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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여자 1

늑대의 여자 1

서희원 | 가하 | 2010년 12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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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536g | 148*210*30mm
ISBN13 9788993883442
ISBN10 899388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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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좋다.”

새끼 늑대는 하얀 늑대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말했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뛰어오르려 했다.

“응?”

하얀 늑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하얀 늑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새끼 늑대를 바라보았다. 하얀 늑대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어정쩡하게 변했다. 새끼 늑대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하얀 늑대를 향하며 빛나고 있었다. 일렁이는 영채 속에 열망이 담긴 눈동자였다.

“나, 하얀 늑대 좋다.”

덜컹!

“아, 무슨……?”

하얀 늑대의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번개에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하얀 늑대, 나 좋나? 나 하얀 늑대 좋다!”

새끼 늑대의 거침없는 말에 하얀 늑대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동굴에 비춰든 아침햇살을 역광으로 받고 있는 새끼 늑대는 당당하며 생기가 넘쳐흘렀다.

“나, 나도…… 그대가 싫지는 않아.”

하얀 늑대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그럼 나 좋아하는 거 맞다?”

하얀 늑대의 대답에 새끼 늑대는 단정을 지으며 곧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 새끼 늑대의 햇살 담은 윤택한 미소가 하얀 늑대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배꼽 아래에 힘이 들어가며 무어라 설명 못 할 예민한 감각이 찌르르 지나갔다.

‘이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뭔가…….’

하얀 늑대는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새끼 늑대의 고백은 전혀 싫지 않았지만 미래의 그의 곁에는 새끼 늑대가 있을 자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새끼 늑대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그의 예민한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새끼 늑대, 나도 그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하얀 늑대가 더듬거리며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나, 하얀 늑대 좋다. 팔 안고 싶다.”

상대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새끼 늑대는 열망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하얀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 빨려 들어갈 듯한 신비한 갈색 눈동자에 하얀 늑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와락, 가벼운 무게의 산들바람 같은 젊은 여인의 체중이 그의 팔에 실렸다.

“하얀 늑대, 나랑 산다. 이곳에서. 응?”

새끼 늑대는 하얀 늑대의 다부진 팔에 매달려 기쁨에 찬 소리를 냈다. 여자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새끼 늑대는 하얀 늑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에 너무나도 좋아 더없는 기쁨에 넘쳤다. 태어나서 이토록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다. 절로 충만한 기쁨이 온몸에서 발산되었다. 하얀 늑대의 단단한 팔은 어렸을 때 자신을 품에 안아주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매끄럽고 단단한 팔이었다.

“하얀 늑대 팔, 아버지 팔이다. 똑같다. 튼튼하다. 강하다……. 좋다.”

물기 가득한 새끼 늑대의 눈을 훔쳐본 하얀 늑대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 젊은 여성이 자신에게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관계를 진행시켜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뇌리를 강타했다. 충격으로 온몸이 굳어지며 움찔했다. 입 안이 마르고 목이 탔다. 절로 전신이 긴장됐다. 그는 매우 당황하고 초조했다. 여자의 고백은 기분 좋았지만 그보다 더한 염려로 안절부절못했다.
새끼 늑대는 부족이 전멸하고 몇 해인지도 모를 길고도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낸 여인이었다. 하얀 늑대 자신은 지난 다섯 달 동안 부족을 떠나 홀로 지냈을 뿐이지만 그동안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여성은 그보다 더 훨씬 오랜 시간을,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지독한 외로움과 고단한 삶을 등에 이고서 홀로 분투하며 지내왔을 터였다.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그것이 어떻다는 정도는 능히 추측될 지경이었다. 하얀 늑대의 가슴 한 켠이 욱신거렸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사람이 그리운 여자의 연약한 상태가 너무나도 체휼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 가여운 여자 앞에서 여자를 속이는 사람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에게 평생토록 슬픔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미안해, 새끼 늑대.”

하얀 늑대는 자신의 팔에서 새끼 늑대를 냉정하게 떼어내며 말했다. 손끝이 떨리며 가슴이 울컥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뜻하지 않은 그의 행동과 분위기에 새끼 늑대는 깜짝 놀랐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새끼 늑대의 아름다운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 표정에는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걱정스러운 물음이 담겨 있었다.

“새끼 늑대, 내 이야기 잘 들어……. 나도 그대를 좋아하지만 이곳에서 그대와 살 수는 없어.”

하얀 늑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그 자신도 못내 아팠다. 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새끼 늑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하얀 얼굴이 더욱 새하얘졌다.

“왜? 왜 안 살아? 나 하얀 늑대 좋다. 같이 살고 싶다. 우리 같이 산다!”

새끼 늑대가 처절한 애원이 담긴 눈동자로 말했다. 물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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