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화와 복식문화의 이해
인간은 누구나가 그가 태어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 속에서 삶을 시작하여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획득하여 삶을 영위해 간다. 먼 과거부터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 했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음식. 주거. 의복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Kefgen과 Specht는 각 사회가 음식, 주거, 의복 등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발견해 왔다고 밝히고, 이 해결책을 문화라 칭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문화라는 단어를 많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인종이나 국적 혹은 민족을 지칭하기 위해, 음악이나 예술의 추세를 설명하기 위해, 음식이나 의복 혹은 의례나 전통 혹은 유산을 지칭하기 위해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신체적 및 생물학적 특성들과 행동들을 표현하는 데에도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Murdock, Ford와 Hudson (1971)은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79개 다른 국면들을 열거하였고, Barry (1980)는 그것들을 ① 일반적 특성들 ② 음식과 의복 ③ 주거와 기술 ④ 경제와 운송 ⑤ 개인 및 가정의 활동들 ⑥ 지역사회와 정부 ⑦ 복지, 종교 및 과학 ⑧ 성과 생활주기라는 8개의 생활 활동범주로 재정리하였다. 이 범주들은 문화가 생활의 많은 국면들과 관된다는 것과 문화라는 단어가 하나의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문화라는 용어가 어떤 것은 음식과 의복 등과 같은 물질적인 것을 지칭하고, 어떤 것들은 정부조직과 지역사회 구조 같은 사회학적 및 구조적인 것들을 지칭하며, 어떤 것들은 개인적인 행동들을, 어떤 것들은 종교와 학문처럼 조직화된 활동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가 생활과 삶의 매우 많은 것을 지칭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행동, 생각, 의례와 전통에서 보여지는 인간행동의 차이들 즉 문화의 표현들인 것이다. 예컨대, 타인들에 대한 인사행동은 악수를 하거나 머리를 약간 숙이거나 기도하는 사람처럼 양손을 함께 모으는 등 각 문화권의 규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화가 한권의 책이나 한 학기의 강의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거대한 개념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복식은 특히 상징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문화요소라 할 수 있으며 이 장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복식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용어가 전 세계 여러 민족의 문화를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비교·연구하는 문화 인류학의 핵심 개념이고 복식문화는 문화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에서 먼저 문화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 복식문화의 기원과 동기, 복식문화의 범위, 복식문화의 특성, 복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요인 및 복식의 기능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문화의 이해
1) 문화의 개념
오늘날 일상용어나 전문 학술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화라는 단어는 영어의 culture, 독일어의 kulture를 번역한 것으로 이들 모두 라틴어의 cultra에서 온 것이며 cultura은 ‘cultus’에서 유래한 것이다. cultus란 원래 ‘밭을 경작(耕作)한다’는 의미, 즉 ‘자연에 노동을 가하여 수확한다’는 의미를 지녔으나 이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를 상승시킨다’ 는 의미로 변화되었고, 다시 ‘가치를 창조한다’ 는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여기에 교양이나 세련이라는 의미가 추가 되었다(이광규, 1983).
따라서 오늘날 일반인의 상식에서 ‘문화’라 하면 특수화한 분야, 이를테면 미술, 음악, 문학 등을 의미하게 되었고, ‘문화인’ 이라하면 교양 있는 사람, 세련된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Belas & Hoijer, 1963).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사적 즉 역사적 관점에서의 문화는 지식이나 미술 등 특수 분야의 발달된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희랍문화라 하면 희랍의 지식인이나 예술가 등의 행위의 결과를 말하거나 더 좁게는 희랍의 황금시대의 지식인,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된다.
그러나 문화를 원의에서 광의로 해석하면 자연에 인공을 가한 것이 되고 인간에 의해 이룩된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현상이 아닌, 자연법칙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인간에 의해 이뤄진 문화라 할 수 있다.
문화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초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비서구 지역의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류문화에 대한 비교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으며, 19세기 중반부터 여러 사회의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다양한 관점들이 이론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 마케팅 학자들은 소비자 상품으로서 의복이 어떻게 우리가 사는 지역의 문화를 전달하는가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의미가 전달되도록 광고될 수 있는가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사회학과 인문학에서도 문화라는 개념이 활성화되었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흥미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확산된 문화연구 운동(cultural studies movement)에 의해 가속화 되었으며, 문화에 대한 새롭고 학제적인 이 접근은 예술, 미디어, 한 문화 혹은 한 문화내의 집단들을 특징짓는 역사적, 현대적 가치체계나 이데올로기 및 사회생활의 상징적 국면과 패션을 위시한 표현문화 혹은 문화의 물질적 국면에 대한 관점을 통합한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을 위한 추진력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한 예술형태(art forms)에 있어서의 심미적, 사회적 기준의 붕괴였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펑크 하위문화로부터 출현했던 반항적이며 강렬한 록음악, 기발한 머리모양과 복장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1) 문화의 정의
문화라는 단어만큼 흔히 사용되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물었을 때 각양각색의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개념도 흔치 않다. 문화인, 문화민족, 문화계, 문화시설, 문화유산, 문화영화, 고급문화, 한국문화, 동양문화, 서구문화 등에서처럼 문화라는 용어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경우들에서의 ‘문화’라는 용어가 모두 동일한 개념에 기초한 복합어들이 아니다. 때로는 문학 및 예술분야를 지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성, 지식, 개화된 것, 발전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특정한 인간집단 또는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활양식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가 무엇인가 대해서는 인류학자들도 아직까지 일치되는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Kroeber와 Kluckhohn(1952)은 문화에 대한 표준이 될 만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문화: 개념과 정의에 관한 비판적 검토”라는 저서에서 인류학자들이 내린 문화에 대한 175개의 상이한 정의를 검토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얻은 문화의 정의마저 인류학사에 또 하나의 추가적인 정의를 가져왔을 뿐이다. 다만 ‘인간이 문화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서만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으며 이것이 문화가 인류학의 핵심적인 개념이 되는 이유이다. 문화가 무엇인가에 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문화라는 단어를 최초로 인류학에 소개했던 영국인 Edward B. Tylor (1832-1917)는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 1871)」라는 저서를 통해 “문화 또는 문명이란 지식, 신앙, 예술,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사회구성원인 한 인간에 의하여 획득된 모든 능력이나 관습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다”라고 규정하였다. 이 정의는 문화에 관해 내려진 최초의 정의인 동시에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널리 인용되고 있다. 타일러는 이 정의에서 문화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다른 저서들을 통해서도 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타일러에 의하면 문화는 신앙, 관습 등은 물론 손도끼, 쟁기 등의 구체적인 사물뿐만 아니라 그릇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등의 기술까지를 포함하는 인간 고유의 모든 사물과 사건들이다.
위슬러(Wissler, 1929)는 문화가 인간이 소유한 능력의 소산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 하는 삶의 지혜를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문화란 이런저런 사람들의 생활방식(the mode of life of this and that people”이라 하였다. 린튼(Linton, 1936) 역시 문화를 “어떤 사회의 총체적 생활양식(the total way of life of any society)”이라 정의하였다. 클러크 혼(Kluckhohn, 1951)은 이들이 말하는 생활방식 혹은 생활양식이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의 구체적 행위가 아닌 생활계획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문화를 ‘생활의 설계(design for living)'라 정의하였다. 구디나프(Goodenough, 1961)는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보다 유리하고 효과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의 설계가 모든 생활영역에 통합된다고 보아 문화를 '생활의 유형(pattern of life)'이라 정의하였다.
한편 인류학에서 타일러의 입장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화이트(White, 1977)는 무엇이 동물계에서 인간의 행위를 다른 동물의 행위와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가에 주의를 돌려 ’인간은 상징(symboling)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 착안하였다. 즉 그는 인간은 자유롭게 또한 인위적으로 의미를 창조하고 결정하며, 이를 외계의 사물과 사건들에 부여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또한 그러한 의미들을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상징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을 주시하였고 이것이 바로 문화의 기초라고 보았다. 외계의 사물이나 사건이 지니는 의미들은 감각으로 포착될 수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다. 따라서 상징을 한다는 것은 곧 의미를 창조하고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화이트가 즐겨 들었던 의미창조의 구체적인 예는 보통의 물과 구별될만한 화학적 성분을 갖지 않는 성수가 인위적으로 부여된 의미 때문에 종교인들에게는 보통의 물과 달리 강력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었으며, 그는 이러한 인간고유의 상징행위에 기초한 사물 및 사건들 즉 상징물(symbolate)이 문화를 구성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Horn과 Gurel(1985, 36)은 인간행동의 근원을 사전학습 없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본능과 개인적 경험을 통한 시행착오 및 모방이나 직접교육을 통한 학습으로 보았고, 학습된 행동이 문화를 구성한다고 하였다.
(2) 문화와 문명
문화와 유사한 용어로 문명이라는 용어가 있으며, 문명은 앞서 문화를 정의한 타일러의 경우에서처럼 문화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웨버와 같은 학자는 문화는 철학, 종교, 예술과 관련된 것이고 문명은 과학, 기술과 관련된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물질적인 번영을 문명의 속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문명(civilization)이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civis’, 즉, 도시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문명이란 도시적인 것,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문화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문화가 문명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인데 반해 문명은 예술. 과학. 사회. 정치 등이 보다 복잡하게 발달한 고문화(high culture)를 의미한다는 것이다(Hultkrantz, 1960).
로마에서는 ‘civis’를 로마시민을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18세기 후반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는 문명이라는 단어를 ‘예절바른’, ‘세련된’이라는 뜻으로 하여 궁정의 관습에 훈련된 귀족계층의 행동방식이나 생활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미개함을 탈피한 인간의 업적이나 행동양식으로 간주하여 타민족·타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데에도 문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2) 문화의 속성
비록 학자에 따라 문화라는 용어가 달리 정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가 어떠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는 문화의 속성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문화는 공유된다
한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어느 누구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싫어하며, 또 어떤 사람은 꽃가꾸기를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즉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취향이나 버릇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행위에 있어서의 이러한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위에서 다른 사회구성들의 행위와 구별될만한 공통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취향이나 버릇이 아닌 이런 공통적인 경향을 우리는 문화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개성(individuality)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중시할지라도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행동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문화는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shared)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한 사회의 문화가 개인에 의해 표현되고 담당되지만 사회의 승인을 받은 행위여야 하기 때문에 문화는 개인을 초월한 초개인적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Kroeber, 1948), 개개인의 독특한 취향이나 버릇이 사회의 다수에게 공유될 때에만 그 사회의 문화가 된다.
여기에서 공유되는 것은 피부색, 얼굴의 골상 등의 신체적 특성들이나 특별한 지역 내의 시민권 혹은 생활공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생활과 행동의 국면 및 마음의 내용들 즉 아이디어, 태도, 가치, 신념들의 공유를 의미한다. 또한 공유된 행동들은 실제로 관찰가능하고 공유되는 문화적 가치들과 규범들 때문에 공통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한 문화 구성원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는 것은 이 공유된 현상의 부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문화의 공유되는 속성의 한 예가 언어이다. 언어는 개개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만 개인이 임의로 단어나 문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그 언어의 문법에 따라 단어를 배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고, 특정상황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와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복식문화 역시 한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다. 예를 들면 미국의 남성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인도 여성은 사리를, 에스키모는 파카를 입는다. 특히 서구화된 패션 이전의 모든 민속복(folk costume)은 모두 공유된다는 문화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준다. 문화의 이런 속성은 집단 구성원들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공동의 장을 마련해준다.
한편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서의 문화는 그 사회의 단위에 따라 여러 가지 상이한 차원의 문화로 분류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한국문화는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하위집단들(subgroups)의 특징적인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하위문화들(subcultures)을 포함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