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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진:심

연두 | 가하 | 2011년 06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6 리뷰 20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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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30g | 128*188*30mm
ISBN13 9788997081400
ISBN10 899708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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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머신 버튼을 누르고는 거실에 있는 서류가방을 가지러 가던 선욱은 소파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보고는 멈칫했다.

“음?”

그녀가 집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어젯밤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파에 정희재가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추워서 입은 건지 아니면 잠깐 누워 있으려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것인지 패딩점퍼를 입은 채였다.
선욱이 소파 끝에 반쯤 걸터앉고는 쪼그리고 자고 있는 희재를 내려다보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엿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채 사이로 귓불과 턱이 드러나 있어 그가 살며시 손을 가져가 볼을 어루만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이제 보니 귓불이 예뻤다. 하기야 정희재가 예쁘게 느껴진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새삼스럽다. 그의 입에서 소리 없는 숨이 흘러나왔다.
선욱이 손길을 떼고 고개를 들어 거실 창밖을 응시했다. 거실로 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 정희재도 그에게 들어오고 있었나 보다. 그녀가 가지 않고, 그의 집에 있다는 게 이토록 기분 좋을 줄은 몰랐다. 한송희 모친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고 난 후부터 허우적거리고 헤매던 마음이 이 순간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그녀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진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건 정희재는 그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아서 지치고 고단했던 마음이 위로받은 듯 편안해진다.
속 깊은 곳에서 요동치고 들끓었던 어떤 것이 잔잔해졌다. 그의 집 소파에 그녀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거실 바닥에 내려앉는 햇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욱이 잠들어 있는 희재를 다시 들여다본다. 그는 살며시 손을 가져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대로 머리채를 움켜쥐고 그녀를 가지고 싶다. 정희재는 그가 지금 삼킬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이 무방비한 아가씨를 어찌해야 하는 걸까.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잡아먹고 싶은데, 정희재는 그를 믿는다는 양 천진한 얼굴로 자고 있으니 말이다.

‘너는 내가 남자로 안 보이냐?’

그의 집에서 통닭을 나눠먹고 돌아갔던 그때도 그는 희재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온 후 달뜬 몸 때문에 꽤 오랫동안 뒤척여야 했다. 그런데 그의 몸에 불씨를 지펴놓은 정희재는 아무것도 모르고, 활활 타고 있는 불길 앞에서 잠만 자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망설임 끝에 선욱이 손끝으로 희재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말랑말랑하고 뜨거운 감촉이 느껴져 손길이 떼어지질 않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여리고 말캉한 감촉에 그가 검지 끝을 살며시 입술 안으로 넣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혀가 닿았다. 그가 억눌린 숨을 뱉어내며 손가락을 빼내는데, 입술을 건드려서일까, 희재가 어렴풋이 잠에서 깬 듯 뒤척였다.

“으으음…….”

희재가 눈을 번쩍 뜨고는 두리번거렸다.

“막차를 놓쳤던 거야?”

희재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선욱을 올려다보았다.

“깜빡 잠들었나 봐요. 첫차 타고 가려고 했었는데……. 몇 시예요?”

“7시 반.”

선욱이 대답을 하면서 그녀의 눈 꼬리에 맺힌 눈물방울을 손으로 닦아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희재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는데 선욱이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말했다.

“갈 거면 지금 빨리 일어나서 가야 돼.”

그의 숨결이 희재의 입술에 닿았다. 희재가 자신의 숨결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작게 물었다.
“왜요?”

“지금 안 가면, 내가 잡아먹을 거거든.”

희재의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비식 웃음을 짓던 선욱은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맞추었다. 희재가 당황하며 입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혀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자, 그가 손으로 희재의 턱을 잡아 벌리게 하고는 더 깊숙하게 혀를 집어넣었다.
자다 방금 일어난 터라 입 냄새가 날까 두려웠다. 희재가 그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그는 희재의 손을 잡아 쥐고는 더 거칠게 입맞춤을 했다. 입맞춤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입 냄새 날까 봐 숨도 제대로 내뱉지 못한 희재가 어느 순간 숨이 막히는지 괴로워하며 고개를 돌리려 하자 선욱이 그제야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싫은 거야?”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져 있었다. 희재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입 냄새 날까 봐…….”

“이 정도는 견딜 만한데.”

말이라도 안 난다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무안하게 ‘견딜 만하다’니. 자다 일어난 사람을 덮친 건 그이지, 그녀가 아니지 않은가.
희재가 순간 성질을 못 참고 벌떡 일어나 앉아서는 옆에 있는 방석으로 선욱을 쳤다.

“으이씨, 그냥 안 난다고 해주면 어디 덧나요?”

선욱이 방석을 이리저리 피하며 큭큭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웃고 있던 얼굴은 이내 진지하게 변했고, 방석을 치던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희재가 짐짓 새침하게 그를 흘겼다.

“비켜요. 이 닦으러 가게.”

“싫은데…….”

“입 냄새 난다면서요?”

“키스해서 지금은 안 나.”
희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하는 남자인 줄 정말 몰랐다. 선욱이 방석을 빼앗아서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는 걸터앉았던 자세를 바꿔 소파 깊숙이 고쳐 앉았다. 그리곤 무릎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희재를 바라보았다.

“이리 와.”

부드러운 명령이었다. 희재가 망설이자 선욱이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싫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그가 하는 애무를 받아들여야 하나.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녀를 술집종업원으로 알고 있는 그이니, 쉽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솔직하게 내밀한 이야기를 해서, 그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손길에 가슴이 떨리고 그의 눈빛에 설레고 두근거렸다. 사실은 내내 그에게 안기고 싶어 했었다.
희재의 얼굴에서 혼란과 망설임을 읽었는지 그가 쓰다듬던 손길을 멈췄다.

“하지 말까?”

손길은 멈춰졌지만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손길은 멈춰졌지만 그의 손이 뜨거웠다. 그도 그녀만큼 설레고 두근거리고 떨리는 것이리라.
그를 빤히 쳐다보던 희재가 고개를 저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두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어쩌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관계일지도 모른다. 법정에서 그와 만나게 되면 그는 이렇게 곁을 내주지 않으리라. 이렇게 편하게 집에 드나드는 것도, 연락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관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향하는 대로 그녀를 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를 단념해야 한다면, 그를 놓아버려야 하는 거라면, 지금 그에게 안기고 싶다. 그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이리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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