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미국 사람들이 혼자 사는 데 익숙해졌다지만, 나이 들어선 정을 무척 그리워합니다. 그걸 밖으로 내놓지 않을 뿐, 그 외로움의 실상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늘 그들을 찾아가는 우체부는 쉽게 그들과 친해졌던 것 같습니다. (……) 저는, 감히 제가 미국생활에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엘 왔고, 이들은 '성공'이라는 가치를 쫓아왔습니다. 미국에 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신의 꿈이 '성공'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그 '성공'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미국 생활에서의 성공은 ‘그 사회에 녹아드는 것’입니다. 내가 그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녹아들어가 그 사람들과 삶을 교류하는 것… 그래서 거기서 따뜻한 인간관계를 쌓아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이민 생활 성공의 열쇠이며, 또한 목표가 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따뜻한 성공 〈우체부가 즐거운 이유〉 중에서
“뭐,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 하지만, 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어." 무뚝뚝한 스티브의 얼굴에 약간 멋쩍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 “내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더라고. 길가로 나가니까 말이야, 그제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같더군." 스티브는 일선에 나서는 ‘프론트 라인’이 중요하다는 소신대로 살았고, 그가 원하는 삶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것입니다. 최전선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의 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 그런 일을 겪은 후, 나는 내 일에 더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레귤러가 됐고, 내가 고생했었던 그 라우트에서 '누구보다도 사랑받는 우체부'가 되었습니다. --- 〈영원한 현역〉 중에서
제가 일하는 브로드웨이에는 정말 커피와 차에 관한 한 ‘스타벅스는 저리 가라’ 할 만한 커피전문점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스타벅스가 시애틀 커피의 대명사라는 점을 굳이 부인할 필요야 없겠죠. 그래도 캐피탈 힐과 브로드웨이라는 젊음의 거리에서는 이런 작고, 예쁘고, 개성 강한 커피숍들이 더 인기 있는 듯합니다. (……) B&O는 시애틀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커피숍 중 하나입니다. 주인은 아랍 사람들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마시는 드립 커피는 유난히 부드럽고 구수합니다. (……) Peet's Coffee의 라테는 정말 예술입니다. 맛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커피 한 잔에 이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도 언제든지 커피 애호가들로 가득 차 있지요. 오후에 잠깐 시간 보내기엔 더없이 괜찮은 곳입니다. 이곳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며, 커피향이나 다향을 느끼는 것은 브로드웨이 사람들의 특권이라 느껴질 정도로 말이지요. (……) Espresso Vivace Roasteria의 라테는 정말 예술입니다. 맛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커피 한 잔에 이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도 항상 커피 애호가들로 가득 차 있지요. --- 〈스타벅스 우습게 아는, 시애틀의 커피전문점들〉 중에서
미국 우체부들이 1년 중 가장 크게 언론에 알려지는 때는, 매년 5월 노동조합 차원에서 벌이는 음식 마련 행사인 ‘푸드 드라이브Food Drive'입니다. (……) 제가 돌리는 우편물을 받는 주민 중 ‘자넬’이라는 맹인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엔 열두 세대가 사는데, 그 열두 세대 중 이번 푸드 드라이브를 위해 음식을 기부한 건 그 할머니뿐이었습니다. 자넬 할머니는 많은 음식을 담은 종이 봉투 옆에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이 봉투는 푸드 드라이브를 위한 것'이란 글을 남겨 놓았더군요. (……) 우리는 사회에서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작은’ 배려를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때 사회나 이웃이 아무런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질까요? (……) 그러고 보면, 남을 배려한다는 건 어쩌면 ‘미래의 나’를 배려한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를 위한 나눔 〈자넬의 푸드 드라이브〉 중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타지에서 손님이 온다면 틀림없이 모시고 갈 곳들 중 1순위로 꼽히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이곳엔 시애틀 1가에서 워터프론트와 퓨젯사운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활기찬 시애틀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가장 에너지가 톳치는 곳으로 불리는 이곳은, 1907년에 생긴 오래된 시장입니다. 항상 신선한 야채와 어패류 등이 풍부하고 각종 민예품, 장신구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직판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제가 만일 시애틀을 떠나 살게 된다면, 그래서 시애틀을 그리워하게 된다면, 바로 그 정서들을 찾아올 곳으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꼽겠죠. 그리고 이곳은 기억 속의 그 정서, 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 〈시애틀의 추억 응집소,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중에서
12월은 우체부들에겐 연중 가장 힘든 때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보람을 느끼는 때이기도 합니다. 손님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체부들에게 선물을 줄 때도 있기 때문이죠. 주민들이 자기 우체부들이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내 주는 이 성원, 정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 눈 속을 헤치고 가서 어떤 아파트에 배달을 시작하려 메일 박스의 큰 도어를 연 순간, ‘우리의 우체부 조셉에게'라고 쓰여진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 집에 와서 열어 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와인 상품권이었습니다. (……) 조금 놀랐습니다. 그동안 저와 대화하면서 제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걸 기억해 주고, 또 특별히 고려해서 이렇게 와인 상품권을 마련해 주다니. 왠지 미안하기까지 하더군요. (……) 그날 오후, 저는 이 상품권으로 무슨 와인을 살까 생각하면서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와인이 제 품으로 들어온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 즐거운 밥벌이 〈세상의 모든 와인을 선물받은 날〉 중에서
마가렛 할머니의 아파트 앞에 다다랐습니다. 캐나다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여든다섯 살의 스코틀랜드 사람, 마가렛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지 꽤 오래됐고, 지금 살고 있는 벨몬트 거리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40년 이상을 살았다고 합니다. (……) 그날은 다른 주에 사는 마가렛 할머니의 친구가 선물을 보냈던 모양인데, 그게 꽤 무거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지역에 배달을 하는 우체부들은 이런 무거운 소포가 왔을 경우, 분홍색 통지서에 소포가 왔다는 것을 통지만 합니다. 그것은 일단 아파트 우체통 앞에 소포를 방치함으로 생길 수 있는 도난사고를 예방하자는 이유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우체부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나 발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수취인이 나이도 들고 차도 없는 걸 뻔히 아는 제가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더군요. 결국 그 소포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 “내가, 여기에 40년 이상 살지만, 사실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다들 우체통 앞에 소포를 놓고 갔었는데." (……) 그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저를 꼬옥 안으십니다. “조셉 …… 나의 수호천사.”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행복을 배달합니다〉 중에서
이른바, ‘미국 커피 문화의 중심지'라고까지 불리는 시애틀. 이곳이 커피의 도시임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스타벅스, 시애틀즈 베스트, 툴리즈 등이 모두 시애틀 산입니다. 커피하우스도 사실 유명한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커피전문점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지만, 스타벅스는 원래 시애틀의 작은 커피숍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시애틀 수퍼소닉스 프로농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던 하워드 슐츠가 이 작은 체인을 이렇게 세계화된 큰 기업으로 성장시켰지요.(……) 시애틀에서의 커피는 분명 그 느낌이 다릅니다. 커피를 안다는 멋쟁이들이 자기들이 분명히 선호하는 타입의 커피를 찾아서, 날씨에 상관없이 늘 한 손엔 커피잔을 들고 옆구리에 책을 끼고 걸어다닙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커피가 자기들의 아이덴티티가 된 이곳의 특이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도, 저에게도, 커피는 휴식이며 낭만입니다. --- 작은 풍요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맛은?〉 중에서
영어의 appreciate에는 ‘감정하다’라는 평가의 뜻도 있지만, 어떤 것에 ‘감사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와인은 감정하고 평가하는 대상이 되기보다는,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지. 생각해 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만드는 데 수고하는지를. 나는 와인 소매업을 했기 때문에 와인을 판매의 대상으로, 또 단지 즐거움의 대상으로 느꼈지만, 와인을 마시면 마실수록 그리고 좋은 와인을 발견할수록, 그것이 단지 애호의 대상이 아니라 그 와인을 만들어 준 많은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 우리가 ‘와인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와인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도 되지.” (……) 와인뿐일까요. 세상의 어떤 음식이든 인간의 수고가 합쳐지지 않은 것이 없는 거지요.(……) 댄의 말대로 세상의 모든 와인에 감사하듯,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음미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기〉 중에서
기자가 되었다가 경찰을 꿈꿨다가 우체부가 되기까지… 미국 생활을 통해, 저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내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아마 저는 이 많은 일들이 가져다주는 변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저 좇아가느라 허덕이기만 했겠죠. 아니면, 좇아가면서도 늘 불만에 차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늘 나를 이해해 주고 내게 힘이 되어 주는 그녀. 그녀로 인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저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 그런 것이 생기면 세상의 변화에도 힘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되더군요.
사랑은 변화를 가능케 합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의 변화죠. 그렇게 변해가면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내가 선택하는 변화의 아름다움을 알게 됩니다.
아내를 만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된 것. 아마 지난 미국생활 동안 제가 찾은 가장 큰 보물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 죽도록 살고 싶은 힘 〈아름다운 변화를 꽃피우는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