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여러 속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없다. 포퓰리즘은 어떤 시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잠잠하다. 포퓰리즘의 본질은 모호함이며, 개념적 불확실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람에 따라 포퓰리즘에서 엄청난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포퓰리즘에 아무런 본질적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 p.16
포퓰리즘 운동은 느슨한 신념의 체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포퓰리즘 운동은 본질적으로 통제되거나 조직되기 어렵고, 일관성을 띠지도 않으며, 종잡을 수 없는 형태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특성을 갖는다. 포퓰리즘은 난해하고 모호한 개념이라서 포퓰리즘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일련의 특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포퓰리즘의 근본적 특징은 유동성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 상황 또는 정치운동으로서의 포퓰리즘에 대해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고사하고 포퓰리즘 현상을 포괄적으로 기술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 --- p.17
포퓰리즘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포퓰리즘이 ‘공허한 개념’이라는 점, 즉 포퓰리즘에서 핵심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의 경우 명시적이든 함축적이든 평등, 자유, 사회정의와 같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가치를 내세우는 반면, 포퓰리즘에서는 그러한 핵심 가치를 찾을 수 없다. …… 물론 자유주의, 보수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등과 같은 근대의 ‘거대’ 이데올로기도 자기들끼리의 접합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적 자유주의, 급진주의적 페미니즘과 같은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경우보다 다른 이데올로기에 덧붙어 존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빈번하다. --- p.21
주정부의 권리에 대한 월러스의 주장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앨라배마 주민의 마음속 이상향(어쩌면 앨라배마 백인 농촌 거주자들이 꿈꾸던 모습)에 대한 애정에서 잘 드러난다. 변화는 이러한 마음속 이상향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연방정부와 사회적 민권운동, 더 넓게는 새로운 진보세력의 등장에 따른 것이었다. 월러스의 반동적 포퓰리즘은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었다. 월러스는 미국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진보세력의 도전에 직면해 기존의 마음속 이상향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 p.77
포퓰리즘 운동의 경우 자신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국민을 기반으로 포퓰리즘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보통이다. 러시아 나로드니키는 지식계층을 통해, 그리고 지식계층에 의해 주도되었다. 즉, 나로드니키는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설정한 마음속 이상향과는 전혀 동떨어진 존재였기 때문에 마음속 이상향을 극단적으로 이상화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포퓰리즘 운동이나 사상의 경우 마음속 이상향은 암시적으로 존재할 뿐이었으나, 러시아 나로드니키는 마음속 이상향을 매우 명확한 형태로 제시할 수 있었다. --- p.102
일반적으로 포퓰리즘은 참여자의 마음속 이상향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 이상향에 거주하는 국민을 운동의 근원으로 삼으면서 외부에서 도입된 사상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띠는 것이 보통이다. 내부에서 제시된 이념 및 이에 대한 포퓰리즘 참여자의 숭배는 러시아의 나로드니키 사례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며, 이는 다른 포퓰리즘 사례에서도 관찰된다. --- p.126
현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혼합경제를 추구하는데, 신포퓰리즘은 이 같은 현대 복지국가의 정치적 안건, 제도, 정당성을 거부하는 현대적 형태의 포퓰리즘이다. 또한 신포퓰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당들이 합의한 체제를 거부한다. 특히 현재의 정치 형태, 그중에서도 주요 정당 간의 정당정치를 거부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정당을 조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신정치와 맥을 같이한다. --- p.132
국제주의와 세계시민주의는 포퓰리즘의 적이다. 포퓰리즘은 자신이 내세우는 국민의 경계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고립주의와 폐쇄주의를 띠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특징은 왜 포퓰리즘이 (신포퓰리즘에서 나타나듯) 인종 중심의 민족주의 경향을 띠며, (20세기 미국의 포퓰리즘에서처럼) 대외 정책에서도 고립주의를 내세우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 p.165
정치적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포퓰리즘 현상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포퓰리즘 지지자는 제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포퓰리즘 운동은 딜레마에 빠지고 자체적 성장이 제약된다. 즉,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성장을 저해하는 한계 요인을 안고 있다. 바로 포퓰리즘과 제도 간의 불편한 관계다. --- p.170
포퓰리즘이 리더십을 중시하는 이유는 제도적 절차에 따른 복잡성을 감소시키고 포퓰리즘 리더십에 대한 지지자들의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구분되지만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며 동일한 딜레마를 야기한다. 일반 국민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몇몇 뛰어난 개인에 의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포퓰리즘 리더십이 처한 딜레마다. 카리스마적이지 않은 포퓰리즘 리더십의 경우 권위주의적이거나 중앙집중적인 리더십 형태를 띤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제도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으므로 단순한 형태의 조직 구성을 선호하는데, 조직이 단순해지면 리더십을 견제하기가 어려워져 결국 조직을 이끄는 수장에게 더 큰 권력을 몰아주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이 추구하는 리더십 형태는 장기적으로 유지되기가 매우 어려우며, 포퓰리즘 운동의 추진력이던 ‘국민’ 숭배와는 명백한 모순을 보인다. --- p.176
제도에 대한 포퓰리즘의 양가감정은 왜 포퓰리즘이 완성된 형태의 정치운동이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포퓰리즘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에 대한 포퓰리즘의 양가감정은 왜 포퓰리즘이 스타일 또는 수사법으로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포퓰리즘은 정치제도에 대해 회피 또는 본능적인 좌절감을 표출하는 편리한 방법이다. 물론 어떤 정치운동도 언젠가는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포퓰리즘은 기성 정치제도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시작점이다. --- p.182
신포퓰리즘 정당은 무언가를 반대하며 등장한 정당이다. 현대 정치에 대해 신포퓰리즘 추종자는 대의정치가 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과도하게 대표한다고 비판한다. 신포퓰리즘 정당은 국가가 소수자 집단의 조직적 이해 또는 자유주의적 엘리트의 합의를 위한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신포퓰리즘은 대의정치의 작동 방식에 대한 비판 및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 p.188
포퓰리즘은 대의정치가 얼마나 관용적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시험지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포퓰리즘 사례는 포퓰리즘이 국민(국민의 정의가 무엇이든)을 대변하며 선거에 참여해 정당을 만드는 방식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구축하는 방식(러시아의 나로드니키는 제외)을 잘 보여주는데, 이는 포퓰리즘이 자신의 정당성을 대의정치를 통해 구현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역설적이게도 포퓰리즘은 대의정치가 얼마나 관용도가 높은 정치체제인지를 증명한다. --- p.193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포퓰리즘이 현대 정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포퓰리즘이 중대한 정치적 운동이나 정당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대의정치체제에서 잠재적인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현재 대의정치에 대한 생생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 p.194
그러나 본래 권리란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소수파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와 다수를 강조하는 포퓰리즘에서는 권리를 탐탁찮게 여긴다. 포퓰리즘 추종자는 다수파가 궁지에 몰려 있으며 국가가 소수파의 권리를 심각할 만큼 부정의한 방식으로 지켜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의미의 권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