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을 받고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힘들겠지만 지금이 조직 재정비의 중요한 시기인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이럴 때일수록 힘차고 낙관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바로 운동가의 올바른 품성이잖아. 내가 언제 운동가에 속했었나요 뭐? 무슨 소리야? 우리 학교에서 연세대에 도대체 몇 명이나 들어갔어? 채 백명이 안 되잖아. 물론 이걸로 절대적 잣대를 삼을 순 없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삼학년들은 중심적 운동가라고 봐야지. 형, 우리에겐 왜 그게 없죠? 뭔데? 위에서부터의 내부 반성이나 비판 같은 것 말예요. 내부 반성? 아니 우리가 지금 반성을 할 때라는 거냐 넌?
재덕은 정민의 눈이 휘둥그래지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넌 이번 싸움에서 우리가 진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이것이 시련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의 난관은 일시적일 뿐이지 않을까. 정권의 하수인인 언론의 이성을 잃은 광란적 보도 때문에 한때 국민 여론이 썰렁했던 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과 애국의 순수한 열정을 가졌던 학우들의 진실이 국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고 봐. 우리 한총련은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구.
김소진은 정결한 사람이다. 그의 산문은 그의 심성처럼 정결하고 허튼 군더더기가 없으며 경기도 사투리처럼 아름답다. 짧은 소설은 허욕이 없고 속임이 없다. 환한 대낮 토방 앞에 놓여 있는 항아리처럼 무뚝뚝히 명백하다. 사람은 가고 복숭아꽃은 피었다 지고 또 글은 열매와 마른 씨앗처럼 남는다. 나도 남아 있다. 아, 슬프다. --- 성석제(소설가)
김소진 소설의 일관된 관심사는 전혀 인공낙원과 무관한 자리에서 삶을 일구어가는, 문명의 주변부를 그야말로 인간적 본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한마디로 김소진은 언제부턴가 어느 누구에게서도 호명받지 못하던 스러져가는 주변부의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충실한 서기관이자 대변인이었다. 김소진은 문명과 개념의 개입을 받고 주변부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통일성(권태와 일탈, 부정과 긍정, 금기와 허용의 변증법적 조화)에 주목하고 이 아름다운 통일성을 거울로 어설픈 개념화와 자연의 수탈로 점철된 문명의 악마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비춰낸 작가였으며, 동시에 최첨단의 문화적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문학사의 일면적인 성격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비판한 '한국문학사의 반성적 거울'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류보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