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힘내세요. 혜경이 엄마
뷰티 아티스트를 꿈꾸던 딸, 엄마 생일에 분홍색 카드지갑을 선물하며 장난기 가득한 러브레터를 쓰던 그 딸을 다시 볼 수없는 지금, 엄마는 절규합니다. ‘오늘이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이 되어다오, 수학여행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오는!‘이라고.
수학여행 떠나는 그 날의 마지막 포옹을 기억하며 딸을 빼앗아 간 그 봄을 밀치고 싶다고 말합니다.
딸을 잃은 슬픔과 딸을 향한 그리움이 그대로 시의 꽃으로 피어난 유인애님의 시집은 감동을 줍니다. 깊은 슬픔속에 숙성되고 발효된 언어들은 눈물겨운 공감의 언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십니다.
이 간절하기 그지없는 엄마 시집은 세월호에 희생된 이혜경 양 뿐 아니라 다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슬픔도 함께 기억하게 해 줍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기억은 영원하다는 것, 너무도 큰 슬픔은 마음껏 슬퍼함으로써만 조금씩 치유될 수 있음을 다시 알게 해 줍니다.
세월이 가도 세월호가 낳은 비극을 결코 잊어선 안 되겠지요. 우리 모두 이 시집을 읽고 나서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남이 아닌 가족으로 품어 안는 사랑의 사람, 기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대 해 봅니다.
힘든 중에도 진솔한 시를 써주신 혜경이 엄마 고맙습니다. 따님도 엄마의 가슴속에서 시를 읽는 그리움별, 고운 별로 새롭게 뜨겠지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엄마의 그 상실감을 좀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가벼운 위로로만 만족했던 무심함이 서운하셨지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좀 더 따뜻한 마음을 찾고, 위로의 기도에도 깨어있겠습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힘내세요. 혜경이 엄마.
- 이해인 (수녀·시인)
버텨내야하는 세월에
올해 2월, 서울시청 광장으로 거대한 고래가 지나갈 때 지하 갤러리에는 세월호 엄마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고래 속에 상처 받은 304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지하갤러리에는 세월호 엄마들의 바늘이 아이들의 찢어진 영혼과 자신들의 부서진 마음을 한 땀씩 꿰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타래는 아이들의 심장이다. 그 실타래에서 한없이 풀려나오는 실은 엄마들의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의 실을 타고 엄마들은 오늘도 아이들 곁으로 간다.
이 시집 역시 펜으로 쓴 뜨개질이다. 펜은 뾰족하고 실타래는 둥글다. 엄마의 손끝이 뾰족한 것을 둥글게 만든다. 상처 받아 뾰족했던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의 손끝에서 마침내 둥근 무지개처럼 떠오른다. 그러기까지에는 엄마들은 수백 번도 더 피를 토하며 혼절을 거듭했을 것이다.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 학생. 그 엄마 유인애씨가 피눈물로 쓴 이 시집에서는 칼로 천천히 살점을 도려내고 천천히 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한 번 죽지만 엄마는 수백 번 죽는다. 그래서 흔히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참척’이라 한다.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는 그 참척의 고통 이상이다. 내 자식이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배와 배를 삼킨 잔잔한 바다를 속절없이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고통…. 그것은 극형을 넘어 천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그런 극한의 고통을 겪은 엄마의 시집을 본다는 것은 누구든 잔잔한 일상에서는 또 하나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머뭇머뭇 시집을 펼치자 내 피가 하늘로 올라간다.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엄마는 ‘계속 추워도 좋으니 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푸른 하늘과 벚꽃도 ‘엄마 혼자만 봐서 미안’하고, 생일 아침엔 ‘미역을 씻는데 주르륵 눈물이 수돗물처럼’ 쏟아지고, 크리스마스 땐 서점 가서 평소 딸이 탐독했던 셜록홈즈의 탐정추리소설을 가득 사와 읽고, 눈 내리면 딸의 깜찍한 행동대로 ‘눈사람을 만들어 오래 보려고 냉동실
에’ 보관하고, ‘눈에 보이는 것마다 가는 곳마다 분향소’로 보인다.
또 수시로 ‘장롱 깊숙이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꺼내 가만히 얼굴을 대보며 17년 전 묻어있던 아기 냄새를 맡’고,‘어린 자식 앞세운 죄 어미도 대신해주지 못’해 ‘절벽에서 서로 꼭 끌어안고 떨어지길 빌어’보고, 아이 사망신고 하던 날 ‘내 손으로 너를 지워야하는 죄책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손에 쥔 용지를 적’시고, ‘탁 치니 억’하고 죽은 박종철의 누나가 지금도
동생이 좋아했던 하얀 우유를 먹지 못하듯 ‘우리 가족도 수박을 포크에 찍어 해맑게 웃으며 먹던 딸내미가 생각나’ 한 번도 여름에 수박을 먹은 적이 없다. 그런 애틋한 딸에 그런 애틋한 엄마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고 4월 그날도 왔다. 한 걸음 내딛기 전에 먼저 꺾이는 무릎부터 버텨내야하는 세월이었다. 진실은 침몰했고 살 한 점, 뼈 한 조각 만져본 게 전부였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세월호는 탄핵되지 않았다. 세상은 잠시 바뀌었지만 엄마들의 세상은 잠시도 바뀌지 않았다. 하물며 아이들의 영혼은 어떠하랴. 이게 현실이다. 세상은 강자가 약해져서 바뀌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바뀐다. 하늘로 올라가는 피를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내 피가 아니라 이 시집의 시들이었다.
- 이산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