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닷물살을 가르고 하얀 뱃길을 뒤로 남기며 내닫는 쾌속선의 신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도로 황홀한 낭만에 젖게 한다. 그러나 그런 쾌속선의 낭만이 주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횡포로 나타나는 경우를 본다. 내 몸집의 튼튼함과 속도감만 자랑하며 내닫는 그 뱃길 주변의 조그만 어선이나 여객선은 갑자기 밀어붙이는 험한 파도로 금시에 뒤집힐 것 같은 공포를 만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괜한 공포감으로 몸이 떨린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이 어렵고 피곤한데, 금빛 찬란한 거대한 쾌속선은 나만의 속도감을 자랑하며 질주하는 바람에 우리는 종일 뜻하지 않은 멀미에 시달려야 한다.
--- pp. 169∼170 <누가 모르는가>중에서
봄이면 만발한 벚꽃으로 굽이도는 하얀 구름길, 그리고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로 물들이는 섬진강의 맑고 푸른 물도 아름답거니와 가을철 피아골과 노고단의 핏빛 단풍은 이곳이 바로 극락 아니면 지옥이 아닌가 싶게 황홀하다 못해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저리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디 조용히 말하고 싶은 것은 섬진강의 저녁놀, 이는 그림이 아니라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다.
--- p 143 <내 고향의 서정시 섬진강>중에서
버티다 못해 지난 여름에는 겨울 오기 전에 새 보일러로 바꾸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불길도 약할뿐더러 자주 꺼지기까지 하였다.
젊은 기술자의 잠깐 동안의 손놀림으로 새 보일러는 가동되었다. 당장에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실내에 훈기가 돌았다. 진작 바꿀 일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또 마찬가지였다. 다시 불러온 기술자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기계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더니 잠시 후에 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불렀다.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새알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보일러의 통풍관 속에 산새가 둥우리를 틀어 놓았더라는 것이다. 그 젊은 기술자는 싱겁게 웃으면서 "새알이 익었네요"했다.
사냥개까지 몰고 다니면서 산속을 샅샅이 뒤지는 인간이 무서워서 그 산새는 안전한 곳을 찾아 이 좁은 통풍관을 비집고 들어와 둥우리를 틀고 알을 품었던 모양이다.
나는 겨울이 추워서 떨었지만, 그 예쁘고 작은 산새는 인간이 무서워서 떨었던 모양이다. 그는 지금쯤 어느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헐려 버린 보일러 통풍관 속의 따뜻하고 안전했던 보금자리를 내려다보며 무슨 상념에 잠겨 있는지 모르겠다.
--- pp. 63∼64 <익어버린 산새 알>중에서
이들 폐선의 구조나 시설로 보아 옛날에는 어로의 대망을 품고 대양이 험한 파도를 헤치며 젊음의 꿈을 한껏 펼쳤을 법도 한데, 녹슨 선체의 갑판 위에는 때묻은 이불 뭉치가 내팽개쳐져 있고 낡은 밧줄이며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시커먼 기름통들의 황량한 풍경은 마치 지금의 늙어 버린 내 몰골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허전하다. 누구에게나 꿈 많고 화려했던 젊음은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 과식으로 인한 설사 몇 번하고 나니 내 인생은 다 가고 말았다.
--- p 24 <폐선>중에서
아버지의 생시의 명당 철학은 좌청룡우백호가 아닌, '좌버스우택시'라는 속어까지 유행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는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는 천하의 입담꾼이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장꾼들의 내왕이 잦은 산비탈에 묏자리를 잡아놓고 돌아가셨다. 심심 산골에 명당이라고 드러누워 있어봤자 요즘 젊은 자식놈들 하나 찾아올 리 없으니, 자가용 타고 오다가다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다름 아닌 명당이라는 결론이었다.
--- p 16 <아버지에 관한 추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