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 대한 관심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심장을 흔들어 놓는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필름이라 꼽을 만한 몇 편의 영화.
시네마 천국, 그랑블루, 대부, 말레나, 일 포스티노.
시칠리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소중한 보물을 혼자만 아껴두고 싶은 마음과
그곳의 아름다움을 지인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기도 하고, 시칠리아 구석구석의
경이로운 감동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을까 두렵기도 하다.
내가 시칠리아에 완전히 매료된 것처럼
시칠리아 땅을 밟고 그 공기와 그 햇살을, 그 바다를,
그 하늘을, 오랜 이야기를 품고 세월을 견뎌 온 그 마을을,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이들은
분명 시칠리아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낭만을 알게 될 것이고,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한 인간으로서 신을 만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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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후의 섬들은 대개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하게 마련이지만 시칠리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답게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에트나는 수시로 연기를 뿜어내는 장관을 연출하고, 에트나의 대형 폭발로 온 도시가 용암으로 뒤덮였던 카타니아는 도시의 모든 건축물과 바닷가 돌 하나까지 모두 어둡고 검은빛을 띄고 있다. 반면 시라쿠사와 에올리에 제도의 섬들은 그리스에 와있는 것처럼 눈부시게 하얀 집들이 가득하다.
섬의 어떤 해안은 고운 금빛 모래로 아름답고, 어떤 해안은 검은빛 모래로, 어떤 해안은 크고 굵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그리젠토에서 가까운 스칼라 디 투르키의 웅장하고 깨끗한 바위 계단은 사진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멋진 곳이다. 어떤 바다 빛깔은 쪽빛이고, 어떤 바다 빛깔은 검푸르며, 어떤 바다 빛깔은 에메랄드 빛이다. 해변 곳곳에서는 자유롭게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사시사철 보이는 알록달록한 선인장은 ‘과연 지중해 한 가운데 와 있구나’ 라는 자각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겨울시즌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형성된 어마어마한 천둥소리를 경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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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섬 동부 해안 이오니아해가 내려다 보이는 타우로산(Monte Tauro) 기슭, 해발 204m의 절벽 위에 형성된 작은 마을 타오르미나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시칠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이곳은 이탈리아인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과 전 세계의 부호와 작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곳으로 괴테, 뒤마, 모파상, D.H. 로렌스, 바그너, 브람스, 오토 젤룽, 클림트 등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곳으로 유명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그리스 극장 테아트로 그레코(Teatro Greco)에 다다르면 기원전 395년에 지어진 그리스 유적 뒤로 코발트 블루빛의 바다와 흰구름, 멀리 남서쪽으로 해발 3,323m의 에트나산이 검은 연기를 뿜고 있는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괴테는 이곳을 ‘작은 천국의 땅’이라고 묘사했고, 타오르미나를 사랑했던 소설가 모파상은 ‘모든 것들은 마치 인간의 눈과 정신, 그리고 상상력을 유혹하려고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라는 찬사를 남겼다. 포르타 카타니아(Porta Catania)와 포르타 메시나(Porta Messina)를 연결한 중심거리 코르소 움베르토(Corso Umberto)에는 럭셔리 호텔과 부티크, 기념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 등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잡아 이끈다. 영화 [그랑블루]의 주요 장면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매해 여름 국제영화제 타오르미나 필름페스트(Taormina Film Fest)와 오페라, 무용, 연극, 음악 콘서트 축제인 타오르미나 아르떼(Taormina Arte)가 개최되어 시칠리아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발 450m의 타우로산에는 독립된 세 개의 작은 마을이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아래는 그리스가 시칠리아섬에 처음으로 건설한 식민도시였던 지아르디니 낙소스(Giardini-Naxos)가, 낙소스에서 조금 떨어진 높은 곳에 타오르미나가, 타오르미나에서 굽어진 산길을 5km 정도 올라가면 아담한 힐탑빌리지 카스텔몰라(Castelmola)가 있다.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 온 해적과 외세의 침략을 피해서 보다 높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온 시칠리아인들의 고단한 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며 높은 절벽 위에 건설된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해안의 마을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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