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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함께 읽는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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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을 골라 뽑은 259편의 현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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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90g | 140*225*20mm
ISBN13 9788989224402
ISBN10 898922440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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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탈북

북이 찢어졌다 북의 몸 속에서

웅크렸던 소리들이 찢어진 북을 안고

더 이상 울지 않는 북, 그 북을 탈출했다

북편 채편 가로지른 강물도 철조망도

일순 흩어지는 소리들을 막지 못했다

버려진 북채 너머로 먼 총성이 들렸다
--- p.103


백이운/서른의 예수 예순의 붓다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마법의 순간

신데렐라의 신 하나씩 누구나 신게 된다

치수가 맞을 리 없는 구직이거나 희망퇴직.

호박이 마차로 변할 득의의 때를 위하여

골고다를 헤매거나 수미산을 오르지만

시장통 뻥튀기 소리에 신발들 흩어지고.

여기 서른의 예수 저기 예순의 붓다

누구나 그 나이쯤에 십자가를 지고

누구나 그 나이쯤에 마법처럼 해탈한다.
--- p.121


송선영/할머니 국밥집

초봄 해거름에 당도한 닷새장 한 귀

몸 낮춘 처마 밑에 시간을 떼어 보시한 뒤

오막집, 안개를 두르고

생生이 젖네, 저녁 한때.


할머니 국밥집에서 할머닌 볼 수 없었네

은발로 주방을 닦고 식경食經이나 쓰시는 건지…

한아름, 훈김 담아 오는 길

문득, 만월이 길을 끌어….
--- p.138


오종문/늙은 나무의 말

간밤에 눈 내렸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늘은 큰 바람에 가지 하나 더 잃었고
어쨌든 살아남았다
오백 살도 더 넘게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와 산 그날 이후
해마다 네댓 가마니 열매를 다 내주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역사를 쓰고 있다

무수히 달린 잎사귀 그늘을 그가 걷고
공간에 담긴 시간도 언젠가는 흩어지고
이 집은 또 텅 빌 것이다
누군가가 다녀가고
--- p.154


옥영숙/칠백 년의 기다림

멀고 먼 옛날부터 무덤 밖을 기웃거린
말이산 고분군에서 발굴된 연꽃 씨앗
어깨를 들썩거렸을 장님으로 칠백 년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짙고 푸른 잠은
시간의 단추를 열고 지상으로 올라와
고립의 긴 모험만큼 발아는 눈부셨다

고려시대 탱화 속에 표류하던 연꽃이
징검다리 건너 듯 아라가야 홍연으로
단숨에 귀한 꽃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 p.155


이송희/외눈

한쪽 눈을 잃고서야
양쪽 눈을 얻었다

한쪽만 바라보고
한쪽으로만 걸었던

외골수 외길의 시간,
외롭고도 더딘 길들

흑백의 담장 앞에서 밀고 당기며 새던 밤
앞에서 달려오는 그의 말을 자르던
편견의 깊은 동굴 속
뼈아픈 밤의 소리

이제 나는 외눈으로 내 깊숙한 곳을 본다
한쪽 눈에 담겨지는 더 넓은 들판을
너와 나,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의 세계
--- p.185


이승은/한 벌 시

한때는 목젖에 걸려 울음도 뱉지 못한, 눈썹 위 저만치에 낮달인 양 훔쳐보던, 새벽녘 들이친 빗줄기로 무작정 젖어들던

이제는 모르는 일 까막눈이 된 것처럼, 삶은 달걀 까먹듯이 모신 말을 까먹느라, 헛배만 더부룩했다 그 못된 식습관에

해와 달이 지날수록 나는 왜 이럴까, 오래도록 껴입어서 후줄근히 땀이 밴 시, 한밤중 홀연히 깨어 부끄럽게 벗는 시
--- p.188


이지엽/내가 사랑하는 여자
-추월산

언제나 간접화법으로
애둘러 말하는 여자

봉우리 끝 다 닿아서
터널 속 지나서도

본심은 끝내 말을 않는
상징象徵의 숲
속 깊은 여자
--- p.200


정수자/꽃눈말

너무 늦었거나 쿨한 척 접었거나
젖어야 터지는 시한 없는 말이 있다

미안해, 딱딱해진 심장을
조금 발라 내어놓는

비쭉대는 입술에 마른 침을 바르며
녹슨 펌프에 마중물을 숙여 붓듯

나직이 내뱉는 순간
저 먼저 씻기는 말

남몰래 벼린 날로 옹이를 마저 베고
퍼렇던 서슬쯤 슴벅슴벅 껴안으면

미안해, 늦어 더 새뜻한
그냥 마냥 꽃눈 트는
--- p.222


최양숙/반짝 세일

고로,
나는 액체다
견고한 것을 녹인다

하여,
나는 고체다
부드러움에 중독된다

그래서,
나는 기체다
유혹에 여유롭다

마스크와
선글라스가
발등에 떨어진다

잽싸게
밀치고 가
카트를 채워간다

할인에
양보는 금물
인생은 반짝이니까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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