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샘과 경희 누나, 그리고 우리 ‘슈퍼 쎄븐 - 1’은 지난주에 약속한 대로 일요일에 짜바 타워로 다시 모였다. 기억나는가, 그날? 경희 누나의 비밀스런 말에 철산의 학구열이 불타올랐던 그날. 경희 누나가 한 말이 무엇인지 철산은 기어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고인아), 노래를 불러 플라스틱 컵을 깨뜨리고(우도윤), 아빠와 진화론 논쟁 2부를 벌이면서 또 싸대기를 맞을 뻔했다(최동훈). 그리고 운동장에서 싸움을 했다(누군지 알 거다). 그 옆에 있던 누구는 그 싸움에 말려들 뻔했다(걔도 잘 알 거다).
그리고 진우 샘과 경희 누나는, 무당집에 가서 부적 사진이 든 칩을 얻어 왔다.
사진만 3천 몇 백 장이었다. 과학 샘은 분당 3매 속도의 컬러프린터로 그걸 뽑으려면 2주가 넘게 걸린다고 했다. 사진에 찍힌 삐뚤빼뚤한 글자를 해독해서 텍스트 파일로 옮기려면 일주일이 더 걸릴 거라고 했다.
경희 누나는 알바를 고용하자고 했다. 그리고 진우 샘보고 이렇게 말했다. “임야도 담보대출 되죠?”
진우 샘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만졌다.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쨌든 진우 샘은 텍스트 파일이 있으면, 그걸 가지고 에스더 있는 데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고스트 3」중에서
“에스더는…….”
치훈이 물을 한 컵 들이켰다.
“에스더는……, 괴물로 변했어요. 괴물, 괴물…….”
치훈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몸을 떨었고, 눈물과 피가 섞인 물을 눈에서 흘렸다. 거기 있던 모든 아이들이 말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양쪽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마치, 악몽에서 튀어나온 유령 같았다.
“변기태, 뭐해! 어서 가서 수건이라도 좀 갖고 와!”
겁을 먹어서 떨고 있는 내게 진우 샘이 소리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겪은 일을 믿지 못할 것 같다. 치훈이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가지러 안채로 달려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제때 말하거나 걷지 못하면 불안에 빠진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속에 심겨진 씨앗이 발아하기를 그들은 기다린다. 적당한 나이가 돼, 키가 크고, 털이 나고, 가슴이 튀어나오고, 그러면 만사 오케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많은 능력을 보여주면 어른들은 더 큰 걱정을 한다. 가령, 노래를 불러서 유리를 깨트리거나, 맨손으로 무쇠를 구부리고, 염력으로 집을 무너뜨리면. 혹은 시공간 이동을 하거나, 감마선을 쏘면 말이다. 그런 일들이 걱정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고스트 3」중에서
― 사고가 발생한 실험동에서는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소 연구원들이 민간 위탁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험 내용은 저준위 방사능 물질의 폐기와 관련된 것으로만 언급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긴급회견을 통해, ‘차분하게 매뉴얼대로 사고 복구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시민 안전과 관련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사고 지역 매립에 사용될 시멘트 운반 레미콘 100여 대가 대기 중이며 계속해서 차량이 진입하고 있습니다.
―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사고 복구가 완료되기를 기원합니다. 방송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또 다른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기태 아빠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눈은 잠자리 눈처럼 커진 채로 깜빡이지 않았다.
“지금……, 저길 가자는 거예요? 사고 현장에?”
스타크래프트는 천안 휴게소 주차장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얼어붙은 실내에서 숨소리를 죽였다. 부천에서 데려온 여중생 무당은 얼음왕국 엘사 공주가 그려진 스케치북에 미친 듯이 똑같은 글자를 적고 있었다. ‘엉, 엉, 엉, 엉, 엉…….’ ---「고스트 5」중에서
기태가 인사를 건네는 사이, 오 선생이 기태가 앉은 테이블로 와 앉았다.
“수련회 간다니까 일찍 온 것 봐. 짜식!”
“저, 좀 전에도 샘 봤어요.”
“어디서?”
“여기서요.”
“그렇지. 좀 전에 들어왔으니까.”
“아뇨. 샘 들어오시기 전에 샘을 봤다고요. 저기 카운터에서.”
“무슨 말이야? 내가 유체이탈이라도 했다는 거야?”
“좀 전에도 그 옷 입고 계셨어요. 분홍색.”
“아침부터 재수 없는 얘기하지 마.”
그때까지 기태는 자신이 본 오 선생의 모습을 확신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나타났지만 그것은 착시이거나 착각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밤새 잠을 한숨도 자지 않은 탓에 헛것을 본 것이라 여겼다.
기태는 나중에야 그것이 오 선생의 ‘도플갱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현미 선생이 사망하기까지 아직 이틀이 남아 있었다.
---「징후 3」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