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혁명-우리의 선언
20년 전 세븐스 제너레이션이 당시 포트 하워드 제지회사의 경영진에게 표백하지 않은 재활용 섬유로 화장실 티슈를 만들어 팔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웃었다. 당시에도 종이업계는 재생 폐휴지로 티슈를 만들었지만 그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재활용’이라는 말이 곧 ‘불량’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던 시대에 우리가 이를 고객에게 알리고 팔겠다고 나선 것은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우리는 업계의 관행을 깨는 일을 계속했다. 우리가 파는 제품을 우리 입으로 비판하고, 종업원 모두에게 주식을 나눠주었다. 최고 경영진의 봉급 총액이 비 간부 전체 직원 봉급의 14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강아지들이 버몬트 주 벌링톤에 있는 본사 구내를 돌아다니도록 놔두었고, 사무실 하나는 직원들의 낮잠용 방으로 만들었다. 제품 광고를 하는 대신, 통신판매 카탈로그 표지에 빌 클린턴과 앨 고어 얼굴을 넣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언제나 제품을 파는 회사라기보다 활동가 쪽에 더 가까웠고, 기업을 변화시키려는 운동에 동참한 몇 안 되는 기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벤&제리, 바디샵, 파타고니아, 워킹 애셋과 같은 이단자들과 나란히 기업이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무궁한 잠재력에 대해 토론을 거듭했다.
오늘날까지 세븐스 제너레이션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 책임 모델의 설계 실험실 역할을 했다. 거의 모든 일을 다 해보았고, 어떤 짓도 망설이지 않았다. 우리는 ‘기업 의식’corporate consciousness 담당 임원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20만 5000명에 이르는 의식 있는 소비자들로 탄탄한 세븐스 제너레이션 왕국을 세웠다. 우리는 PR 담당 임원 대신 대화 전문 ‘컨버세이셔니스타’conversationista를 두고 있다. 그리고 브랜드 매니저 대신 ‘브랜드 마더’brand mother가 있다. 우리의 기업 약속은 분기별 이익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시장점유율에 관한 게 아니라, 공정하고 평등한 세계의 창조, 의식 있는 소비를 권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연합체 구축에 관한 것이다. 우리 회사 이름은 광고 대행사가 작명한 게 아니라 이로쿼이족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녹색 제품은 자칭 ‘사회적 책임 기업’이라고 주장하는 기업만큼이나 그 수가 많다. 킴벌리 클락의 스카트 내추럴 티슈는 미국 내 월마트 매장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클로록스의 그린웍스 세제는 타겟에서, 유기농 치리오스 시리얼은 세이프웨이에서 판다. ‘청정 석탄’과 ‘온실가스 친화적’인 원자력은 연방정부가 나서서 홍보한다. 그리고 하이브리드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는 가까운 자동차 대리점에서 가면 볼 수 있다. 우리 운동에 사람들이 동참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운동에서 핵심 내용이 빠져 버렸기 때문인가?
분명히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 책임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건 사실이다. 언론은 호의적인 보도를 하고, 회의주의자들조차도 환경 개선과 에너지 효율이 비용을 절감한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올바른 처신을 약속하는 행동규약에 서명한 기업이 수천 개에 이르지만 2008~2009년의 끔찍한 경기후퇴를 초래한 사건들을 보면 진정으로 ‘책임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혁명이 필요하다. 이제는 더 이상 기업 책임과 관련해 그동안 해온 식으로 점진적 개선, 미세조정, 안이한 업그레이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점진적인 접근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피터 셍게가 최근 출간한 책에서 공저자들과 함께 선언했듯이 이 것은 ‘꼭 필요한 혁명’이다.(1) 이 혁명을 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혁명은 주인공들이 분수를 지키지 못해 피를 흘리고, 불행한 결말을 맺는다. 많은 기업 혁명가들은 현 상태를 단번에 뒤엎으려는 급진적인 일정을 선호했다. 그러나 결국엔 반동(예를 들어 리엔지니어링)에 얻어맞고, 부풀린 주장(닷컴 혁명) 때문에 평가절하 당했으며, 오만과 고삐 풀린 리스크 떠안기(금융파생상품 열풍)로 무너졌다. 우리가 시도하는 변화는 다르다. 이 혁명은 전면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만, 그 변화는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거의 무의식처럼 깊이 뿌리박은 방식을 치워내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방식에 얽매여 기업의 목적을 너무도 좁은 의미로 규정해 왔다.
너무도 많은 기업들이 너무도 오랫동안 기업 책임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활동이 사회에 손상을 주고, 환경을 훼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중요한 것은 그저 주가 상승과 경영진의 자리 보존뿐이었다. 소수의 쳀익이 다수의 복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지금도 사회적 이익을 이윤 동기보다 앞세우는 것을 고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낡은 정신 모델이 조만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점점 많은 기업 혁명의 선구자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이 벌써 바뀌고 있다. 생각이 바뀌면 우리의 미래도 함께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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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이 문제가 세븐스 제너레이션을 포함해 어떤 한 기업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역에 동참한 기업들이 복잡한 사회문제와 환경문제에 정면으로 맞섬으로써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수익을 증가시키는 효과적인 방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기업의 설립자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보면, 그들의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평소에 인터뷰를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비롯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많은 부류의 혁명가들이 우리와 만났다. 그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기들이 거둔 성공을 보고 배우고, 자기들이 저지른 실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많은 기업이 기업 책임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노련한 혁명가에서부터 시작해 기업 책임과는 관계가 없는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 모두가 최근 시작되고 있는 지속가능 경제에서 번창할 기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파타고니아, 오가닉 밸리, 세븐스 제너레이션 같은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점진적인 방법을 택한 개척자들이다. 이들은 과거의 성공을 기반으로 혁신을 계속해 왔으며, 이미 이룬 성공을 기반으로 선두에서 혁명을 이끄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나이키나 팀버랜드와 같은 큰 브랜드들도 있다. 이들은 오래 전에 부득이하게 변화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혁신의 강력한 동인으로 이용한다.
막스 & 스펜서나 노보 노디스크 같은 유럽의 선구적인 기업들도 포함시켰다. 이들은 가능성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해 나감으로써 경쟁 기업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베이나 IBM처럼 전통적인 기업들 가운데서도 혁명적인 성과를 낳은 경우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보유한 막강한 자원을 동원해 사회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푸는 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에치Etsy나 린든 랩Linden lab 같은 아웃라이어들도 있는데, 이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가장 앞서 실감한 기업들이다.
이들 반란가 그룹은 자신을 비롯해 어떤 기업도 책임 혁명이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지 못했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기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변화의 와중에 있다. 이들은 재정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하나같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물론 사명감에 기반을 둔 기업을 만드는 데 하나의 로드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혁신 기업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여러 항해 기준점을 보여준다. 각자의 사정에 가장 잘 들어맞는 항로를 찾고, 그들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책임 있는’ 기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위험할 정도로 편협하고 소심한 입장을 취해 왔다. 그동안 우리는 조금 덜 나쁜 기업이 되려는 정도의 노력을 두고도 이를 미화하고, 대단히 중요한 변화의 사례라고 추켜세웠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행동을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호도했고, 겨우 기존 규정을 따르는 정도의 조치를 ‘발전적인 조치’라고 떠들었다. 그리고 요란한 미사여구로 가득하지만 실패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업 책임 보고서를 수백만 부씩 만들어 돌렸다.
책임 혁명은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며, 공장을 감시하고, 자선 기부를 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그것은 기업에 대한 생각을 안에서부터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즉 일하는 방법을 새롭게 혁신하고, 새로운 경쟁 논리를 도입하며, 앞장서서 개척할 새로운 분야들을 찾아내고, 기업의 목적 자체를 다시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기업 책임의 영역뿐 아니라 전략, 리더십, 경영 분야에서도 최고의 선택이 무엇일지에 대해 머리를 모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 이 책의 핵심 원리 일부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앞으로 그 원리들을 설명하면서 누가 도움을 주었는지 일일이 감사를 표할 것이다.) 우리는 혁명가 기업이라는 새로운 부류의 기업들이 어떻게 이론을 실천으로 바꾸고, 더 큰 이익에 어떻게 기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수익도 증대시키는 조직을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은 변화에 대한 책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기업이 안으로부터 변하는 것에 도움을 주려고 쓴 책이다. 기업이 우선순위를 바꾸고, 조직을 정비하는 법, 경쟁 방법,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변화시키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쓴 책이다.
우리는 많은 기업, 어쩌면 대부분의 기업이 기존의 행태를 스스로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변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무슨 계시의 불빛을 보고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수의 소비자와 떼거리로 몰려드는 경쟁자들,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종업원들, 그리고 비록 뒤늦게 반응하지만 연방정부까지도 그들을 변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고, 책임혁명은 퍼져나가고 있다. 어쩌면 여러분도 반란이 여러분의 업계를 휘젓기 시작한 것을 목격하고, 그 변화의 선봉에 서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명분의 세계에 동참한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