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나를 낳고 버린 친부모에 대한 원망 때문에 찾고 싶었다. 내 뜻과 무관하게 나를 이 세상에 낳고 버린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키우기 힘들어 나를 버렸다면 차라리 낳지 말지, 왜 낳아서 이 머나먼 남의 나라로 보냈냐고 따지고 싶었다. 자식을 버리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원망도 없다. 원망은 애정이나 관심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만나 보고 싶다. 친엄마 꿈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꿈속의 친엄마는 안개에 쌓인 듯 형체만 있을 뿐이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 형체가 엄마임을 안다.
_12쪽
“아, 잠깐! 여기 이게 있네.”
직원이 일어나 금고에서 뭔가 꺼내 왔다. 눈부시게 하얀 스카프였다.
“이다음에 누군가 찾아오면 이 스카프를 주라고 서류에 써 있구나. 10년이 넘은 건데도 아직 새것 같네.”
스카프는 깃털보다 가볍고 아기 피부보다 보드라웠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스카프를 준비해 두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한국이 나를 반기고 있다. 행복했다.
_25~26쪽
“신지끼?”
나만 모르는 말인가 싶었는데 형이 다시 묻는 것으로 보아 형도 처음 듣는 말인 듯했다.
“야, 신지끼라. 거문도에 사는 인어랑께요.”
송민이의 말에 나도 형도 눈이 동그래졌다.
“인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소리쳤다. 인어는 덴마크에만 있는 줄 알았다. 코펜하겐에 있는 작은 인어 동상을 보러 세계 곳곳에서 매해 수천, 수만 명의 관광객이 온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안데르센의 인어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도, 거문도에도 인어가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_36~37쪽
당황하자 호흡이 가빠지며 수영도 할 수 없었다. 바닷가는 불빛 하나 없이 깜깜했고, 형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자꾸 허우적거리게 되고, 그럴수록 짠물이 코와 입으로 벌컥벌컥 들어왔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자꾸 파도에 밀려 바다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바다에 빠지는 건가? 아무도 날 구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짧은 순간 덴마크에 있는 아빠, 엄마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머리를 잡아챘다.
_67쪽
“이 동네에서 어제 괴물이 나타났다고 해서라.”
“괴물이라니! 신지끼라니께.”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지끼가 남의 그물을 다 잘라 놓는다요? 그 집 그물이 칼로 자른 듯이 마디마디 조각조각 잘라져 있었당께요. 그것이 나타났다 하면 이러코롬 마을에 뭔 변고가 꼭 생기니 괴물이지라, 괴물!”
_80쪽
이윽고 물체가 가까이 오자, 형과 나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어!”
분명 그 소년이었다. 뽀얀 몸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배꼽 위까지는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배꼽 아래로는 다리 대신 커다란 지느러미가 은빛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다 같이 보는구나.”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모래밭에 걸터앉았다. 말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파도가 찰싹찰싹 소년의 다리, 아니 지느러미를 치며 들락날락했다.
_107쪽
“악!”
“잡았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옆을 보니 신지끼가 커다란 그물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곧바로 이장 아저씨를 비롯한 아저씨들이 우리 옆으로 달려와 신지끼를 더 꽁꽁 붙들어 맸다.
“워매, 이장님! 이게 무슨 일이다요? 왜 이런다요? 도대체 왜 이런다요?”
송민이가 울부짖으며 이장 이저씨에게 매달렸다.
“내 말이 맞잖어. 분명 괴물이었다니께.”
_140쪽
“내가 다르다고,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나를 따돌렸어요. 나는 생각했어요. 한국에 가면, 우리나라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겠구나, 내가 다르지 않겠구나, 했어요. 아니, 우리나라는 달라도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나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여름에 한국에 왔어요.”
“그려, 그려, 잘 왔당께. 역시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최고지.
신토불이잖어, 신토불이.”
“아, 조용히 혀 봐. 뭔가 얘기를 더 하려고 하잖여.”
나는 신지끼 곁으로 다가가 그물 사이로 신지끼의 손을 잡았다. 그물이 워낙 촘촘해 손을 다 잡을 수도 없었다. 손가락 몇 개가 겨우 닿을 뿐이었다. 신지끼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똑같아요. 다르면 싫어해요. 나는 다르게 태어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곳에 가서 살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다른 건 잘못 아니에요. 다르면 다른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모두 행복하게 살면 된대요. 신지끼가 그랬어요. 나 신지끼 덕분에 용기도 얻고 친구도 생겼어요. 그런데 신지끼가 우리랑 다르다고 잡아서 못살게 굴면 우리나라에 실망이에요.”
_152~153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