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저작권’이다. 이제 저작권은 우리의 삶에서 더 이상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을 ‘유희’에서 찾는 호모루덴스도 있다. 비록 생존에 직결된 실생활 밖에 있고, 자유로우며 목적을 갖지 않는 비생산적 행위이지만, 점차 생활 전체의 보완이 되고 문화기능을 갖는 필수적인 것으로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은 의식주만큼이나 견고해지고, 넓어졌다. 유희라는 말을 ‘엔터테인먼트’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즐겁고 행복하게 즐길 거리를 찾는다면, 저작권에 대한 이해는 필요충분조건이다. --- p.14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부자는 흔히 부동산(예를 들어 쌀이 몇 백 섬 나오는 광활한 농지와 같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레스터 서로우Lester C. Thurow가 『지식의 지배』라는 책에서 언급하듯이, 부의 원천이 땅과 같은 유체재산에서 저작권과 같은 무체재산권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잡지 [포춘] 선정 100대 기업의 시장자본총액 중 76퍼센트를 특허, 저작권, 상표와 같은 무형자산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굳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앞에서 말한 조앤 롤링이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로 조 단위 이상의 수익을 올린 조지 루카스George W. Lucas Jr. 같은 인물이 억만장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작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p.24
저작권법은 기존의 저작자의 창작욕구를 북돋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잠재적 저작자의 창작욕구를 꺾지 않도록 일정부분 자유롭게 기존의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작권을 적절하게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인류의 문화유산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기존의 저작자의 보호와 미래의 잠재적 저작자의 동기유발의 경계범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보호범위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보호범위를 잘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그 중 하나의 기준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미래의 저작자가 기존의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도 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4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의 한 구절이다. 만약 당신이 진실을 말하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임금님의 전속 이발사라면 어땠을까? 당신은 임금님의 명예를 훼손했을까? 아니면 진실이므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착각하기 쉬운 법률상식 중 하나에 ‘명예훼손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을 말했는데도 죄가 되냐”고 되물을 수 있다. 실제로 한 의뢰인은 필자를 찾아와 “그게 말이 되냐”며 격렬하게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한 사실’일지라도 여러 사람에게 말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형법은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따로따로 조항을 두어 처벌하고 있다. 즉 당신이 ‘진실을 말한’ 명예훼손도 처벌하고 있다. --- pp.117~118
우리 저작권법에는 여러 상황·조건에 따라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에 일정한 한계를 정한 ‘저작재산권의 제한’에 대한 약 15개의 조문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저작권법은 이런 식으로 개별 규정을 두지 않고 ‘공정사용fair use’이라는 제목 하에 하나의 조문을 두고, 사건마다 위 조항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다만, 최근 우리나라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위 조항을 전격 수용했다). 이 조항에서는 공정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4가지 척도를 두고 있다. (1)상업성이 있는지, 비영리 교육목적인지 등 사용의 목적과 성격purpose and character, (2)저작물의 성질nature, (3)저작물 전체에서 사용된 부분이 차지하는 양amount과 중요성substantiality, (4)그 사용이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potential market이나 가치value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다. --- p.147
저작권 침해행위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행위이며, 권리자에게도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법적 수단은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왜 유독 ‘형사고소’를 남발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 민사소송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반면, 형사소송은 돈과 시간이 적게 드는 데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민사소송제도가 기본적으로 ‘실손해배상 원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상대방의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 내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은 정확히 그 교통사고로 입은 손해 정도이지,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래 저작권 사용을 허락했더라면 받을 수 있는 손해를 배상받으라는 것이지, 그 이상의 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이 건에 형사고소를 했다고 가정하자. 형사사건은 국가권력이 알아서 처리해주므로 변호사의 조력이 비교적 덜 필요한 데다 침해자 입장에서도 범죄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쉽게 고액으로 합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형사고소가 민사소송보다 노력 대비 대가가 크다는 공식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형사고소의 남발은 막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이 ‘형사고소의 남발’에는 큰 문제가 있다. 저작물의 향유자들을 설득해나가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당장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형사고소를 남발하고 형벌을 강화하는 것은 저작권자와 저작권 침해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 pp.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