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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기억된 남자

잘못 기억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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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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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648g | 140*210*35mm
ISBN13 9791159252778
ISBN10 115925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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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건들은 뇌에 깊은 고랑이라도 파놓은 것처럼 상처가 되어 도무지 잊히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나거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다. 인생이 점점 쪼그라든 탓에 생겨난 빈 공간은 공허한 꿈과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으로 채워지고, 사는 의미나 즐거움 혹은 사랑 같은 건 딱히 느끼지 못하며 지내왔다. --- p.8

아버지는 고집불통에다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기억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리디아는 아버지가 내세우는 까다로운 기준에 맞춰 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과 주장으로 짜인 물 샐 틈 없이 작은 상자에 딸의 인생을 욱여넣은 뒤 신앙이라는 뚜껑으로 단단히 덮었다. 리디아는 늘 옥죄여 사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벽을 허물고 도망치고 싶었다. --- p.47

서럽게 울면 조금이라도 동정을 얻거나 벌을 받지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려주기 위해 울고 또 울다 보니, 눈물은 말라붙고 목은 다 쉬어버렸다. 하지만 무서운 목소리의 주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 p.77

제이미는 한 번에 두 칸씩 계단을 올라 먼지 쌓인 침실 문을 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그 방에 들어갔는지 제대로 기억할 순 없지만, 아마도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을 것이다. 그 뒤로는 들어가볼 마음도, 이유도 없었다. 병든 아저씨가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들 로 가득한 곳이니 더 그랬다. 두툼한 베개에 묻힌 아저씨 얼굴이 고통에 찌들어 시들어버린 배처럼 보이던 날들이 여전히 눈앞에 생생했다. 아저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후두암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느라 쥐어짜던 거친 목소리도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 p.90

“네가 왜 여기 사는지 다시 말해봐, 86번.”
“왜냐면….” 아이는 울음을 삼켰다.
“제가 나쁜 아이여서 엄마가 절 버, 버렸거든요…. 엄마가 절 여, 여기다 버린 건….” 겁에 질린 아이가 말을 멈췄다. --- p.106

아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엄마가 죽었거나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건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양육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공권력에 감히 저항하지 못한 엄마의 두려움이 아이들의 원죄였다. 모든 아이가 자신들을 세상에 내놓은 ‘사랑’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고귀한’ 눈에 보이기에는 불결한 사랑이었다. 열등한 존재들, 곧 가난한 인간들이 하는 짓이니 불결한 게 당연했다. --- p.110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이들은 힘들었던 노동이 아니라 들판에서 스콘을 먹을 때 바라본 도일 부인의 웃음 띤 얼굴을 곱씹었다. 길고도 암울한 날에 우연히 만난 웃고 있는 어른. 아이들에게 그건 정말 드문 일이자 선물이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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