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의 카메라가 포착한 파키스탄의 한 일본인 소년의 모습이 일본열도를 흔들었다. 아니, 잠자는 학생들을 흔들어 깨웠다. AK47 자동소총을 어깨에 걸치고 아주 당당하게 서양의 카메라맨에게 응대하는 그 이름 모를 일본인 소년(학생들은 그에게 ‘나마무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의 영상은 거대한 빌딩 숲 그늘 아래 웅크리고 지내던 학생들에게 그들의 힘을 깨우쳐주었으며, 연대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유명인의 신변잡기를 포함해 맛집, 물 좋은 헬스클럽 등을 소개하는 생활문화 방면의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세키구치는 특별한 전문 분야가 없는 기자다. 그런 그가 편집부 내에 “달리 사람이 없”어 파키스탄에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도쿄의 명문 메이와 제일 중학교 2학년생 나카무라 히데키를 만난다. 소설은 나카무라와 세키구치의 교류를 통해 등교 거부 중학생 집단의 행보를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키구치는 “귀찮다는 생각과 정식 절차를 밟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현재 결혼하지 않고 유미코라는 경제 전문 기자와 동거 중이다. 등교거부 학생들이 이루어나가는 (미래) 일들과 더불어 (현재) 일본 사회와 경제를 분석하는 세키구치와 유미코의 대화가 소설의 두 축을 이룬다.
나는 타이 맥주를 마시고 약간 일본풍으로 바꿔 요리한 닭고기와 새우 코코넛 카레를 먹으면서 정말 공황이 오는 걸까 하고 유미코에게 물었다. 3년 전부터 언제 공황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경상수지는 마이너스 곡선을 그리고, 적지 않은 은행이 파산하여 외국 자본에 흡수되었지만, 결코 싸지 않은 전통 음식점에 모여들어 즐겁게 떠들어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공황이라는 말에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소문이 퍼지고 있을 동안은 절대로 공황은 오지 않는다고 유미코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도 모르겠어. 현재로선 일본을 박살내서 미국에게 좋을 게 없으니까. (…) 로마건 사라센이건 몽골이건 절정기를 맞이한 후에는 반드시 내리막길을 걸었으니까. 그것도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세계사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잖아. 그러니 일본인들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말란 법이 없지 않겠어. 물론 사라진다고 해서 일본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원래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었잖아. 영향력도 없고 발언권도 별로 없는 나라였으니까. 그러면 어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경제적으로 이류 삼류로 떨어진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pp.58-59
등교 거부 중학생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세키구치의 파트너인 사진기자 고토는 몽골의 ‘소년병’ 이야기를 통해 뽕짱 그룹들에게 격려한다.
“칭기즈칸이 제국을 건설한 다음, 몽골은 서방으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해. 바투 왕은 광활한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서 우랄 강을 건너 러시아를 제압하고, 모스크바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폴란드와 헝가리 왕국을 격파하고, 신성로마제국의 입구 부근까지 공략했지. 몽골군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먼 거리를 이동했어.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그 원정군의 주력이 바로 소년병이었어.”
소년병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중학생 다섯 명의 눈이 반짝였다.---p.107
모든 나라가 그러하겠지만 국가적 문제의 핵심은 ‘리스크 관리’이다. 핵 재앙을 예고하는 듯한 등교 거부 학생의 말에는 어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혹은 말할 수 없는 핵심적인 문제들이 들어 있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작은 관리는 되지만, 쓰나미나 핵폭발 사고 등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대형 사고에는 거의 무방비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 사회에는 리스크를 특정지을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리스크?”
예.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리스크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특정할 수 없으면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이 나라에는 원자력이라든지 환경호르몬이라든지, 또는 그런 것을 포함한 환경 전반으로 확대해도 상관이 없지만, 또는 안전보장이라든지 치안이라든지 금융 시스템 같은 매크로 모델이라도 좋은데, 요컨대 2∼3퍼센트 확률로 일어나는 중소 규모의 사고나 위기에 대한 리스크는 특정할 수 있으나 0.000001퍼센트의 확률로 일어나는 거대 규모의 사고나 위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리스크 산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향은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위의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결국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신흥 종교나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라든지, 핵연료 시설의 사고라든지, 또는 미래에 우리가 사회에 참가할 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포함하여, 보통 학교라는 곳은 리스?를 특정하여 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훈련이라든지 공부를 하는 곳은 아닐까요. 그게 없는 이상 그런 공동체를 벗어나서 자신들의 힘으로 리스크를 특정하면서 그것을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게 너무 위험한 게 아닐까요? ---pp.344-345쪽)
독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과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들은 말썽 많은 핵에너지를 쓰지 않고 풍력발전을 원동력으로 하는 자연 친화적인 에너지를 확보한다.
“실질적으로 풍력 발전은 거의 이익을 낳지 않습니다. 전기 요금은 화석연료에 비해 비쌉니다. 바람은 안정된 발전원이 될 수 없고, 낙뢰 때문에 고장도 잦아서 유지 비용이 많이 듭니다. 날개가 돌아갈 때 나는 소음 문제도 심각하지만, 현재 우리는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음향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지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씨에게 의뢰한 상태입니다. (…) 또한 화석연료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때 풍력 발전이 주력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태양열 발전과 함께 중요한 선택지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그때가 되면 일본에서 유일하게 노하우를 가진 전력 회사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드베이스라는 풍력 발전 회사의 홍보 담당자는 그렇게 발표했다. ASUNARO는 에너지를 확보한 것이다.
(본문 399-400쪽)
그들은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일약 영웅이 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독립한 그들은 과연 어떤 운명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중학생들이 지금까지 손에 넣었고 앞으로 넣을 것을 우리들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덴엔도시 선의 잡종 빌딩에 모여 있던 애들이 BBC와 CNN에 소개되었고, 주가와 환율을 마구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다. 벌써 일본 정부도 미디어도 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들의 실체를 과연 누가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아파트로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그런 뉴스를 보면서 혼자 술을 마셨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퐁짱의 영상이 반복해서 비쳐 나오고 있었다. 퐁짱은 해외 미디어에서도 화제의 인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조간 국제 면 톱으로 퐁짱을 소개했다. 표제는 ‘중학생이 일본을 구하다’ ‘우리가 일본의 희망이다’였다.
---pp.337-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