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혁명과 마찬가지로 볼리바르 혁명은 자기 무덤을 파는 조건들을 만들어왔다. 자본의 논리가 강화되는 만큼 볼리바르 혁명은 두 발로 걷지 못하고 한쪽 발은 뒤를 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향이 심화되면서, (은행업, 수입 과정, 토지 소유와 미디어에서) 구 자본주의의 세력이 다시 일어나는 한편, 미제국주의의 위협이 계속된다면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중대한 장벽에 부딪힐 것은 명백하다. --- p.49
차베스의 담론은 세계화 과정에서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구체적 정책과 행위를 의미한다. 그가 해외 순방 시에 자주 사용되는 ‘다극적인 세계’라는 슬로건은 그의 반대자들이 주장하듯이 공허하거나 혼란스러운 수사 이상의 것이다. 비록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측면에서 다극적인 모델은 미국의 주도권에 반대하는 목표를 가진다. --- p.71
두 선거캠페인의 공통점은 종교적 아이콘과 같은 민족주의적 상징들을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선거법에 반하는 베네수엘라 국기의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줄무늬를 바탕으로 만든 두 후보의 벽보가 넘쳐났다. 한편, 차베스의 경우에는 암 투병 ‘극복(superacion)’과 연관되는 성모, 십자가, 예수의 이미지로 도배되었고, 카프릴레스의 경우는 차베스 첫 임기 때 겪은 수감생활 경험을 통한 신앙심의 강화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었다. 카프릴레스는 자신의 가톨릭교 신앙심을 매우 강조하면서 자신의 유태인 혈통이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차베스의 가톨릭교 신앙심은 좀 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대부분 아프로-카리브 및 원주민 혈통의 종교적 의식행위가 혼합되었다. 또한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성모와 성인들의 이름으로 다양한 공약을 실천했다. --- p.97
2001년 하반기에 나타난 인종화의 다른 문제적 형태는 우리가 국외 추방(Expatroation)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유도했다. 이 담론은 차베스주의에 반대하는 분파를 외국인 혐오증을 확대시키는 백인 외국인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검은 피부와 원주민 정체성을 강화함에 따라 지난날 권력을 가졌던 세력을 인종차별적/계급주의적 권력 집단으로 파악하는 적대(antagonism)의 전략으로 읽힐 수 있다. 일부 야당 지역에서 발생한 담론들은 ‘민중-민족(popular ethnic)’들에게 극단적이고 배제를 강화하는 반응을 촉발시켰다. 게다가 그런 담론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맞서왔던 혼혈인, 흑인, 원주민과 같은 민중에게 전통적인 형태의 인종 포퓰리스트 방식을 사용하도록 부채질하게 되었다. --- p.173
베네수엘라에서 두 기계(‘모토리사도-전쟁-기계’와 ‘미디어-기계’) 사이의 충돌은 2002년 4월 13일 우고 차베스 정권의 전복 기도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카라카스 슬럼가에서 발생하던 민중의 반(反)쿠데타 움직임을 은폐하기 위해 자체 검열에 들어갔다.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모토리사도가 정보를 순환시키고 차베스 정권의 복구를 염원하는 수많은 민중들을 동원하기 위해 거리를 점거했다. 그러나 2002년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이 ‘오토바이를 탄 폭도들(mobs on wheels)’이 국가권력 그 자체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정부를 복구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 p.231
‘자유를 향한 학생’은 표현의 자유와 베네수엘라 헌법 내에서 참여의 권리를 요구하는 자신의 논의를 주장하는 ‘반대에 충실한’ 이들이었으며 정부기구를 무너뜨리려 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차베스 정부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인정했다. 학생들의 행위는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정부는 거리의 분쟁을 반대파 학생과 볼리바르 지지자들 사이의 제도화된 논쟁으로 전환시키려고 했다. --- p.272
이렇게 마두로 후보의 선거 캠페인은 차베스 자신의 육체는 부재한 상태이지만 그가 한 번 더 선거에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베스를 잃은 상실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원할 것이라는 감정을 대중에게 유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즉, 죽은 리더가 참여한 캠페인의 연장인 셈이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서 선거의 슬로건은 죽은 자에 대한 충성의 서약으로 변한다. “차베스, 맹세컨대, 나는 마두로에게 투표하겠어요.” 정치선전의 아이콘으로 ‘마음’이 사용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다음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으로부터 마두로 지지를, 차베스여 영원하라.”
---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