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수에 실패하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공신’에 글 한 편을 올렸다. “자극충전 100%. 이렇게 하면 필패한다.”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고, 후배들은 절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무심결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이 눈 깜짝할 사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공신에 오른 모든 글을 제치고 최고 추천 수, 최다 댓글 수를 기록했고, 각종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로 스크랩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글을 쓴 나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던지는 출사표였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낱낱이 분석했고, 내년엔 반드시 전국의 수험생들 앞에 성공적으로 나타나겠다고 맹세했다. 그렇게 단언했으니 만에 하나 실패했다가는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고개조차 들지 못할 판이었다.
믿지 않겠지만…… 감히 목숨을 걸었다. 3수를 하는 내내 매순간 목숨을 걸었다.
--- p.3
더 이상은 혼자 어떻게 안 되었다. 멘토가 필요했다. 나를 인도해줄 멘토. 욕심은 있는데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누군가 멘토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 순간 내 손을 놓아도 스스로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전교 1등이었다. 공부도 잘 하는 사람한테 배워야 빨리 배운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교 1등을 하는 그 친구를 다짜고짜 찾아갔다.
― 거래다.
― 거래라니? 무슨?
― 원하는 게 뭐냐?
― 원하긴 뭘 원해?
― 원하는 게 없으면 내가 너 등하교 때 가방을 들어주마.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 대신 나 공부하는 방법 좀 알려주라. 과외까진 안 바라고, 어떻게 공부하는지만 알려주라.
그렇게 무심결에 황당한 거래를 해버리고 말았다.
--- p.21~22
‘어 이럴 수가? 왜 이렇게 쉽지? 왜 이렇게 답이 금방금방 나오는 거야?’ 나는 답이 너무 쉽게 눈에 보이자 기쁨과 안도감보다는 불안감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답이 잘 보이니까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에이 모르겠다. 결과를 받아들이자.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았는가?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다. 수고했다, 구본석! 잘했다, 구본석! 그렇게 시험은 끝났다.
― 시험 잘봤어? (전교 1등)
― 뭐 잘 모르겠어…….
―걱정 마. 이번 시험 다들 어려웠대. 너만 어려운 게 아니었을 거야.
― 난 오히려 너무 쉽게 느껴져서 불안하다.
― 뭐, 이번 말고 다음 기회가 또 있겠지. 후회는 없잖아? 내가 봐도 넌 너무 열심히 했어.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하나 둘씩 과목점수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은 과목당 점수가 나왔을 때 100점을 받은 사람의 이름에 형광펜을 칠했다. 그때마다 항상 구본석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과목만 운 좋게 그랬나 보다 했는데. 세 과목째, 네 과목째, 다섯 과목째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구본석 이름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웅성웅성.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 얘들아 대박이야, 초대박! 구본석이 영어 듣기 1점 빼놓고 전과목 만점 맞았대. 평균 99.99야.
―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솔직히 나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전교 1등을 하다니. 내가 평균 99.99를 맞다니.
--- p.27~28
집에 돌아오면 보통 10시쯤 되었다. 잠은 11시경에 청했다. 나는 밤늦게까지; 버티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 기상이 몸에 익어 있었다. 문제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었는데 식구들은 1시경 잠을 잤다. 그러면 나를 깨워줄 사람이 없었다. 알람도 소용없었다. 답은 하나였다. 식구들이 자기 직전에 나를 깨워주고 잠을 자면 되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새벽 1시. 그렇다. 하루에 두 시간을 잤다.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일어나지 않으면 많은 공부를 소화해낼 수 없었다. 한 학기를 허송한 상태라 탈출구도 없었다. 가히 극단적인 방안을 생각했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했다. 찬물로 샤워를 했다. 몸을 대충 말리고 줄넘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수능 500점을 기원하기 위해 500회의 줄넘기를 했다. 다시 방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역시 찬물이다. 다 씻었으면 완전무장했다. 속옷 두 겹, 내복 두 겹, 겉옷 두 겹, 그 위에 점퍼. 손은 비닐장갑 여러 겹, 양말은 최소 3개를 신었다. 털모자는 기본이다. 채비가 완성되면 돗자리와 책가방, 상을 들고 나가 집 앞의 남선중학교로 달려갔다. 운동장은 새까만 어둠에 둘러쌓여 있다. 그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펼친다. 그해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눈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상을 폈다.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지 알겠는가? 그렇다. 새벽에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미쳤다고? 그렇다. 미쳤다. 나는 공부에 미쳐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상을 펴고 공부했다. 조명은 손전등으로 대신했다. 의외로 무한한 행복과 감상에 젖었다.
--- p.73~74
4월이 되었다. 이제 어엿한 서울대생이 된 나는 과제 때문에 새벽 2시에 서울대 중전(중앙 전산원)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신’에서 연락이 왔는데 전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꿈에서만 그리던 형일 형이 받았다.
― 필패(이렇게 하면 필패한다)님 맞으시죠? 어떻게 되셨어요?
― 서울대 다니고 있어요.
― 얌마. 너 왜 공신 신청 안 했어?
― 이래저래 바빠서요.
― 지금 당장 인터넷 공신 지원해.
그렇게 해서 나는 인터넷 공신이 되었고, 공신으로서 ‘구본석의 N수 상담실’이라는 전용 상담실도 생겼다. 약속을 이룬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이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나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덤비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많이 부족하고 보잘 것 하나 없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2009년 5월 13일에 ‘이렇게 하면 필패한다’의 뒤를 이은 ‘이렇게 하면 필승한다’를 전국 수험생들에게 바쳤다.
---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