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때만큼은 커피가 물보다 필수품이었고, 정말 6시간이라도 잘 수 있는 날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공강 시간마다 동아리방에서 잠을 자기 일쑤였는데, 덕분에 동아리 내에서 ‘동방 시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만약 광고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얘기해 준 ‘오타쿠’란 표현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타쿠의 의미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부정적인 그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즐기려는 나’에 대한 일종의 칭찬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마니아만 되어서는 안 된다. 마니아는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오타쿠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꿈에 중독되고, 집착하고 즐기면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가치 있게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 --- p.101
물론 우리가 스펙을 올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참으로 많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학점도 관리를 해야 하고, 어학 점수도 따야 하고, 공모전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잘하기엔 우리의 몸이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럴수록 ‘하나라도 제대로’라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열정을 가져도 집중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뜨거운 열기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라도 집중하여 제대로 완성해야 그것이 실제적인 기회로 찾아오는 것이다. --- p.103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은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사회에서 선호를 하게 되고, 유명하지 못한 대학을 나온 사람은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어서, 사회에서 덜 선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실력이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실수를 하게 되면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에 실망이 큰 법이지만, 좋지 못한 대학을 나와서 인정을 받으면 오히려 그 의외성 때문에 더 인정을 받을 수 있지. 다만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어렸을 때 그만큼의 노력을 해서 좋은 위치에 가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갭을 좁히려면 몇 배로 노력을 해야 한다.”
교수님의 조언은 주눅이 들어 있던 내게 다시 뛰어야 하는 이유를 주었고, 그것은 어느 때보다 나에게 절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 내가 당장 수능을 다시 볼 수 없는 위치라면, 일류대학의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꿈을 사랑하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만약 자신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럴수록 냉정해지라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하되, 이는 위축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다음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꼭 필요한 자세이다. --- p.152
그리고 인턴을 하면서 뵙게 된 한 분 한 분이 정말 프로로서 광고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곳에서 광고 일을 하면, 인생이 정말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에는 칸 광고제에서 느꼈던 ‘우리나라 광고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자긍심도 한몫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광고의 수준은 세계에 견줄 정도로 성장해 나갈 것이고, 그 원대한 꿈의 성장과정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으로 차올랐다. 인턴이 끝나는 마지막 날, 많은 것을 가르쳐준 선배님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여권을 만들어 드렸다. 그 여권은 실제로 비행기에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인들을 위한 일종의 부적이었다. 그래서 여권 안쪽에는 이렇게 썼다.
“광고인들의 필수품!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
그리고 새로이 장전된 나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턴이 끝나는 시점에서 주저하지 않고 제일기획에 입사 지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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