마주보고 웃는다. 자, 실시!"
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웃으라고요?"
"그래. 한국 사람이 한국말도 못 알아들어? 너희 둘, 2분 동안 소리 내서 웃도록 해. 만약에 웃음소리가 작아진다거나 웃음이 멈춘다면 더 무서운 벌을 줄 거다. 알겠어?"
둘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실시!"
정태가 먼저 입을 벌렸습니다. 입속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으로 명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명수도 입을 열고 아주 작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더 크게!"
명수와 정태는 억지로 웃었습니다. 참으로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색한 웃음이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웃음소리도 점점 커졌습니다.
푸하하….
히히히….
정태는 명수의 웃는 모습이 웃긴지 더 크게 웃었습니다. --- pp.30~34
"명수야, 선생님 생각은 이렇단다. 명수 너는 전혀 속상해할 게 없어. 할머니랑 폐지 줍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오히려 이건 아주 멋진 일이지. 정말로 부끄러운 건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명수 너니까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도망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너 놀리는 사람이 있으면 이 선생님이 따끔하게 혼내줄 거야. 알겠지?"
명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생각하다보니 선생님의 말씀이 다 옳았습니다. 그렇지만 창피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명수는 신발로 땅바닥을 툭툭 치더니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친구들은 다 학원 다니는데 나만 왜 이러는지……. 난 정말 불행한 아이에요."
"명수야. 너의 마음을 이렇게 선생님께 들려줘서 고맙다. 그리고 명수야,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군지 아니?"
한참을 생각하던 명수는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러고는 답을 찾지 못해 혹시 혼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조용조용히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남들과 비교하는 사람이야. 저 애는 큰집에서 사는데, 저 애는 최신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데, 저 애는 엄마랑 아빠가 있는데, 저 애는 얼굴이 잘 생겼는데……. 이런 식으로 남들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은 점점 초라해지고 하찮은 사람이 되는 거야. 자신이 갖고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면 불행이라는 좋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는 거야. 자기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 선생님이 볼 때 명수 너는 정말로 행복한 아이야. 잘 생각해봐. 지금 네가 갖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정말 나는 행복한 아이일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뭘까?'
명수는 눈을 깜박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있는 행복이 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서워서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던 호랑이 선생님이랑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찡그리 명수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습니다. --- pp.72~74
명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또 숨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당당히 걸어가야 하나,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당당하자고 맘먹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친구들을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명수의 볼살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아빠와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명수야, 우리 사랑스러운 아들. 뭘 망설이고 있어? 어서 가야지. 괜찮아. 남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마. 넌 충분히 멋지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이야. 우리 아들, 사랑해."
명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당당해지자!"
명수는 할머니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지금 갈게. 앞으로 앞으로만 갈 거야. 이제 숨지도 않을 거고, 고개도 숙이지 않을 거야. 물론 찡그리지도 않을 거야. 감사하며 행복할 거야."
하하하. 명수는 배꼽이 쏙 빠지게 큰소리로 웃어댔습니다. 그리고는 손수레를 끌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명수,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이 밝아졌습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