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언론?학술?교육…… 어느 영역을 봐도 ‘파탄 직전’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현장에서 실제 느끼는 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는 동안에 ‘이런 사태’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역사적 전환기에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는가, 앞으로 이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책임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들을 향해서 그것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6
이 세상에 ‘최악의 학교’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사 전체가 동일한 교육이념을 믿고 동일한 교육방법으로 동일한 교육목표를 향해 수업을 하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교사와 학생 모두가 똑같은 것을 옳다고 믿고 있고 (믿을 것을 강요당하고 있고) 이론(異論)의 여지가 용납되지 않는 학교는, 지적인 생산성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최악의 장소입니다.--- p.9-10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은 노이즈라고 간주하여 잘라버릴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가까이에 있는 친구를 향해, 뭐라도 좋으니 물어봐라. 가령 “있지, 지금 흔들렸어?”라고 갑자기 물어봐라. “아니, 흔들리지 않았어”라고 지체 없이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문을 듣고 그것에 대답하는 것은 뇌의 일이지만 흔들렸는지의 여부를 감지하는 것은 몸의 일이기 때문이다. 뇌는 자신의 몸에게 “지금 흔들렸어?”라고 물어보고 “아니”라는 답을 받고 나서가 아니면 “흔들리지 않았어”라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한순간의 ‘틈’이 생긴다. 그곳이 승부처다. _어떻게 말을 전달할 것인가, --- p.31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알았다’고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훌륭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다”라고 딱 잘라 말하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건 “그러니까 이제 입 다물어”라는 뜻이니까. _어떻게 말을 전달할 것인가, --- p.35
분위기만으로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에는 중대한 결점이 있다.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말로 남기지 않는다.” 교실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관청에서도, 언론의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분위기를 읽고 분위기를 근거로 “일어났는데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한다”는 식의 곡예를 부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공통점은 애매모호하고 언어화되지 않은 ‘그런 느낌’, 즉 분위기라는 것에 의지해 모든 판단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_분위기만 살피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 --- p.59
모든 연설은 혹은 모든 정치적인 말은 이런 식으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신축자재한 말이니까. 물론 나도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의 경우 ‘우리’란 말은 ‘나’로부터, 어느 나라의 국민도 아니고 인류도 아닌, 단 한 명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긴 하지만. _‘우리’라는 말이 가진 진짜 의미, --- p.87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건 ‘꿈’이란 단어가 거의 반드시 ‘직업’에 결부된 개념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30여년 사이에 정착한 비교적 새로운 경향이라는 사실이다. 1960년대 정도까지는 아이들이 ‘꿈’이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은 지금에 비해 훨씬 실없거나 뜬구름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실현가능’한 것은 처음부터 ‘꿈’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가 되고 싶어”, “편집자가 되고 싶어” 같은 실현가능한, 그래서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유형의 견실한 ‘꿈’은 아이다운 ‘꿈’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꿈’이 현실적인 ‘목표’ 비슷한 것으로 변했다. _13세의 하드 워크, --- p.96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출산, 인구감소는 사회 진보의 귀결이며 우리가 바라는 행복추구의 결과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금 가족의 형태 변화나 노령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 사회제도는 인구증대 국면, 발전도상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_인구감소를 과연 멈출 수 있는가, --- p.131
과학은 의심함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파탄이 남으로써 진보해왔다. 그리고 과학자란 의외로 단순하게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맨 앞에서 ‘과연 나는 근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라고 썼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니 좀 자기자랑 같지만, 과학자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어떤 것을 의심하고 단순하게 구체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행위가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사고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_과학자의 사고방식, --- p.160
우리 중 많은 수가 선거에서 기권하여 투표율이 내려가도 누군가는 반드시 당선되고 당선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권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정권이 어리석은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그 악영향은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미친다. 정치를 싫어하거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정치의 궁극적 결과는 전쟁인데,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의 참혹함은 투표자와 기권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_소비사회란 무엇인가, --- p.176
소비사회가 고도화함에 따라서 교육이 상품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커졌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대부분의 경우는 수업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교육서비스를 상품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수업료라는 화폐를 지불하고 그 대신 기능이나 자격, 졸업증서라는 ‘유용한 것(상품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교육상품은 다른 여러 가지 상품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인다. _소비사회란 무엇인가, --- p.179
자국의 ‘자랑하고 싶은 역사’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실패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은 그밖에도 많다. ‘과거 자국이 어떤 실패를 했고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실패를 겸허히 반성하는 마음이 없으면, 옛날과 같은 사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또다시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_국가를 사랑한다는 것, --- p.199
나는 ‘애국자’이고 내가 말하는 것을 거역하는 너희는 ‘애국자’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애국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단정하는 사람이 최근 일본에서는 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당신의 ‘애국심’은 패전 전의 낡은 버전인가? 전후 민주주의의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버전의 ‘애국심’인가?” 하고 물어보자. 그리고 그 새로운 버전의 ‘애국심’이란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 같이 생각해보자. _국가를 사랑한다는 것, --- p.202
지금의 청소년 중 ‘장래에 정치가가 되어 나라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까.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이미 최근 몇십 년 동안 정치를 한다는 것은 ‘권력을 갖고 싶다’, ‘으스대고 싶다’, ‘돈을 거머쥐고 싶다’, ‘사람을 부려 먹고 싶다’와 같은 뜻이 되어버렸다. 즉 저질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질 떨어지는 직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_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핵은 정당한가, --- p.208
나는 일본이, 때마침 난민 수용에 주력하는 독일같이, ‘역시 한번 전쟁에 져서 고생한 나라는 겸허하고, 약자 입장에서도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을 경계하면서 해나가는구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군사적인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하고 어디까지나 평화적 수단을 추구하고, 예를 들어 IS 같은 집단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평화적인 교섭을 제안하는 나라였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필요하다면 그때는 창설된 유엔경찰군의 일원으로 무장하고 평화유지 활동에 참가하자는 것이다. _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핵은 정당한가, --- p.226
일본은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중년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치?경제?언론?학술?교육 등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파탄 직전’의 위기에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환기에 살아남는 지혜란 우선은 내가 사는 나라와 사회가 ‘중년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_‘중년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 --- p.232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체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파이를 다 같이 잘 나누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시대에는 ‘경쟁’보다도 ‘협동’이 중요하다. ‘수탈’보다도 ‘상호지지’가 중요하다. ‘양’보다도 ‘질’이 중요하다. ‘큰 것’보다도 ‘작은 것’에서 가치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_‘중년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 --- p.249
난민? 난민이라고 하면 머나먼 시리아의 난민과 지중해를 떠올리겠지만 실은 우리 또한 난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였다. 그때 그곳 주변에 살던 많은 주민들이 피난을 가야 했고 지금도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도쿄의 정수장도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편의점의 음료, 전지, 기타 상비품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교통망도 끊겨 도쿄의 수많은 사람들도 피난, 소개(疏開, 공습이나 재해 등에 대비해 분산하는 것), 이주를 피할 수 없는 선택지의 하나로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