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종은 붓을 들어들어 ‘魔陰’이라 썼다. 아이들은 그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얘들아, 이 글자를 한번 읽어보렴.”
모두들 말이 없었다. 아바마마께서 붓을 드실 때면 언제나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요즘 한참 한문과 이두에 심취하기 시작한 정의공주만이 어린 마음에 가만가만 그 글을 읽어보았다.
“마음…… 아바마마, 마음이란 글자가 아닙니까?”
“그래, 이두로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단다.”
마음이란 ‘악마의 음침한 기운’이라는 뜻이었다. 글자를 보자 어린 정의는 낯빛까지 어두워졌다.
“아바마마, 마음은 원래 따뜻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 축축하고 요망한 것으로 표현했을까요?”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어두워진 정의의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그래, 아비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 글자가 가슴에 와 닿는구나. 세상에 마음만큼 괴상망측한 것이 어디 있을까. 아침에 굳게 먹은 생각이 반나절도 못 가 변해 버리지 않더냐. 글자로나마 마음이라는 것을 경계해 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구나.”
이때, 정소는 장녀답게 머리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이야기에 조용히 화답했다.
“아바마마, ‘생각’이란 말도 순우리말인 줄로 아옵니다. 그런데 이두로는 ‘?$’이라 표기하지 않사옵니까? 이두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저는 그 말의 뜻을 헤아려보았습니다. 낳을 ‘생’에 깨달을 ‘각’을 붙여보면 인간은 낳는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는 존재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종은 큰딸이 글자를 풀어낸 것이 만족스러워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낳는 순간부터 깨달을 수 있는 존재야말로 천지에 인간밖에는 없을 것이야.” --- 「1장_5월의 정원」중에서
무슨 일이든 닦달하거나 채근하지 않는 세종이건만, 이들의 의견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정창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얼마 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반포했는데도 충신과 효자가 나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글자를 만든다 하시니 저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충신과 효자는 사람의 자질이 문제이지, 글자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옵니다. 글자를 알아 책만 읽으면 막돼먹은 자가 저절로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되옵니다.”
세종은 눈을 크게 떴다. 정창손이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닦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도리라 생각하던 임금이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몸소 실천해 보여왔거늘, 임금의 뜻을 왜곡해도 이렇게 왜곡할 수 없었다. 그때, 항상 모든 일에 부정적이기만 하던 정창손의 생각을 못마땅해하는 이가 있었다. 정인지였다. 비록 임금 앞이었지만 그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정창손에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막돼먹은 자에게도 책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자마자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하나둘 인간다움이 새겨질 것이니 백성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전하의 뜻만은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창손 대감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창손의 입가에 조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자 최만리가 다시금 아뢰었다.
“전하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문자를 만든다면 오랫동안 저들의 문화와 사상을 숭배해 온 이 나라에 혹 불이익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는 바가 더 크다 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저희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랬다. 논쟁의 골자는 중국이었다. 세종의 가슴이 얼어붙었다.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와 사대(事大)를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 점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핑계로 백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3장_흔들리는 사람들」중에서
“중국에도 경포가 있지만, 한자로 씌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원도 경포로 추측했답니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가림토 종류의 글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세자는 정의를 높이 칭찬했다.
“참으로 공주의 열정이 놀랍구나. 그렇다. 가륵단군 한 사람의 뜻을 점점이 이어온 이들은 바로 백성들이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우리 역사를 모두 끌어안고 살아온 사람들이야.”
수양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헛된 일에 시간을 보냈는지 후회했다.
“저는 백성들의 입과 입을 통해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다고 떠들었지만 정작 그들 곁으로는 다가가지 않았지요. 제가 철원 땅으로 떠나겠습니다. 무술로 다져진 몸이옵니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이란 늘 언젠가 한 번은 통과한 적이 있는 쪽으로 나는 것이었다. 이제 모두들 그 문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 「4장_외진 곳을 벗어나」 중에서
이윽고 우리글 창제 선포를 앞두고 주상께서는 모두를 불러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중략)
병약하기는 했지만 아바마마와 함께해 온 세자도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양반에게나 일반 백성에게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법이지요. 태양이 있으면 달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으며, 밝은 날이 있으면 눈비가 내리는 날도 있습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는 것과도 같지요. 우리 문자는 인간을 중심으로 음양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소리글로 만들어졌습니다.”
수양 역시 감격에 겨워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께서 ‘ㄱ’은 하늘이 인간에게 흘러 내려오니 ‘그냥, 그대로, 그렇게’의 의미를 지닌 가장 자연스러운 글자라 하셨습니다. ‘ㄴ’은 땅으로부터 인간이 솟아오르니 ‘나다[?’를 기본 뜻으로 하며, ‘ㄷ’은 사람이 땅과 하늘을 안고 있으니 ‘다함’을 뜻합니다. 또한 ‘ㅁ’은 ‘ㄱ’과 ‘ㄴ’을 합쳐 완성된 ‘모두’를 의미합니다. ‘ㄹ’은 하늘과 땅, 인간이 완벽하게 조화하여 ‘어우르’는 철학이 숨겨져 있습니다. 참으로 아바마마의 해석이 놀
라울 따름입니다.”
세종에게 큰 힘이 되어준 수양은 아버지의 뜻에 몸과 마음을 다한 사람이었다. 수양은 누구보다 아버지의 의지를 힘껏 뒷받침하려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ㅂ’만 봐도 인간이 하늘과 땅을 지켜보는 형상으로 ‘본다’는 속뜻을 갖게 되며, ‘ㅇ’은 우주를 뜻하여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사념이니 이는 조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글자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런 쉬운 뜻을 보태어 가르치면 백성들이 빠르게 우리 글자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니라. 의미도 의미이지만 백성들이 쉽게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삼문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우리는 반드시 중국과 우리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사대주의자들을 겨냥하는 일입니다.”
이에 모처럼 입을 연 숙주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조용한 외침으로 퍼져나갔다.
“우리 글자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뛰어넘게 할 것입니다.”
--- 「6장_마침내 흐르는 눈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