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팜(Oil Palm)을 말레이시아(Malaysia)에서는 ‘황금작물’(Golden Crop)로 부르고 있다. 오일 팜(Oil Palm)에서 생산되는 팜 오일(Palm Oil)의 색깔이 황금색이면서 동시에 오일 팜 작물의 채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일 팜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오일 작물 중의 하나로서 매우 빠른 산업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온대지역인 한국과 같은 온대지역에서는 생소한 작물이지만 최근 강조되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우리의 식산업(食産業) 및 기타 산업과 관련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영년작물(永年作物, perennial crop)의 하나이다.
주로 열대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연중무휴로 생산이 가능한 오일 팜은 오일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작물로 알려져 있다. 오일 팜의 오일 산출고는 코코넛(coconut)보다 3배 정도 높은 수준이며, 유채보다 7배, 그리고 대두보다 10배 수준이다. 세계의 식물성 오일의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오일 팜은 식물성 오일 생산자원으로서 대두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며, 유채나 해바라기, 땅콩, 그리고 면화씨와 같은 작물보다 높은 수준이다. 생산관리를 잘 할 경우 오일 팜의 ha당 오일 생산량은 연간 5∼7톤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FAO, 2008).
팜 오일(CPO: Crude Palm Oil)은 식용으로는 물론이고 바이오 연료(bio-fuel)를 비롯한 산업용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말레이시아(Malaysia)와 인도네시아(Indonesia)가 주된 생산지이지만 그 이외에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팜 오일을 이용한 가공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활발하게 교역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일 팜 산업은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사회ㆍ경제ㆍ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지니고 있다. 원천적으로 자연자원이 부족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해외자원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산업작물’ (industrial crop)이다. 오일 팜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앙골라(Angola)와 감비아(Gambia) 사이의 西아프리카(West Africa) 지역에서 자생한 아프리카 팜 나무(Elaeis guineensis)인데, 西아프리카인들은 이 나무의 오일 팜을 식용유(cooking oil, 食用油)로 널리 사용해왔다. 또 다른 하나는 南아메리카의 열대지역에서 자생한 아메리카 팜 나무(Elaeis oleifera)이다.
이 오일 팜은 西아프리카와 적도 아프리카(Equatorial Africa)에서 자라왔던 야생식물이며, 수 천 년 동안 인간의 식품과 에너지 자원으로 사용되어 왔다. 고대의 이집트(Egypt)인들도 아프리카인들처럼 옛날부터 팜 오일을 사용해왔다. 이러한 사실은 B.C. 5천년 경의 고대 이집트 도시 아비도스(Abydos) 지역의 무덤에서 발견된 질그릇 항아리에 팜 오일이 남아 있는 것에 의하여 증명이 되고 있다(Organic Candle Manufacturing Sdn. Bhd., 2010).
팜 오일의 무역에 관하여 살펴보면 1590년에 제임스 웰쉬(James Welsh)에 의하여 32 배럴(barrel)의 팜 오일을 영국으로 수입해간 것이 해외무역의 효시로 여겨지고 있다(Sheil, et al., 2009). 그 이후 西아프리카와 무역을 하는 유럽의 상인들이 가끔 유럽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팜 오일을 구입하기도 하였으나 이 팜 오일의 부피가 크고 가격이 저렴하여서 실제로 西아프리카 지역 밖으로는 팜 오일이 거의 유출이 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1870년경에는 팜 오일이 가나(Ghana)와 나이지리아(Nigeria) 같은 국가에서는 주요 수출품목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6년부터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세계 팜 오일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사실 오일 팜이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으로 전파되어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848년에 네덜란드(Netherlands)인에 의하여 암스테르담(Amsterdam)을 거쳐서 인도네시아 자바(Java)섬의 보고르(Bogor) 식물원에 네 개의 묘목이 도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네 개의 묘목은 관상용으로 그리고 약용 목적으로 이 보고르 식물원에 심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西아프리카에서 東南아시아로 팜 나무가 전파되어서 식재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870년대 초에 말레이시아는 오일 팜 묘목을 한 묶음 전달받게 되었는데, 이 묘목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유명한 큐 왕립식물원(Kew Gardens)을 거쳐서 싱가포르(Singapore) 식물원을 통과하여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였다. 이 묘목은 시험재배단계를 거쳐서 초기에는 정부 건물주위와 공원의 장식용 식물로 그리고 방갈로(bangalow)와 사무실 주위나 도로변에 식재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10년에는 스코틀랜드 사람 윌리엄 사임(William Sime)과 영국의 금융가 헨리 다아비(Henry Darby)에 의하여 말레이시아에 최초로 오일 팜 식재농업(oil palm plantation)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팜 나무 인공식재는 Sime과 Darby와 같은 영국인 농장소유자들에 의하여 시작되고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 농장들은 1960-1970년대에 말레이시아 정부에 의하여 국유화되었다. 거의 같은 무렵인 1911-1912년경에 말레이시아에서 커피를 재배하던 불란서 사람 헨리 포콘니에(Henri Fauconnier)가 커피농사에서 실패하고 나서 오일 팜 나무를 상업용으로 식재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오일 팜 나무가 단순한 관상용 식물에서 경제적 작물로 확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헨리 포콘니에는 20세기 초 많은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모험정신으로 1905년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서 고무나무와 커피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지만, 사실 오일 팜에 대하여서는 잘 모른 상태에서 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는 1911년에 헨리 포콘니에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Sumatra) 섬에서 묘목을 구하여 1912년에 셀랑고르(Selangor)에 이르는 도로변에다 오일 팜 묘목을 심기 시작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에서는 이미 1911년에 벨기에 농학자인 아드리엔 핼럿(M. Adrien Hallet)이 최초의 오일 팜 농장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묘목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헨리 포콘니에가 수마트라를 방문했을 때 핼럿은 말레이시아에서의 오일 팜 식재농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하였다. 그래서 아마도 헨리 포콘니에는 말레이시아에서의 오일 팜 식재농업을 핼럿으로부터 배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말레이시아의 오일 팜 식재농업은 1917년 헨리 포콘니에가 셀랑고르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오늘의 광대한 오일 팜 식재농업과 오일 팜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다. 지난 1925년을 기하여 약 3,350ha에 이르는 오일 팜 식재농업이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20,000ha에 이르렀다. 그 후 1960년대부터는 농민들의 빈곤퇴치를 주목적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오일 팜 식재농업을 시작하였다. 이 식재농업을 위한 이주자들에게는 약 4ha의 땅을 배당하여서 오일 팜 또는 고무나무를 심게 하고 토지대금은 20년에 걸쳐서 상환하도록 하였다(Oil Palm, Wikipedia online, 2009). 이러한 오일 팜 식재농업 정책에 의하여 말레이시아에서는 도농(都農)간의 빈부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었고, 농촌 노동력의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 농촌교육수준의 향상, 농촌의 하부구조 향상, 농촌인구의 도시이동 증가율의 감소 등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경제개발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05년 이후부터는 인도네시아가 팜 오일 최대 생산국이 되었고, 가장 빠른 속도로 증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오일 팜이 성장할 수 있는 이상적 기후조건과 풍부한 토지가 있으며 노동임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직사광선이 다량 필요한 식물이기 때문에 구름이 적게 덮인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東南亞) 지역이 오일 팜의 생산성이 높은 지역이다.
--- 오일팜의 개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