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에 활동한 개성이 강한 천재 극작가이며 산문작가,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에는 이해되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희곡의 경우에도 일곱 편의 완성된 희곡 중 『슈로펜슈타인 가족』, 『깨어진 항아리』, 『하일브론의 케트헨』 등 세 편만이 공연되었을 뿐이다. 괴테 등에 의해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작가로 거부당했던 그는 죽은 뒤에야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희곡 작품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데, 특히 독일의 현대 작가들은 그에게서 분열되고 상처 입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발견해 내곤 한다. 클라이스트는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그리고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접하면서 친숙한 낯섦, 낯선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클라이스트는 1777년 10월 18일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연대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군인 가문의 자손으로서 15세에 입대해 마인츠 전투, 라인 원정 등에 참가했으며 20세에 소위로 임관되었다. 1799년 전역할 때까지 7년에 걸친 군 생활은 작가에게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부정적이었다. 전역 후 프랑크푸르트 오더 대학에 입학해 철학,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하면서 칸트의 인식론을 접하고는 그때까지 이성론에 근거했던 인생관 및 세계관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1800년 초 지역 사령관의 딸이었던 쳉게(Wilhelmine von Zenge)와 약혼한다. 그는 짧은 생애 중 여러 차례 여행을 하는데, 그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여행이 1800년 8월에서 10월까지의 뷔르츠부르크 여행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자신의 소명이 문학임을 의식하고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1801년에는 이복 누이 울리케와 함께 드레스덴을 거쳐 파리를 여행한다. 1802년에는 스위스 툰 호수 근처 아레 강에 있는 한 섬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 뷔르츠부르크 여행 때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그는 속세의 명예와 영화를 포기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약혼녀인 쳉게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아 그는 그녀와 파혼한다.
1802년부터 1807년까지 클라이스트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다. 1802년의 파혼에 이어 1803∼1804년 미완성 희곡 『로베르 기스카르』의 실패로 말미암은 광기에 가까운 행동과 자살 시도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다. 국가적으로는 프로이센이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다. 1807년 1월 30일 클라이스트는 베를린에서 프랑스군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돼 같은 해 7월까지 프랑스 감옥에 구금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의 생애에서 가장 위기였던 이 5년 동안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독일 희극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깨어진 항아리』가 완성되었고, 이성으로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디오니소스적 열정으로 아폴로적 조화를 추구하는 독일 고전주의의 규범을 완전히 깨뜨린 비극 『펜테질레아』가 프랑스 감옥에서 집필되기 시작해 석방 후 드레스덴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처한 극단적 한계상황을 엄밀하면서도 율동적이고 응축된 언어로 표현한 불후의 단편인 『미하엘 콜하스』, 『O... 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등이 집필되기 시작했다.
그 뒤 클라이스트는 아담 뮐러와 공동 발행한 잡지 『푀부스』의 실패와 직접 운영하던 『베를린 석간』의 폐간 등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게 된다. 1811년 11월 21일 클라이스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반제 호숫가에서 클라이스트는 먼저 31세인 포겔의 심장을 쏘았고, 이어서 34세인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두 사람은 두 개의 관에 입관되어 하나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 대학 및 마르부르크 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세계의 시문학』(공저),『추와 문학』(공저),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메두사의 뗏목』, 페터 슈나이더의『짝짓기』, 헨리크 입센의『인형의 집』 등이 있으며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