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선생님들에게 박힌 미운털이 그대로 있었는지, 그 시절에 난 출석부로 머리를 맞는 체벌을 많이도 당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곧잘 출석부로 머리를 치는 체벌을 받았더랬다.
그러니 학교 생활이나 공부에 별 재미를 못 느끼게 되었고, 성적도 중간을 유지하면서 오로지 음악만을 벗 삼아 그럭저럭 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채찍 대신 당근을 많이 사용하시는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다. 그때 만난 담임선생님. 그분이 내 인생에 큰 은인이시다.
학년 초에 선생님이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다.
“을순아, 너처럼 예쁜 애가 공부도 잘하면 얼마나 예쁘겠니?”
그때까지 바보였다, 난! 징계 사건 이후 늘 기가 죽어 있었던 내가, 선생님의 그 칭찬 한마디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
체벌이란 것, 받아 보니 그리 효과적이지 않더라. 책이나 출석부로 매도 맞아 보니, 도무지 뉘우침도 없더라. 자존심만 엄청 상해서 오히려 반항심만 늘어 가던데―
수많은 매보다 한마디 칭찬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학교 체벌.
오히려 내게 더 삐뚤어진 행동과 반항심을 유발했던 그 체벌을―
나는 두 손 들고 반대한다!
_열 대의 매보다 한마디 칭찬 ---pp.35-38
안방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생뚱맞은 말 한마디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미숙아, 미국에는 이상한 물건이 많다며?”
슬쩍 눈치를 보는 낮은 목소리였다.
“이상한 물건? 뭐?”
“남자 그거랑 똑같이 생긴 것두 판다더라……. 한번 사와 봐. 엄마 구경 좀 해보자.”
정말 의외의 말에 깜짝 놀란 나는 책을 덮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왓? 남자 고추? 뭔 말이야?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어? 징그럽게스리…….”
그런데 엄마는 간단히 물러서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한번 보여 주고 자랑 좀 하려구 그래. 담엔 게브랄티 같은 영양제 사오지 말고 그거 한번 사와 봐.”
“몰라, 별걸 다 시키구 그래. 나 더 잘래. 졸려.”
나는 한마디로 잘라 버렸다. 엄마에게 그런 ‘야한’ 얘기를 듣다니, 내가 얼굴이 붉어지고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에 더 이상 엄마랑 그 물건에 대해 얘기한 기억은 없다. 나도 내 삶을 사느라 바빴고, 어렵게 딸에게 말을 꺼냈다 단칼에 거절 당한 엄마도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몸이 약해 늘 골골하시던 엄마는 그렁저렁 사시다가 4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엄마의 그 말이 생각났다. 엄마의 나이가 아마도 쉰두셋쯤 되시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다.
그때 난 왜 ‘그 물건’ 좀 한번 보고 싶다 하시는 걸 외면했을까? 진정 그 물건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자 내게 부탁하셨는지, 아니면 ‘몰래 혼자 쓰려고’ 그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때 게브랄티 영양제보다 그 물건이 더 갖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제야 엄마가 느꼈을 그 외로움이 피부에 와닿는다. 당시 엄마 나이보다 더 늙은 나는 아직도 여자로 보이길 바라면서, 엄마는 왜 여자로 보지 않았는지……. 엄마니까?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모름지기 그런 쪽에는 관심조차 없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외로운 엄마에게 그 ‘야한 물건’을 색깔별로 사이즈별로 잔뜩 안겨 드리고 싶은 마음, 정말로 간절하다.
_엄마의 딜도---pp.47-49
‘아하~ 음식이 권력이구나. 앞으로 이 권력을 가지고 놀아야지.’
그때부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과 벌’은 음식을 통해 만들어졌다.
상으로 주는 음식도 남편과 딸이 다르다. 말 잘 들은 딸에게는 도넛이나 꿀호떡, 시험 잘 본 남편에겐 양송이버섯불고기와 군만두(냉동 반죽을 사다가 그 속에 흑설탕과 계피와 땅콩을 넣어 프라이팬에 구워주면 꿀호떡, 꽈배기 모양으로 튀기면 도넛).
[…]
그러던 것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부터 문제가 생겼다. 완벽해만 보이던 내 권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너, 그거 하면 엄마가 떡볶이 해줄게.”
“안 해줘도 괜찮아, 엄마. 문방구 앞 떡볶이도 맛있어.”
“여보, 청소 좀 해주라. 그럼 내가 버섯불고기 해줄게.”
“나 바뻐, 불고기 안 먹어도 돼. 점심 때 뚝불 먹었는걸.”
이제 식구들은 더 이상 안 되겠다. 미련도 없이 포기해 버렸다.
[…]
이제야 알겠다. 권력을 누리며 계속 사람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피지배자’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확실히 알고, 연구도 하고, 메뉴도 바꾸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는 것을. 진부해진 옛 실력만을 가지고 적당히 해먹으려다가 그만…… 종치고 말았다.
_권력은 밥솥에서---pp.65-68
그 자랑스러운 의사 자격증을 받는 꾳, 남편과 나는 일이 있어서 미국까지 가지 못하고 현지의 사돈 내외분 둘이서만 참석했다. 우리 둘은 잠도 못 자고 식이 끝날 만한 시간을 계산해 가며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다.
“닥터 서, 축하 드립니다. 애쓰셨네요.”
“서 박사, 축하합니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중간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려는 것을 애써 설득해 가며 나름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 끝났다!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밥벌이는 저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했노라고 남편과 둘이 신나서 수선을 떨고 있는데,
“아냐 엄마, 나? 닥터 김이야.”
하는 소리가 되돌아왔다.
“뭔 소리야?”
“나 결혼했잖아. 미국에서는 남편 성 따르게 돼있어.”
순간 남편이 전화기를 뺏더니 한마디 내질렀다.
“언니는 결혼했어도 성이 그대로잖아!”
“내가 특별히 요청을 해야 처녀 때 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성이 뭐가 그리 중요해? 난 남들 하는 대로 그대로 놔뒀어.”
“뭐…… 뭐라구?”
“아빠, 나 오늘도 환자 보러 나가야 돼.”
그러고 통화는 끊겼다. 남편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쥔 채로 말을 잃어버리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엄청 허탈한가 보다. 그렇기도 하겠지. 내 맘이 이렇거늘 남편은 오죽할까.
_내 딸이 성을 갈았대!---pp.102-103
병원 인근에서부터 차가 밀리더니 30분 이상을 지체하다가 드디어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4층까지 차들이 줄줄이 밀려서 빈자리를 찾아 빙글빙글 도는데 갑자기 앞에서 어떤 남자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쳤다.
“야, 일방통행인데 들어오면 어떻게 해!”
“뒤 좀 보세요. 원하지 않아도 계속 밀려오네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리세요. 빼줄게요.”
“에이 썅, 운전도 못하는 저런 년들이 다 차를 갖고 나오니까 이렇게 밀리지. 18.”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빨리 빼, 이년아. 보X를 그냥 확…….”
순간 확 머리가 돌았다.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 심호흡까지 했건만 이미 내 몸과 입은 ‘타고난 성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 새캬, 어따 대고 쌍욕이야? 니 눈엔 아줌마들이 다 생식기로 보이냐? 이 자X 같은 새캬. 18넘.”
“빨리 빼, 18년아. 확 박아 버릴까 부다. 기집년이…….”
“기집년이 어째서? 너 여자에 콤플렉스 있냐? 너 같은 놈 때문에 내가 조신하게 살 수가 없어, 이 18넘아.”
“빨리 차 빼, 이년아! 옆구리를 확 박기 전에.”
“잘됐다, 새캬. 차가 좀 지저분했는데 니 덕에 좀 공짜로 고쳐 보자. 나 오늘 맘잡고 니 버릇 좀 고쳐 볼란다. 서로 비슷하게 나이도 먹었는데 어따 대고 보X질이야? 니 눈엔 여자는 다 구멍으로만 보이냐? 시간 없어, 새캬. 차나 빨리 박어.”
[…]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욕을 다 뱉어 내고, 내가 들은 욕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놈의 태도가 바뀌는 게 확연히 보였다.
“빨리 차 빼요, 나가게.”
세상에! 말투에서 욕이 쏘옥 빠지더니 심지어 사정하는 듯한 꼴이라니…….
자연스레 나도 욕질이 끝났다.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주차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내게 사정을 하고 있다. 이해하시고 차 좀 얼른 움직여 달란다.
그가 뭔 죄가 있겠는가. 시동을 걸어 욕질한 놈이 나간 자리에 차를 세우고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속이 시원해졌다. 그놈에게 당한 게 아니라 물리쳤으니까.
_나는야 타고난 싸움닭---pp.121-123
원래 화장을 못하기도 하고 또 안 하기도 하는 난 정말로 평범하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수수한 모습이 어필했는지 계속 ‘통과, 통과’ 하더니 급기야 최종심까지 갔다.
마지막 네 명. 원래는 세 명을 뽑는데 동점이 있어 네 명이 올라왔다. 메이퀸이 결정되는 마지막 관문이다. 무대 위에 선 나는 관중석을 주욱 둘러보고 심사위원석을 향했다.
[…]
“4번 엄을순 씨께 묻습니다. 메이퀸 선발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개인적으로, 이런 선발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팔다리를 내놓는 옷을 입고 이쪽저쪽 사방으로 돌아가며 몸을 보여야 뽑히는 것이라면 전 사양하고 싶습니다. 사실 최종까지 올라오지 못할 줄 알고 있었는데 운이 여기까지는 닿은 모양이네요. 전 여기까지로 만족하고, 만약 된다면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지적인 대답,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명쾌한 응수.
그리고 나는 거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이유는 뻔하다. 조건이 모자랐거나, 뽑혀도 거절하겠다는 사람을 굳이 뽑을 이유가 없었거나. 하여간 최종 선발된 메이퀸을 뺀 나머지 세 명은 다들 자기가 2위였을 거라고 우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그때도 메이퀸 선발을 두고 성을 상품화하는 행위라며 말들이 많았다. 학교를 대표할 아름다운 사람을 뽑는데 꼭 그런 방식을 써야 하는지 말이다. 그 다음해엔 나와 같은 생각이 많이 확산되어 49개 학과 중 24개 학과가 거부했고, 결국 메이퀸 선발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_“메이퀸이 돼도 거절하겠습니다”---pp.135-136
난 의사도 법률가도 아니고, 낙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한다.
첫째, 벌을 주려면 남자를 벌줘라.
임신과 낙태엔 반드시 원인 제공자가 있고 처벌을 한다면 둘 다 받아야 맞다. 죄질로 말하자면 감당치 못할 임신을 시킨 원인 제공자가 더 고약하지 않은가.
[…]
둘째, 여성의 몸을 정부 정책에 이용하지 마라.
만약 낙태 금지가 여자들의 건강이 걱정돼서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으로 벌이는 일이라면 곤란하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조절(당시는 감소) 목적으로 보건소에서도 낙태를 해줬다. 자기들 맘대로 낙태를 해주더니 이번엔 낙태했다고 감옥에 가둔다니, 정부는 인구 조절을 여자의 몸을 통해 하겠다는 얘긴가?
[…]
셋째, 성교육과 복지정책부터 완비해라.
낙태를 막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남자들에게 적극적이고 완벽한 피임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어린 학생 때부터 철저한 성교육을 시켜서,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설사 낳더라도 혼자 애 키우며 먹고살 수 있도록 복지정책과 사회의 포용력도 준비돼야 한다. 그게 다 갖춰진 후에 낙태 처벌을 강화하는 게 바른 순서다. 정책을 이제 준비하기 시작해서야, 당장 낙태 못해 쏟아져 나올 미혼모들을 어찌 다 감당하려는가?
_낙태, 남자를 벌줘라---pp.161-163
‘양평 땅 거저 드립니다.’
플래카드에 눈이 번쩍! 전화번호를 적어 뒀다가 다음날 통화를 했다.
“빨리 오세요. 낼 누가 계약한다고 하시니 오늘 오셔서 보시고 오늘까지 결정해야 합니다.”
난 이런 말에 약하다. 당장 양평으로 달려갔다. 땅을 ‘거저’ 준다는데 무조건 달려가야지.
양평 시내에서 한참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이 내게 보여 준 땅. 들어가는 진입로가 없어서 밟아 볼 수 없는 ‘맹지’란다. 맹지라니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지도 못했고, 진입로가 없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지도 알지 못했다.
“저~기 실개천 너머, 왼쪽 자줏빛 꽃이 있는 데부터 오른쪽 노란 애기똥풀 있는 데까지.”
그들이 내게 설명해 준 땅의 경계다. 얼마나 정감 있는 설명인가! 당장은 남의 땅을 통과해야 하고 실개천을 건너게 다리도 놓아야 하지만, 다 해놓고 나면 양평의 무릉도원이 될 거란다. 다리 놓는 허가에 필요한 서류는 물론 다 도와주고, 땅값도 근처 땅의 2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데.
[…]
계약을 끝내고 며칠 있다가 남편을 데리고 내가 산 땅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큰일났다! 내 땅을 찾을 길이 없다. 경계에 피어 있던 자줏빛 꽃들과 노란 애기똥풀이 그새 져버렸나 보다.
“어디야, 우리 땅이?”
“글쎄, 큰일이네……. 꽃이 다 져버렸네.”
_을쑨네 ‘평화 주막’---pp.289-290
내가 강북 좌파도 아니고 강북 ‘우파’를 자처하는 이유는,
평생 그리 발랄한 연애질을 해보지 못했기에 연애관은 보수적임이 확실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 ‘이프’가 본의 아니게 ‘친 기업적’이라 그렇다.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의 구별은 당의 재정을 주로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더라. 평당원의 당비로 운영하면 진보 정당이고, 기업(인)들의 후원금에 주로 의존하면 보수 정당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프는 회사의 재정을 이프 회원들의 후원금보다 기업체의 후원금으로 훨씬 많이 해결하고 있으니, 재정으로 보자면 보수 정당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단체를 유지하는 비용은 기업체에서 받고, 내세우는 주장은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거나 가진 자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중적인 행동, 참~ 힘들다.
어서어서 우리 이프가 자라서, 마늘밭에서 돈다발 찾아내듯이 온라인이프(onlineif.com)의 밭에서 열성 독자들을 뭉치로 찾아내 봤음 좋겠다. 그래서 떳떳하게 독자들의 후원금만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원없이 해봤음 정말 좋겠다.
_나는 ‘강북 우파’다!
---pp.31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