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 열풍은 동물을 기계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동물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간단한 기계장치들은 중세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상(像)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7, 18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16세기까지 사용된 기계기술은 톱니바퀴, 체인, 도르레, 펌프 등 기본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중세와 큰 차이가 없었다.그러나 기계기술은 자본주의적 무역과 제조업의 형태들이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유럽사회의 무역과 산업, 그리고 생활 내부로 점차 깊이 통합되어 들어가게 되었다.결국 동물기계라는 관점은 “동물을 감각이 없는 물질로, 내재적인 목적이나 지성이 결여된 단순한 원자 덩어리로 격하시킴으로써, 거침없는 경제적 이용을 위해 그때까지 남아 있던 장애물을 제거시켰다.”
-본문 68쪽
지난 세기에 유전학과 우생학의 역사는 서로 얽혀 있었다. 20세기 초의 소박한 유전자 결정론은 단일 유전자 안에서 도덕적 타락, 의지박약과 범죄성을 찾았지만, 1930년대 말에 약화되었고 1950년대 중반경에 주류 유전학에 의해 폐기되었다. 그러나 학문적 유전학자들이 이 쌍둥이를 외과적으로 깨끗이 분리시키려고 모색하면서, 강제 불임이라는 의학에 의해 주도되는 우생학적 실행이 계속되어왔다. 미국에서는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시행되었지만, 유럽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이 ‘어머니가 되기에 부적합한’ 여성들을 불임시켰고,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성 차별과 감금정책이 계속 시행되었다.
-본문 100쪽
그렇다면 록펠러재단은 왜 많은 돈을 분자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여는 데 투자했을까? 이 재단이 실행에 옮기려 했던 기획은 무엇이었는가? 케이는 그 기획을 ‘인간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록펠러재단이 오랫동안 지속해오던 어젠더였으며, “과학과 문화사업”의 요체이기도 했다. 록펠러재단은 자연과학, 의학, 사회과학을 기반으로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를 개량한다는 사회통제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20세기 이후 자연과학의 획기적 발전은 지금까지의 인간 사회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 즉 철학이나 사회학, 심리학 등을 통한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생물학 분야에서 나타난 새로운 과학적 진전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간과학”에 대한 기대가 분자생물학을 탄생시켰다.
-본문 150쪽
슈뢰딩거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유전자의 역할을 지칭하는 데 암호(cod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모랑쥬가 말했듯이 오늘날의 분자생물학자도 이 책에서 전혀 낯설음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9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생명에 대한 물리주의적 접근은 2차 세계대전과 이후 냉전시기를 통해 급속히 전개된 클로드 섀넌의 정보이론과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생물과 무생물 모두 정보가 그 핵심이라는 인식이 발전하게 된다. 슈뢰딩거는 1940년에 이미 막연한 생명질서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비유를 버리고 암호와 악보라는 개념으로 옮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이것은 유전의 논리가 계산의 논리로 응용되는 흥미로운 수사적(修辭的) 과
정이다.
-본문 181쪽
인간이 DNA라는 언어로 구성된 책이라는 비유는 단지 비유에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에서 매우 강력한 실행으로 굳어져 갔다. “DNA 언어학(DNA linguistics)”은 1980년대 말 계산적 분자생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라는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가 아니라고 여겨진 전체 게놈의 95~97퍼센트에 달하는 DNA는 쓰레기, 즉 “정크(junk) DNA”로 간주되었다.
릴리 케이는 DNA 언어라는 개념이 생물학에서 공고하게 되었고, 우리가 마치 워드프로세서로 단어를 쓰고, 복사하고, 편집하듯 ‘생명이라는 게놈 책(genomic Book of Life)’을 읽고, 쓰고, 편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은 인간유전체계획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본문 201-202쪽
환경운동 단체와 과학자 단체는 재조합 DNA 논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환경보호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과 ?자연자원보호위원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는 보건교육복지성에 유전자 접합 연구를 허용할지 여부, 그리고 허용한다면 어떤 조건에서 허용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들 단체는 공청회가 “기존의 NIH 가이드라인에 대한 폭넓은 대중들의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고, 지금까지 NIH 가이드라인 기초위원회가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 공개적인 논쟁이벌어지는 것을 허용해준다”고 말했다.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은 가이드 라인에 대한 평가 이전에 먼저 모라토리엄이 선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그 이유를 “그래야만 이후의 공공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재조합 DNA 연구에 대한 공식적인 모라토리엄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문 266-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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