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분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시간이 되면 그녀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기 이름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떠벌리며 작부 노릇을 하는 옥개라는 여자는, 바로 논개의 단짝 친구인 섭냄이의 맏언니였다. 선학산 우묵진 곳에서 동네의 홀아비와 산짐승처럼 상(合根)을 하고, 시집가기 전전날도 못가 상엿집에서 기성을 내지르며 일을 벌였던 바로 그 옥개였던 것이다.
매분은 그녀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에게서 처음에 느꼈던 경멸감이 스러진 것은 틀림이 없었다.
김언기는 속엣말을 다 털어 내는 옥개의 얼굴을 건너다보면서 고개를 설설 내젓고 있었다.
“밥은 못 먹어도 그거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네년은 아마도 색골인 게 틀림없구나. 합궁을 안 하고도 잘도 살아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네년은 그 짓 못 하면 미친다니 말이다.”
“맞아예! 지는 색골인 기 틀림없는 거 같아예.”
옥개는 김언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까지 맞장구를 친다. 수치감이라든가 창피스러움이라든가 하는 감정은 일절 없는 사람처럼 그의 모욕적인 빈정거림에도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하는 것이었다. ---「기생의 삶, 기녀의 한」중에서
논개의 말에 이날 참여한 열한 명의 회원들 중 가장 나이 어린 열다섯 살의 소심이 끼어들었다.
“논개 성님! 태평성대에 의병은 왜 양성하십니까요? 논개 성님은 남자로 태어나셨으면 아마도 의병이 되셨을 기라예. 의병에만 관심이 있으시거든예!”
“은애하는 의병이 혹여 우리 논개님 가슴에 묻혀 있어서, 의병에 대해 유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제.”
애단이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소심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묵묵히 음식만 씹고 있던 열아홉 살 지향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라. 논개 아우님은 천생 남정네로 태어날 사람이 물건을 잘못 달고 나와서 그런 거 같아. 여자처럼 곰살맞은 면보다 활 쏘고 창 던지고 돌팔매질에 씨름꺼정, 그 힘센 것 보면 알 수 있제.”
논개가 웃었다.
“애단님이나 지향 성님 모두 마음대로들 생각하십시오. 저를 두고 어떻게 얘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소심 아우님이 말한 ‘태평성대’라는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왜인의 노략질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잦았습니까? 또 위쪽에서는 야인野人들이 호시탐탐 우리 조선을 먹겠다고 노리고 있는데 태평성대라고는 말할 수 없지요. 들리는 소문으로, 왜인 첩자들이 변장해서 우리 땅에 들어와 우리 강토를 삼키기 위해 방방곡곡 길을 익히고 다닌다는 말도 있고, 또 얼마 가지 않아 왜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으니, 예사로운 때가 아니지요. 나라 인심들이 이리 흉흉할 때는 우리는 무조건 유비무환으로 나라와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해요. 관군들만으로는 나라를 지키기 어려우니 의병들이 많이 양성되어서 건재해야 왜인이나 오랑캐들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의기회의 아침」중에서
다음 날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논개는 말을 타고 언덕길을 달려 강가로 내려갔다. 강에는 아무도 없었다. 희부연 하늘빛 아래 강물이 검게 흐르고 있었다. 논개는 말에서 내려 ‘물돌이 소’가 있는 곳을 향해 큰절을 네 번 했다. 그리고 힘껏 소리쳐 설매를 불러 본다.
“어머니이. 어머니이.”
절규하듯 울부짖는 소리가 강물 위로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초희 월향이 잘 키우고 어머니 재산 유익하게 사용할 테니 걱정 마셔요.”
논개의 울부짖음은 그냥 통곡으로 변한다. 무슨 팔자로 친모는 흙에 묻고 양모는 물에 묻어,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야 하는지 못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논개는 다시 말 위에 올라 강둑을 달리기 시작했다. 몸에 닿는 새벽 공기가 시원했다. 그녀는 남강 활터로 내려가 미명 속의 과녁판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휭휭 날았다. ---「끊어진 인연, 이어진 사랑」중에서
논개가 돌아서서 두 촛대의 불을 껐다. 커다란 병풍으로 겹미닫이문을 가려서인지 방 안은 캄캄하고 두 사람의 숨소리와 비단옷 스치는 사각거림만 들렸다. 그의 손길은 보물을 더듬듯 조심스럽고 연신 떨렸다. 실오라기 하나 감지 않은 원초의 나신 위로 서툰 악사가 악기의 현 을 건드리듯 그의 손길은 방황했다. 매끄럽고 탄력 있는 몸뚱이는 대책 없이 뜨거운데, 바람 끝에도 파르르 떠는 신경초 이파리처럼 논개의 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봉긋 솟구친 가슴은 그의 손길이 닿자 반사적으로 흔들렸고, 손끝이 아래로 흘러내리면 그녀는 숫제 몸뚱이를 고둥처럼 둥글게 웅크렸다. 그녀는 그러는 자신에 내심 적잖이 실망했다. 넋이 빠질 듯 그를 흠모하는데도 몸뚱이는 반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려 스스로 거듭 다짐을 두어도 몸은 따로 반응했다. ---「끊어진 인연, 이어진 사랑」중에서
강좌가 끝나고 밤이 되자 강동찬이 논개를 지그시 끌어안았다. 논개는 숨 막히게 죄어드는 그의 가슴 안에서 병화는 필시 일어나는 것이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가 큰 숨을 뿜어내며 그렇다고 했다. 그것도 먼 훗날의 일이 아니고 바로 최근의 조짐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논개의 귓가에 대고, 왜침이 있게 되면 행동을 섣불리 하지 말고 자중하면서 기회를 엿보아야 할 것이며, 억만금보다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병화가 일어나면, 필히 전장의 선두에 서실 어르신이 저는 더 걱정이옵니다. 한시라도 어르신 혼자의 몸이 아니심을 염두에 두시오소서.”
“걱정 마라. 사람의 명줄이 그리 간단히 스러지는 것은 아니며 하늘에 매였느니라. 가만, 논개야! 왜 우리가 상서롭지 못한 생각으로 이 소중한 밤을 흘려보내야 한단 말이냐. 이리 오너라.”
---「임진년의 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