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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 러브

밀키 러브

뚜이 | 청어람 | 2017년 09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9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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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548g | 130*190*35mm
ISBN13 9791104914461
ISBN10 110491446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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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새벽, 한 고급 아파트.
애다는 아파트에 들어서 맨 위층인 23층을 누르고 그곳에 도착하는 동안 차가워진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애다는 23층 한 곳에 우유를 넣고 계단을 통해 아래로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며 우유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지만 애다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있었다.
‘다음은 1706호…… 우유 200밀리 한 개.’
1706호 앞에 서서 우유 가방에 우유를 넣으려는 순간, 인기척을 느끼고 행동을 멈추었다.
“아, 깜짝이야.”
애다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현관 앞에 널브러져 있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날씨도 추운데 밤색 코트 하나만 걸치고 있는 남자가 조금 걱정되었다. 아무리 멋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렇게 입고는 영하권의 새벽 온도를 견디기 힘들 것이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아도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가 걱정된 애다는 용기를 내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자는 잠을 자고 있었다. 옅은 숨소리에 애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애다는 그의 어깨를 조심히 흔들어 보았다.
“저기요…… 이봐요. 여기서 잠들면 얼어 죽어요.”
애다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잠을 자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살며시 뜬 그의 눈은 잠에서 덜 깨 초점이 맞지 않았다. 주먹만 한 얼굴에 하얀 피부. 귀여운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진 모습에 넋이 잠깐 나갔던 애다는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그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서 잠들다간 얼어 죽는다고요. 집이 여기예요? 어휴, 술 냄새. 술 마시면 더 위험해요. 빨리 들어가…….”
“……채은아.”
가라앉은 목소리에 애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네?”
“임…… 채은.”
“이봐요. 저기…… 앗.”
당황한 애다가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찰나, 그는 애다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가지 마…….”
“저기요. 저는…….”
그는 당황해하는 애다의 입술에 무작정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놀란 애다가 그의 품에서 발버둥 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는 애다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숨 막혀 하던 애다가 숨을 쉬려 입술을 벌린 순간, 입안으로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읍.”
애다는 자신의 입안에서 그의 혀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자, 그의 어깨를 치며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미친 게 분명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런 일을 벌이다니!
애다가 그를 마구 치며 벗어나려고 하자, 그는 아픔을 느꼈는지 애다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맛있다.”
“네?”
엉뚱한 소리를 하는 그를, 애다는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신은 너무 놀라 심장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뛰고 있는데 맛있다니? 정말 미친 게 확실했다.
“우유 냄새 나. 아기 냄새. 한 번…… 만. 더 먹어보자.”
“하.”
애다는 그가 내뱉은 말에, 얼른 그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위험하다, 위험해. 이 남자 정말 위험하다.
“무슨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이봐요. 당신 내가 고소할 거야!”
그는 애다의 화난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해맑아서 순간 애다는 이게 꿈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해보았다. 그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면서 애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놈을 때려 죽여?’
그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긴팔 후드 티에 노란 패딩 조끼를 입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다, 잠이 오는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기가 막힌 애다가 그를 피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rrrr.
“이봐요! 전화 오잖아요.”
아무런 미동도 없는 그를 보고, 애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개고생을 시키는 거야. 정말. 짜증 나.”
애다는 그의 품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벨소리에, 잠들어버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조심스레 꺼냈다.
[수현 형]
액정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애다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안지후! 넌 왜 전화를 안 해? 집에 들어간 거 맞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술을 퍼마시래! 네가 미쳤지? 아침에 촬영 있는 거 알아 몰라? 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어!]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부터 지르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애다는 당황해하며 전화기에 대고 천천히 말했다.
“저기요…….”
[어? 누구세요? 여자네? 뭐야. 이 자식 사고 친 거야? 으악! 안지후 너 가만 안 둬!]
“저기 그게 아니라…….”
[저 죄송한데요. 이번 일은 없던 거로…… 워낙 그 자식이 요즘 상태가 안 좋아서…… 어떻게든 제가 보상을 해줄 테니 소문만…….]
무슨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해대? 애다는 머리가 아파와 이마에 손을 대고는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봐요! 제 말 좀 들어보시라고요!”
[네?]
“여기 이 전화 주인이 제 앞에 쓰러져 잠들었거든요.”
[앞이요?]
“재림 아파트요.”
[어. 네.]
“그럼 그쪽이 잘 아시는 분 같으니까, 빨리 와서 이분 좀 데리고 가세요. 안 그래도 이 사람 때문에 완전 늦었는데 그쪽이 와서 해결하라고요. 안 그러다간 이 남자 얼어 죽는다고요.”
[죄송한데 그쪽은 누구신지…….]
“우유 배달원이요!”
뚝.
참. 말 많다. 사람이 얼어 죽는다는데 냉큼 오지는 못할망정 무슨 얘기를 그리하려고 하는지. 애다는 화가 나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잠들어 있는 남자를 한번 흘겨본 후 그의 코트 속에 휴대폰을 넣어주었다.
“이제 우리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맙시다.”
애다는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는 듯, 다시 우유가 든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던 중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숨을 쉬며, 다시 계단을 올라와 지후 앞에 앉았다.
“이봐요. 당신 나 만난 걸 감사히 여기라고.”
애다는 목에 감고 있던 빨간 넥워머를 빼서 지후의 목에 씌워줬다. 입은 쉴 새 없이 구시렁대면서도 그의 목을 꼼꼼하게 감싸주는 애다의 손길은 정성스러웠다.
“잘 자요. 귀여운 양반. 부디 살았으면 좋겠네요. 어휴…… 늦었네.”
애다는 현관 문고리에 걸려 있는 주머니에 우유를 넣어두고 이젠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집 안의 따뜻한 온기가 지후의 온몸을 감싸주었다. 이제야 술에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지후는 주방으로 가서 식탁 위에 있는 우유를 손에 쥐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수현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최수현. 형 지성의 친한 친구이자, 그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그는 남자다운 외모에 늘 인상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여리고 착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특히나 애교 많은 지후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단점 아닌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지후는 자신을 한없이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는 수현을 흘깃 바라보고, 눈치를 살피며 우유를 마셨다.
“너…… 진짜.”
“형! 미안해. 내가 죽을죄를 졌어. 아…… 이놈의 술이 웬수야. 그치? 하하.”
지후는 수현에게 혼이 날까 봐 미리 선수를 치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후는 트레이드마크인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수현의 화를 풀어보려고 했다.
이래도 안 풀려? 어라? 안 풀리네?
수현의 얼굴이 더 험악하게 일그러지자, 지후는 수현에게 마지막 필살기로 애교를 떨어댔다.
“미안해. 화 풀어라. 응? 잘못했다니까? 응? 형…… 잘못했어요. 네? 아잉.”
지후의 애교에 수현은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남자까지 뻑 가게 저리 애교를 떨어대니 화도 못 내고 그저 황당해서 웃음만 났다. 그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모든 남자들을 제 손에 쥐고 주물러 댔을 게 분명했다. 여우 같은 놈.
“헤헤. 풀렸네?”
“진짜. 너란 자식은…… 어디서 나한테까지 그런 미소를 보여?”
어떤 사람이든 지후의 애교 어린 미소를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광고계와 화보 모델로서는 완벽한 마스크였다. 저런 마스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런웨이에 왜 미련을 못 버리는 건지…… 수현은 그런 지후가 안타까웠다.
“너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어. 그 추운 날 왜 집 앞에서 잠들어 있냐?”
“몰라. 나도 기억 안 나.”
지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그 여자 아니었으면 오늘 황천길 갔어.”
“여자? 무슨 여자?”
수현의 말에 지후는 마시던 우유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진짜 기억 안 나? 네가 마시고 있는 그 우유 아가씨가 전화해줘서 망정이지, 안 그랬음 넌 그대로 끝이었어.”
“우유 아가씨?”
지후는 수현이 한 말을 되새기며, 기억을 해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나마 몇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기요…… 이봐요. 여기서 잠들면 얼어 죽어요…….”

후드 티, 노란 패딩 조끼, 긴 머리……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 그리고 입술, 우유 냄새, 아기 냄새…….
“그게 꿈이 아니었단 말이야?”
“꿈? 무슨 꿈?”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는 지후를 보고, 수현이 물었다. 지후는 마시던 우유를 한번 바라본 후 소파 옆에 널브러져 있는 정체 모를 빨간 넥워머를 손에 들었다.
“그런데 그건 뭐냐? 너 목에 감고 있던데…… 그런 촌스러운 건 어디서 사는 거야? 요즘 유행하는 거야?”
수현의 말을 무시하고, 지후는 넥워머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보드라운 넥워머를 만지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잠깐 머릿속에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향은 가슴에 남아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이 기분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이런 친절함을 베푸는 여자라니.
“형. 무료하던 내 삶이 앞으로 재밌어질 것 같지 않아?”
“뭐라는 거야?”
“그냥.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어서.”
지후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고는 그때까지도 가만히 넥워머만 바라보고 있는 지후에게 말을 건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씻기나 해. 11시에 촬영 있다니까. 빨리 가봐야 해.”
지후는 수현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저 넥워머만 바라보며 의미 모를 미소만 짓고 있었다.



찰칵. 찰칵.
“오케이. 좋아.”
찰칵. 찰칵.
“이야! 좋다. 역시 안지후. 와우. 이 포즈 좋은데?”
사진작가의 셔터 눌러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지후는 카메라 앞에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부스스한 회색빛 헤어와 잔 근육들이 잘 드러나 보이도록 제작된 블랙 티셔츠와 검은 가죽 스키니 진을 입은 그는 기다란 손가락에는 두 개의 반지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평소의 귀여운 장난기 어린 미소는 사라진 채 시크하고 냉소적인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덕분에 더 날카로워진 턱 선은 남성미와 카리스마를 배가시켰다.
“오케이! 여기까지! 수고했어. 안지후 씨!”
“수고하셨습니다.”
지후는 유명한 사진작가인 이현수 작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지후가 모니터링 하러 이 작가에게 다가가자, 그는 웃으며 지후의 어깨를 쳤다.
“오올. 안지후. 날 선 카리스마가 아주 표독해. 꽃미남 속에 숨겨진 의외의 나쁜 남자! 아주 황홀한 반전인데?”
이 작가의 칭찬에 지후는 괜스레 쑥스러워졌다. 촬영할 때는 모르겠는데 끝나고 나면 민망하기도 하고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선생님이 잘 찍어주셔서 그렇죠. 헤헤.”
“겸손은…… 난 자네랑 일할 때가 제일 신나고 재밌어. 그 얼굴에서 어떤 표정과 제스처가 나올지 아주 기대되거든.”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른 스태프들이 도구를 정리하는 동안, 이 작가와 지후는 모니터링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검토했다.
“어때?”
“좋은데요?”
“그렇지? 그런데 이 부분 말이야. 이 부분은 크로핑을 해야 할 것 같아.”
“저는 그냥 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두 가지 콘셉트로 편집해 보고 맘에 드는 거로 넘기도록 하자.”
“넵!”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지후는 이 작가에게 인사를 한 후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으려 티셔츠를 벗고 있던 그때, 수현이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깜짝이야! 노크 좀 해라.”
“노크는 무슨. 새삼스럽게. 어때? 속은 괜찮아? 안 피곤해?”
수현이 이온음료를 던져 주자, 지후는 재빨리 그것을 받고는 뚜껑을 땄다. 목이 탔는지 한 번에 쭉 마셔 버렸다.
“시원하다. 형. 지금 완전 속 뒤집힐 것 같아. 몸속에서 장기들이 서로 뒤섞여 전쟁 중이야.”
“쯧쯧.”
“촬영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 처음이야. 그래도 오늘 웃는 사진은 안 찍어서 다행이지만…….”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그래도 우리 지후 프로네.”
지후는 티셔츠를 얼른 갈아입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그럼 당연하지. 이런 슈퍼 대스타랑 일하는 걸 영광으로 여기라고.”
“까분다.”
“헤헤. 오늘 스케줄 끝이지?”
“왜?”
“오늘 일 없으면 그냥 이대로 가서 자려고. 여기선 이 메이크업 못 지우겠어. 피곤해.”
정말 피곤하다. 다시는 술을 먹으면 안지후가 아니다. 부모님 기일에 맞춰 친형인 지성과 술 한잔한 게 평상시의 주량을 넘어섰나 보다.
“그러게 코디랑 메이크업 담당자 뽑자니까? 왜 사서 고생해?”
“형. 내가 무슨 연예인이야? 그런 사람들 줄줄이 달고 다니게? 형 하나 가지고도 벅차다. 코디는 무슨? 어차피 촬영 오면 스태프들이 입으라는 옷 입으면 되고, 메이크업도 스태프들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뭐 하러? 인력 낭비야. 귀찮아.”
지후는 니트 티 아래에 블랙 스키니 진을 입고 카키색 재킷을 걸쳤다. 역시 모델이라 그런지 대충 걸쳐도 모든 옷을 잘도 소화해 냈다.
“그래도 집에 가서 화장 지우고 자. 트러블 생긴다.”
“알겠습니다. 자, 이 옷은 정중히 스태프분한테 넘겨주세요.”
“이거 줘야 해? 너한테 맞게 따로 제작한 거잖아.”
“내 취향 아니야.”
지후는 협찬 받은 옷을 수현에게 건네고, 빨간 넥워머를 뒤집어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수현이 맘에 들지 않는지 볼멘소리를 해댔다.
“그 워머는 왜 하고 다니는 거야? 그 옷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모델 맞아?”
“평소에는 모델처럼 보이지 않아도 돼. 난 튀는 거 엄청 싫어.”
“그 워머 때문에 더 튄다. 도대체 왜 하고 다니는 거야?”
지후는 넥워머를 만지작거리더니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왜 자꾸 여기에 손이 가지?’라는 생각은 들지만 지후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이걸 가지고 다니면 그 우유 아가씨를 우연이라도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면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그런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일종의 신데렐라 구두 같은 거라고 해두자. 그리고 이거 은근히 따뜻하거들랑. 헤헤.”
지후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형. 나 먼저 간다.”
지후는 수현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려다가 다시 뒤를 돌아 그를 불렀다.
“아차차. 형, 차 키!”
“옜다!”
“나이스 캐치! 내일 봐.”
수현이 던진 차 키를 받은 지후는 손을 흔들며 대기실을 나섰다. 나가는 그를 보고 있던 수현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급하게 지후를 다시 불렀다.
“야! 안지후!”
“왜 또?”
지후는 수현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만 뒤로 젖혀 내밀고는 그를 바라봤다.
“저기…… 임채은 귀국한다더라.”
지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수현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말을 했다.
“……내가 괜히 말한 거야?”
“임채은이 누군데?”
지후의 차가운 말투에 수현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괜히 말한 것 같다. 아직도 임채은을 잊지 못한 건가? 왜 저렇게 냉정하게 말하는지.
“하. 지후야. 내일은 오후 촬영이니까 가서 푹 쉬어. 전화할게.”
“진짜 간다. 내일 봐.”
지후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자신의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러곤 핸들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임채은 귀국한다더라.”

지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나빠졌다.
“젠장. 재수 없게. 미안하지만 내 기억, 아니 맘속에서 떠난 지 오래라고.”
지후는 목에 둘렀던 넥워머를 벗어서 얌전히 조수석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액셀을 거침없이 밟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강남에 있는 한 패밀리 레스토랑.
“주문하시겠습니까?”
애다는 테이블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커플에게 주문을 받는 중이었다.
“다시 주문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스파이시 치킨&쉬림프 스파게티와 카카두 그릴러, 사이드 메뉴는 구운 통감자, 음료는 레몬 샹그리아 맞으신가요?”
“네.”
“주문 확인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애다는 주문서 용지를 주방에 건네고, 탈의실로 들어가 유니폼을 벗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며 제 모습을 정돈하던 애다는 목이 허전해 살짝 어루만졌다.
‘괜히 줬나? 또 없으니까 아쉽네.’
빨간 넥워머를 생각하니 어이없게 키스를 하게 된 그 남자를 떠올리며, 애다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정뱅이. 변태. 재수 없어.”
쾅!
애다는 캐비닛을 소리 내며 닫아버리고는 가방을 메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점장님! 저 퇴근합니다!”
“어, 그래. 애다 씨, 수고했어!”
애다는 레스토랑에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아줌마. 저예요.”
[어. 그래.]
“엄마는 좀 어때요?”
[그렇지 뭐.]
“……별 차도는 없고요?”
[아직까지는.]
“네. 주말에 갈게요. 엄마 잘 부탁드려요.”
[그래. 걱정 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줄게.]
“네.”
애다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한 후, 애다는 강의실에 앉아 교육학 강의를 들었다. 새벽엔 우유 배달을 하고 오전에 잠깐 잠을 잔 뒤, 오후엔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고 난 후 저녁엔 이렇게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야간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하루 24시간을 이렇게 힘들게 보내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의 병원 치료비 때문이었다. 뭐가 그렇게 급하셨는지 엄마는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무단횡단이다 보니 보상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거의 식물인간 판정까지 내렸지만, 애다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단 하나의 가족. 엄마니까…….



귀에는 헤드폰을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지후는 상쾌하게 아침 운동을 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냥 헬스나 다니지. 추운데 무슨 길거리 운동이냐? 살다 살다 너 같은 놈 처음 본다. 집도 잘사는 놈이 왜 그래?”

수현의 잔소리가 생각난 지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음을 지었다. 정말 항상 옆에서 마누라처럼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는 수현이었다.
17층에 도착한 지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현관 앞에 낯선 여자가 우유 가방에 우유를 넣는 것이 보였다.
“빙고! 드디어 만났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애다는 헤드폰을 벗으며 웃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런. 그 변태다.’
애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지후는 미소를 띠며 손목시계를 보곤 중얼거렸다.
“정확히 5시 32분. 신데렐라는 12시던데, 우유 아가씨는 5시 32분이네?”
애다는 지후의 말을 무시하고, 우유 가방을 들고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지후가 급하게 다가와서 애다의 팔을 잡았다.
“자, 잠깐!”
“뭐예요?”
지후는 날카로운 애다의 말투에 순간 움찔했다.
지후는 다시 한 번 애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대충 묶은 긴 머리. 노란 패딩 조끼에 하얀 피부. 자신을 경계하는 눈빛과 키스하기 딱 좋은 붉은 입술…… 마치 도도한 고양이 같다. 키우고 싶네.
“맞지?”
“뭐가요?”
“내 생명의 은인.”
“지랄.”
애다의 욕지거리에 깜짝 놀란 지후는 순간 당황했다. 애다는 지후를 한번 흘겨본 후, 잡혀 있던 팔을 빼내고 남은 배달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때 지후가 애다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뭐예요!”
“맞잖아! 여기서 얼어 죽을까 봐 나 구해준 우유 아가씨!”
“아닌데요?”
“아, 아니야?”
“네. 난 사람 구해줄 만큼 그리 착한 여자 아니에요. 그러니 이 팔 좀 놓으시죠? 내가 워낙 바빠서.”
애다의 가시 돋친 말투에 지후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입술에 베이비 키스를 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멍하니 있는 애다의 귀에 대고, 그가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맞네. 우유 냄새. 그리고…… 아기 냄새. 내가 진짜 좋아하는 냄새거든.”
지후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애다에게서 떨어지며, 팔짱을 끼고 그녀를 웃으며 바라봤다. 그 뻔뻔한 모습에 애다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망설임 없이 지후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짝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지후는 뺨을 손으로 감싸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야, 야! 너 나 때렸어? 지금? 너 내 얼굴이 얼마짜리인 줄이나 알아? 아, 진짜! 나 오늘 촬영 있는데…… 나 얼굴 부으면 책임질 거야? 책임질 거냐고!”
잘못은 제가 해놓고 도리어 날뛰는 지후를 바라보던 애다는 이를 악물고 무서운 눈을 한 채 그에게 다가갔다. 눈에 독기를 품고 다가오는 애다를 보며, 지후는 겁먹은 얼굴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오지 마.”
“주정뱅이.”
“뭐?”
“변태.”
“뭐? 변태?”
“거기다 자뻑 증세까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애다는 그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가까이서 본 애다의 얼굴에 지후의 심장이 꿈틀대며 이상한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가져보는 설렘으로 인해 지후의 입안이 바싹 말라가고 있다.
‘뭐야, 이 여자. 씨…… 변태? 내가? 그런데 이 여자 입술 또 맛보고 싶네. 아, 안지후! 너 진짜 변태야?’
지후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애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댔다간 넌 이 세상 하직하게 될 거야. 우연이라도 마주치면 절대 아는 체하지 마. 만약 그럴 시엔 너 가만 안 둬. 난 무서울 것도, 더는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니까.”
애다는 지후에게서 떨어져선 계단 아래로 유유히 사라졌다. 애다가 가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지후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신데렐라가 아니라 완전 독이 잔뜩 오른 고양이였네?”
지후는 자신이 애다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뽀뽀할 생각을 한 건지. 하지만 그녀의 입술에 뽀뽀한 순간 술에 취한 채 그녀와 키스했던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기분이 묘했다.
안지후. 정말 미친 거야?
“훗. 저 들고양이를 어떻게 길들이지? 우연이 세 번이면 인연인 거야. 벌써 두 번째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 손에 잡힌다. 너.”
애다가 내려간 계단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지후는 아픔이 느껴지는 뺨을 어루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아, 젠장. 수현이 형이 또 한마디 하겠네. 집에 얼음 찜질팩이 있으려나?”
지후는 뺨을 어루만지며 집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후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 우유 가방에서 우유를 꺼냈다.
“우유 아가씨. 다음번에 만나면 기대해. 쪽.”
우유가 애다인 양 입을 맞춘 지후는 기분 좋은 웃음을 띠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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