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皇父 섭정왕攝政王은 조선 국왕에게 칙유勅諭한다. 내 여러 왕, 패륵貝勒, 대신들이 수차례 의견을 냈다. “예로부터 번국藩國의 참한 여성을 가려서 비妃로 삼은 전례가 있으니, 대신을 조선으로 보내서 숙녀를 가려 비로 삼아 조선과 인친姻親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이니만큼 옳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특별히 대신들을 보내어 인친에 관한 일을 유시諭示하도록 했다. 그대 조선은 이미 우리와 한 나라가 되었는데, 다시 인친을 맺는다면 그 사이가 더욱 오래도록 견고해 앞으로 다시는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왕의 누이나 딸, 혹은 왕의 근족近族이나 대신의 딸 가운데 참하고 덕행이 있는 자가 있으면 선택해서 짐이 보낸 대신들에게 보이도록 하라. ---「제1부_자색」중에서
효종은 파흘내가 찍은 이개윤의 딸을 만나보고는 이렇게 말했대요. “사람됨이 꽤 주밀하구나.” 사람됨이 주밀하다? 아, 주밀이 무슨 뜻이냐고요(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요)? 주밀은 주도면밀周到綿密이에요. ‘주의가 두루 미쳐 자세하고 빈틈이 없다’라는 뜻이에요. 앞뒤 좌우 꼼꼼히 살펴보아도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이거예요. 효종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개윤의 딸더러 주밀하다고 했을까요? 이 말도 안 되는 코믹 호러에서 주밀하다는 것은, 주의가 두루 미쳐 자세하고 빈틈이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제2부_주밀」중에서
도르곤이 처음에 공주를 보고서는 상당히 기뻐하는 기색을 나타냈으며 신들도 후하게 대우했다. 그런데 북경에 도착한 후에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 공주가 아름답지 않고 시녀도 못생겼다는 이유를 들어 온갖 방법으로 힐책을 한 것이다. ---「제4부_일변」중에서
이 혼례가 어떻게 이루어졌지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효종과 이개윤이 밀실에서 담합한 결과지요. 국가의 안위를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두 아버지는 대개의 아버지들이 그렇듯 안타깝게도 열여섯 의순공주의 마음 따위에는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 물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조선의 처녀, 그것도 종친의 처녀이기에 오가는 이야기를 얻어듣고 나라를 위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무조건 따르기로 결심을 하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소리 지르지도 않고, 칼부림 자해 소동도 벌이지 않고, 강에도 뛰어들지 않고, 산 넘고 물 건너 산해관까지 왔을 것입니다. ---「제4부_일변」중에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 이는 절의가 국가에 관계되고 우주의 동량棟樑이 되기 때문이다. 사로잡혀 갔던 부녀들은, 비록 그녀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절의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의 집과는 의리가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최명길은 비뚤어진 견해를 가지고 망령되게 선조先朝 때의 일을 인용해 헌의하는 말에 끊어버리기 어렵다는 의견을 갖추어 진달했으니, 잘못됨이 심하다. ---「제5부_공론」중에서
경인년에 청나라 사람이 급히 와서 혼인을 요구하니…… 금림군 이개윤이 자청해 그 딸을 보냈다. 이는 나라를 위하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국에서 보내는 혼인 예물이 많음을 탐낸 것이다. 개윤의 집이 극히 가난했는데 이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딸은 의순공주라 이름했는데 도르곤이 받아들였다가 뒤에 소박해버리고 그의 하졸에게 시집보냈다. 이행진이 개윤과 함께 사신으로 북경에 가서 글로 아뢰어 그 딸을 데리고 돌아오니, 당시의 사람들이 침을 뱉고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