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당대의 보수적인 세력으로부터의 증오, 독일 관념론의 오해, 20세기 의식 철학의 각광 이면으로의 침잠. 스피노자는 잊힌 적은 없으나 올바로 알려질 기회 역시 정당하게 가져 보지 못하고 사상사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눈부신 귀환은 이루어진다.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스피노자 연구 이후 스피노자는 진보적인 현대철학자들이 자신의 무기를 주조해 내기 위한 거대한 대장간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끝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처럼 강력하게 우리 시대를 흔들어 놓았다. 이 책은 그 진동의 기록이다.
“어두운 계몽의 철학자.” 이스라엘의 철학사가 요펠은 스피노자와 프로이트를 한데 묶어 이렇게 칭한 바 있다. 이 모순 형용은 실상 계몽의 극단을 의미한다. 이성의 타자가 적극적 고려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철저한 이성적 인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에게 무지는 빛, 곧 인식의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인간은 앎을 갈구하는 만큼이나 앎에 저항한다. --- 「스피노자와 프로이트」
스피노자와 푸코 두 사람 모두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관념은 예속화하는 권력이 산출하는 가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가상을 극복하는 길은 사회 계약론에 함축된 부정적인 권력 개념 대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권력 개념(또는 스피노자에게는 ‘역량(potentia)’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의 예속화와 다른 주체화의 양식을 모색하는 길이었다. --- 「스피노자와 푸코」
제국의 정복이 깊어질수록 우리 시대는 더욱더 스피노자의 시대와 가까워진다. 즉 사람들이 희망보다 두려움에 이끌리고, 삶을 확장하려 하기보다 죽음을 면하는 데 목표를 두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자에게 예속되어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강제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원성의 관점에서 볼 때, 다중의 능력의 한계에서 주권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권의 한계는 다중이 결정한다. 그리고 다중은 자유로워질수록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이끌린다. --- 「스피노자와 네그리」
대중은 폭력적이고, 불안정하고, 자질이 없으므로 정치에 대한 공적 논의에 참여시킬 수 없다는 귀족주의자들에게 스피노자는 대중은 정말 그렇다면서 기꺼이 양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덧붙이죠. 인간의 본성은 똑같은 이상, 귀족주의자들에게서도 똑같은 악덕이 발견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비밀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어 전제정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는 대중과 더불어 논의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