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 “뭐가 이상해?” “너 어제 지하철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지? 겨우 5분이었지만 넌 분명 머리 칸에 없었어. 찾고 또 찾았다고. 그런데도 넌 보이질 않았어.” “아니라고 했잖아! 너 겁주려고 일부러 숨었던 거라니까!” “거짓말. 어제 블로그 친구들이랑 채팅을 했어. 그러다 알게 됐어. 귀신을 보고 말을 나눌 때는 언제나 혼자란 걸.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대. 마치 눈 깜빡할 사이에 말을 나누는 것처럼. 그러니 시장 또한 그런 거겠지. 맞지? 너 어제 구미호 시장에 간 거지?” --- p.42
‘진이처럼 인기가 많았다면 내기 따윈 안 했을 텐데.’ 은채는 세면기를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거워진 머리가 거울에 닿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어젯밤 선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놀랄 정도로 많았다. 숨겨진 이야기가. 내기를 하기 전이었다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을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진짜였다. 경험을 해 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 p.53
그건 아주 기이한 느낌을 자아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탓에 사람들은 흔들리고 있는데 은채만이 못 박힌 듯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꼿꼿이 선 채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분명 구미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리라. 은채는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다 확,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은채는 캠코더 버튼을 눌러 영상을 멈췄다. 방금 자신이 알아차린 것이 맞는지 알고 싶었다. 조심스레 눈을 들어 은채는 진이를 바라봤다. 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네 얼굴 점점 흐려지고 있어.’
은채는 반에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선하 말고는 없다. 학기 초만 해도 몇 명이나 있었지만 그 애들이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진이와 친해지면서 은채에게는 더 이상 말도 걸지 않는다. 그런데 유일한 단짝 친구인 선하마저 ‘귀신 지하철’에 관한 소문을 공유하며 진이와 친하게 지내자 은채는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다. 결국 ‘귀신 지하철’ 의 비밀을 직접 밝혀내 선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의 환심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은채는 4시 44분에 들어오는 ‘귀신 지하철’을 타게 되고, 거기서 만난 구미호와 바르기만 하면 모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립밤을 걸고 내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내기엔 무시무시한 대가가 숨겨져 있는데……. 과연 은채는 립밤으로 친구들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구미호가 말하지 않은 이 내기의 대가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