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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철새, 둥지를 틀다

머리철새, 둥지를 틀다

: 아파트 관리소장 23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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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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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03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46쪽 | 622g | 153*224*30mm
ISBN13 9788992073738
ISBN10 89920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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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장현식
1943년 서울 출생. 공동주택관리사 자격증 제도 이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해오고 있다. 건축시설설비(배관) 자격증 소지자로서, 홍제 한양아파트에서는 기관실 난방배관을 직접 시공했고, 10개 동의 온수불통 되었는데 배관 공동(空洞)현상을 발견하여 통수하였다. 홍제동사무소 정화조 악취를 통기 해결하여 관리비 절감을 도모하였다. 낙성대 현대아파트에서는 산화폭기식 정화조를 뷔페 정화조로 바꾸고, 안양 삼성아파트에서는 임호프식정화조를 폐기 직접관로로 이설하였다. 응암 우성아파트에서는 임호프식정화조를 뷔페 정화조로 관리비 절감을 도모하였으며, 파산 위기에 처했던 안양 미륭아파트를 정상화시키는 등 공동주택관리에 최선을 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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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7층 0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소리를 지른다.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하고는 기관전기 직원들을 그쪽으로 나오라 해 놓고 4동 쪽으로 달려갔다. 일행과 함께 승강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가 내려서 살펴보니 현관문 밑으로 정말 연기가 새어 나온다! 한 반장에게 빨리 승강기 타고 내려가 4동 뒤로 돌아가 가스 입상관 밸브를 잠그라고 지시하니 승강기 쪽으로 달려간다. 쫓아온 경비원에게 물었다. “이 집 열쇠가 있는가?” “안 맡겼는데요.” 이거 큰일 아닌가! 내가 볼 때는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가스레인지에 무얼 올려놓고 외출한 것 같은데 과열되면?

페트병!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나는 재활용품 쌓인 곳에 가서 커터로 페트병을 절단했다. 원형이든 사각이든 식용유 병이든 상부와 하부를 절단하고 위아래 양쪽을 내리 절단하니 밑부분 윗부분 쪼가리와 몸체가 반달형으로 쪼개진다. 이것을 차곡차곡 쌓아 묶어 마대에 담으니 또, 놀라지 마시라! 15마대 페트병이 1마대로 줄어버린 것이다. 근수를 달아보니 18~28kg까지 달리는 것이다. 25kg이면 500원이니 마대 값을 빼고도 돈이 되고 상당한 양을 상차할 수 있으니 차량운행의 기름값이 빠지고도 남는 계산이 되는 것이다.

며칠 조용하다 싶더니 또 경비반장이 경비원 채워놓는 일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다음에 돌아오는 것이 뭔가! 주민들의 민원, 왜 경비가 자주 바뀌는가, 항의 전화다. 또 다음에 들려오는 소식은 관리가 엉망이라는 거다. 그 다음은 뭔가? 위탁관리 회사를 바꾸자고 할 것 아닌가? 이것을 고스란히 관리소장이 걸머지고 나가는 것이니 말썽 많은 단지는 오래 붙어 있을 수 없게 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업이라고, 자격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보장된 직장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한 사람은 스트레스로 비명에 갔으며, 한 사람은 심장수술로 살아나 근근이 건강에 유의하며 이 직업을 감당하고, 한 사람은 무려 88년도부터 지금까지 스물여섯번이나 자리를 옮겨가며 감당하고 있으니 과연 관리사무소장 직에 대하여 할 말은 없는 것인가?

나의 조그만 경험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시설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해결했고 이로 인해 홍제2동사무소 직원들 나아가 출입하는 동민들께 악취로 폐를 끼치지 않게 되고 우리 주민들께 비용절감을 해드렸다는 데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오, 내 모습이여! 저 가녀린 중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의 하는 일에 비해 너는 얼마나 진실했는가, 인내하였는가, 정성을 쏟았는가! 저 가녀린 간호사는 환자의 땀 냄새, 똥오줌, 피 비린내, 가래, 토해낸 썩은 음식물 등을 얼굴색 한 번의 찌푸림 없이 치우고 닦아주고 돌보는 것을 너는 보았는가!’
나는 그래도 꽤나 아파트 관리를 잘 했노라 자부했었다. 아마 나를 아는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게 인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얼굴이 붉어짐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건대 최선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마누라의 성정이 고약하여 “당신의 그 유별난 성질 때문에 남들 다 받는 퇴직금도 못 챙기는 거 아니냐? 왜 걸핏하면 남들 다 참고 일 하는데 내 던지고 나오는가?” 하고 대든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누구를 탓하랴. 참을성이 없어 그런 것을. 친목계에 나가서 친구들과 악수할 때 머리가 숙여지는 몇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발령을 받았다 하면 몇 년씩 잘도 버티기에 존경심이 생겨서 그리한 것이다. 퇴직금,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다.

돌아서서 나가는 어깨를 바라보니 안 된 생각이 든다. ‘괜찮은 사람 같은데 잘 다듬어야지. 일일이 차량 파악을 하는 정도면 가능성이 있을 거야.’ 다짐을 하고 내 의자에 앉으려는데 관리소 문을 막 나가다가 휙 돌아서서 거수경례를 하면서 말했다.
“소장님, 원칙대로 근무한 것도 죄가 됩니까?”
다음날 아침 2동 경비일지 갈피에 노 씨의 사직서가 끼워져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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