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서장실 안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연신 몸을 꿈지럭거렸다. 오늘 아침, 시코쿠 촌구석 논밭 사이에 오도카니 자리한 작은 경찰서에 서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이 서장용 의자는 너무 푹신해서 오히려 불편하다. 이런 의자는, 오랜 세월 현장 바닥을 훑고 다니느라 요통을 얻고 정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앉아 보는…… 요컨대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의자다. 이제 30대 중반인 나 같은 놈이 앉아서 일할 의자는 못된다. 하긴 이런 지방 관할서에서 나 같은 커리어 출신은 그저 장식품 같은 존재라, 어차피 일거리도 없으니 별 상관없을지 모르겠다. 옛날엔 더 심해서 서른도 되기 전에 서장이 되었다고들 한다.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하여 경찰청에 입성한 커리어조는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초스피드로 출셋길을 달리는데, 바쁜 건 중앙에 있을 때뿐이고 지방에 내려가 있는 기간은 이른바 안식년쯤으로 여긴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보았다. 경찰청 시절에 쓰던 책상보다 족히 두 배는 크다. 책상에는 이 현과 현경 그리고 이 시의 마스코트 캐릭터 인형들이 있다. 하나같이 귤을 모티프로 삼고 있고, ‘미캉 씨’, ‘미캉 순경’, ‘미캉 짱’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 p.8~9

“2구 보고!” 수사관 측 아시카가 경위가 목청을 높였다. 아시카가 경위는 작달막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도 그렇고, 어느 모로 보나 형사 아니면 형사에게 쫓기는 사람으로밖에 안 이는 풍모를 지니고 있다. 현경 본부에서 파견된 수사관인데, 수사를 지휘하는 니노미야 임수사관이 이미 침몰 직전인 터라 실질적으로 수사관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시카가 경위에게 지명받은 관할서 소속 수사관이 일어섰다. “2구, 목격자 없음. 족적 관련 정보 없음.” 그 말에 아시카가 경위가 버럭 성질을 냈다. “멍청아! 범인이 그런 꼴로 떡하니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니들은 대체 뭘 묻고 다니는 거야!” “몇 번을 다니든, 2구에 없다면 없는 거라고!” 관할서 수사관이 지지 않고 아시카가 경위를 노려보았다. 수면 부족과 혈압 상승으로 인해 둘 다 눈이 시뻘겋다. 오전에 모리 부서장에게 듣자 하니,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에는 꽤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그 신발 밑창의 방사형 무늬로 보아, 범인은 웨이더라는 것을 착용하고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웨이더란 장화와 작업복이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통 낚시꾼이나 어업 종사자들이 착용한다. 아마도 범인은 범행 시 몸에 피가 튈 것에 대비해 그런 옷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주택가를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남들 눈에 띄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목격자도 없을뿐더러 편의점 등지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았다. “없다면 없는 거라고? 그러고서 잘났다고 기어들어왔냐!? 무슨 자율 방범대원이야!?” “뭐야!?” 관할서 수사관이 아시카가 경위의 책상에 메모지를 내던졌다. 아시카가 경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p.18~19

“가나가와 현경에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가나가와에서 일어난 사건의 수사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출장 갔던 수사관들인 듯하다. “선물은?” 힐끗 쏘아보며 묻는 아시카가 경위에게 수사관은 대답 대신 히죽 웃어 보였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미소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뾰족한 덧니가 무시무시하다. “선물 보따리는 여기. 그쪽 수사 자료, 눈에 띄는 것들은 모조리 복사해 왔슴다.” 수사관이 보스턴 가방에서 파일 철을 차례차례 꺼냈다. “그리고 복사할 수 없는 건, 빼왔죠.” 그 말에 나는 놀란 숨을 삼켰다. 뭐? 설마…… 설마, 그 오래된 파일 철은 수사 자료 원본? ‘빼왔다’니…… 그 말인 즉…… 당신들, 그걸 저쪽 허락 없이 가지고 왔다는……. “좋았어!” 아시카가 경위가 기쁨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모여 있던 수사관들이 우와아아! 하고 환성을 지르며 파일 더미에 달라붙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가 ‘좋았어!’라는 거야? 이 사람들은 들개가 아니야. 미친개야! “분담해서 정리해!” 아시카가 경위가 고함치듯 명령하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저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시선에 대답했다. 아시카가 경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히죽 웃었다. 현기증이 이는 것 같다. 그 ‘끄덕이면서 히죽’은 대관절 무슨 의미입니까? 설마 내가 ‘묵인’했다고 여기는 겁니까? 제발 무슨 말이든 해달라는 심정으로 좌우를 봤지만, 모리 부서장도 니노미야 주임수사관도 자리에 없다. 당황하여 회의실을 둘러봤더니, 있었다. 두 사람 다 파일 더미에서 빼낸 서류를 읽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랬지. 이 사람들은 들개들의 우두머리였지. --- p.34~35

“이유가 있습니다. 피해 여성은 농약 성분에 대한 과민증이 엄청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병력란에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피해자는 콘서트가 끝난 시점에 한 번은 꽃다발을 손에 들었을 겁니다. 청중들이 보는 앞에서 꽃다발 증정을 거절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피해자는 농약에 민감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되지 않을 양이겠지만, 피해자는 꽃다발을 오래 갖고 있을 수가 없죠. 함께 공연한 연주자에게 확인했는데, 대기실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꽃다발을 버렸답니다……. 그래서 피해자 주변에 꽃다발이 없었던 겁니다.” 아시카가 경위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런 봄 날씨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꽃다발을 든 모습을 본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인가……. 출연자, 청중 그리고 콘서트홀 직원…….” “콘서트장이 어디였지?” 니노미야 주임수사관이 수사관들을 향해 질문했다. “시민회관 소형 홀입니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청중은 그리 많지 않았겠군.” 모리 부서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네.” 돼지마쓰 군이 대답했다. “티켓은 거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팔렸다고 합니다. 바로 가려낼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농원에 간 자가 있다면…….” “보통이 아닌 걸…….” 아시카가 경위가 신음하듯 말했다. “돼지마쓰, 너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해낸 거냐.” “아뇨.” 돼지마쓰 군이 고개를 저었다. “전부 다나카 서장님 지시입니다. 과민증이나 꽃다발을 눈여겨보라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듯이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내가 제일 놀랐다. 그런 지시를, 내가, 했었나? “아무튼 티켓을 추적해!” 니노미야 주임수사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카가! 당장 반을 나눠!” 아시카가 경위가 기운차게 일어섰다. --- p.47~48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카기’라는 배의 프라모델 상자를 손에 들고 있다. ‘아카기’란, 항공모함의 일종으로 전투기 따위를 탑재한다. 전함 못지않게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배다. 하지만 그 아이가 들고 있는 ‘아카기’는 복잡하고 꽤 만만찮은 모델이라고 들었다. ‘함정 모형 제작은 도전으로 시작해서 도전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부디 힘내기를. 남자아이 건너편에 서 있던 어르신이 꺼낸 건 경순양함이라는 소형함 모델이다. 고령자답게 취향이 수수하다. ‘함정 모형 제작은 경순양함으로 시작되진 않지만 경순양함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지요. 부디 힘내시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며 나도 행복한 기분에 젖었다. 그리고 나도 슬슬 경순양함에 손을 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순양함 상자를 순서대로 훑었다. 그리고 몇 번째인가 상자에 그려진 일러스트에 마음을 흠뻑 빼앗겼다. 그 배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밤바다를 나아가고 있다. 적을 향해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다. 배 이름은 ‘진츠’라고 하나 보다. 나는 그 경순양함 상자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나보다 앞서 온 한 남자가 계산대에 선 여주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상당히 경박한 느낌이 나는 남자로, 프라모델 가게에서는 보기 드문 타입이다. “아줌마! 주문한 거 왔어요?” 여주인이 뒤쪽 진열장에서 상자를 세 개 꺼냈다. “같은 모델로만 세 개라니, 어디 프라모델 동호회에서 여럿이 같이 만드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부 내 거. 함정 모형은 부품이 없어지거나 부러질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으로 사두는 거죠.” 그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700 규모 함정 모형은 부품이 작은 게 사실이다. 크기가 밀리미터 단위인 부품들은 바닥에 떨어지면 찾기도 어렵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같은 모델을 세 개씩이나 사서 어쩌자는 건지. 그랬다간 설령 한 척을 완성시킨대도 두 번 다시 쓸 수 없는 부품들이 잔뜩 남지 않겠냐고.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프라모델을 사랑하는 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군. 없어진 부품은 나올 때까지 찾고, 망가진 부품은 내 손으로 고친다……. 그것이 프라모델을 사랑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다. 제조업체에 주문하면 필요한 부품을 바로 보내주지만, 뻔뻔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설마 처음부터 같은 것을 세 상자씩이나 사재기하는 나쁜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거봐, 여주인도 어쩐지 난감한 듯한,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잖아. 그런데도 이 개망나니 같은 놈은 그런 표정 변화를 못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돈을 지불하고 쌩하니 나가버렸다. --- p.58~60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사라진 ‘진츠’ 부품의 행방이다. 도대체 그 부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분명 서재 어딘가에 있을 터. 하지만 구석구석 샅샅이 뒤졌는데도 나오질 않는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바닥인데 하필이면 카펫 색깔이 회색이라서 회색 부품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전함 모형은 회색 부품이 제일 많은데. 대체 왜 애초에 회색 카펫을 깔아둔 거냐고. 이래서는 앞으로도 부품을 떨어뜨릴 때마다 고생해야 하잖아. 부품을 찾는 즉시 카펫부터 바꿔야겠어. ……그런데 무슨 색이 좋을까……. 회색 부품이 떨어졌을 때 가장 찾기 쉬운 색은…… 핑크? 아니,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서재에 핑크색 카펫은……. “회색에 녹색이면 눈에 잘 띌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군함에 적재된 비행기는 녹색이 많다. 녹색으로 도장한 부품을 녹색 카펫에 떨어뜨렸다간 그 또한 큰일이다. 역시 핑크가 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주택가로 내려와 있었다. 나는 도리 없이 서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에 들어왔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액정 화면을 보니 ‘사이온지’라는 글자가 떠 있다. 나는 정면의 현관 기둥 그늘에 들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자네는…….” 사이온지 형사부장은 자기가 전화를 걸어놓고선, 한 마디 하고 나더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뭔지 몰라도 화가 많이 난 눈치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자네는, 지난번 회의에서 대체 뭘 들은 건가!?” 사이온지 형사부장의 목소리가 노여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은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명령했을 텐데!” “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서의 소동이 벌써 사이온지 형사부장 귀에 들어갔나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방금, 방위청에서 강력하게 항의가 들어왔어.” 방위청…….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 건과 관련하여, 국가공안위원회와 경찰청은 원전이 있는 관할구역에 한해 자위대의 대테러부대 행동을 용인한 상태였네.” “네에,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자네 서원들이 원전을 은밀하게 경호 중이던 자위관에게 직무질문을 했다더군. 민간인 차림을 한 자위관은 신분을 밝힐 수 없었기에 어떡해서든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 자위관을 자네 서원들이 마구잡이로 구타해서 연행해갔어. 모르겠나!? 다시 말해 현장은 자네 서의 관할구역이 아니라고! 옆 동네라고, 옆 동네!” 월경 수사도 모자라 임무 수행 중인 자위관을 폭행……. --- p.77~79

내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아카기’다. 구조가 복잡하게 뒤얽힌 ‘아카기’는 일단 완성하고 나면 깊은 맛이 나겠지만, 문제는 그 복잡한 형태다. 그것은 ‘아카기’가 두 번의 대규모 개장을 거쳤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두 번의 개장이라…….” “네?” 자료를 들여다보던 돼지마쓰 군이 얼굴을 들었다. 아차.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집중할 때면 생각이 그만 입 밖으로 나와버리는 것이 내 나쁜 버릇이다. “내진 공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기쿠치 경사가 돼지마쓰 군의 컵을 쟁반에 거둬들이면서 말했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하고 있잖아요. 1층 부분이 끝나고 지금은 2층을 손보는 중인데. 공사 소음이 생각하는 데 방해되지 않아요?” 돼지마쓰 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난카이 대지진이 오기 전에 완성되면 좋겠네요…….” 거지반 건성으로 기쿠치 경사에게 대답하고 나서 돼지마쓰 군은 다시 수사 자료에 눈을 떨궜다. 위험해, 위험해. 근무 시간 중에 개인사에 몰두하고 있는 걸 들킬 뻔했다. 기쿠치 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 기쿠치 경사는 컵에 보리차를 더 따라서 돼지마쓰 군 책상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평화롭구나. 나는 맛있는 보리차를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마셨다. “……그런가.” 돼지마쓰 군이 고개를 들었다. “젠장……. 그런 거였어!” 돼지마쓰 군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혹시 나 때문에 헛고생했다는 걸 알아버렸나? 돼지마쓰 군이 벌떡 일어섰다. “서장님, 죄송합니다! 서장님의 생각도 모르고 제가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유급휴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돼지마쓰 군은 서장실을 뛰쳐나갔다. 기쿠치 경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휴, 그런 눈으로 좀 보지 말아줘요. 나도 뭐가 뭔지 통 영문을 모르겠다고요…….

<b>겁 많은 프라모델 마니아, 시골 경찰서장으로 부임하다!<br/>“아아, 지방 시청에나 들어갈걸. 왜 경찰 관료 같은 게 돼버렸을까.”</b><br/><br/>다나카 겐이치,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행정고시인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경찰 관료다. 딱히 경찰이 되어 사회악을 척결하겠다는 등의 사명감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다 보니 도쿄대 문과1류에 들어갔고 주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졸업 후 경찰청에 말단으로 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정년 퇴임 후 경찰청의 어느 산하단체에 낙하산 격으로 들어가 프라모델로 ‘구 일본 해군의 연합 함대’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청 내부의 인사이동으로 갑자기 시골 경찰서 서장으로 발령받는다. “엘리트는 현장 수사에 관여하지 않아. 부하가 올리는 서류에 도장만 잘 찍으면 우리 일은 끝이야”라는 경찰청 선배의 말에, 재임 기간 동안 조용히 프라모델 조립에 매진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지만, 웬걸! 다나카 서장이 부임한 바로 그때부터 조용한 시골에는 대형 사건이 빵빵 터지기 시작한다.<br/><br/> 그렇게 다나카 서장은 숙업인 프라모델 연합 함대 제작을 제쳐두고 사건 해결에 뛰어들지…… 않았다. 경찰청 선배의 말을 되새기며, 사건 해결은 일선 형사들에게 맡기고 프라모델 제작에 관한 생각에 골몰해 있다. 몸은 경찰서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자택 서재의 프라모델 제작대 앞에 있다. 연쇄살인 사건 해결을 위해 마련된 수사본부에서도 전날 밤 도색하려다 망친 구축함을 되살릴 생각에 여념이 없다. 프라모델 제작에 관해서는 상당히 완고한 제작 정신을 지닌 다나카 서장은 다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곤 자책한다. 그러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후퇴는 없다”. 이 한 마디를 시작으로 뼛속까지 경찰인 부하 형사들의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하고, 일사천리로 사건이 해결된다.<br/><br/><b>믿고 읽는 미스터리 작가의 흥미진진 코믹 추리물!<br/>재미와 긴장감이 기똥차게 버무려진 추천작!</b><br/><br/>가와사키 소시는 일본에서 아주 어두운 호러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기존 독자들에게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은 다소 놀라웠다. 이전까지 선보였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아주 코믹하고 재기발랄한 경찰 소설로 돌아오다니! 이 과감한 장르 전환은 오히려 가와사키 소시의 작가적 재능을 입증하면서, 이렇게나 밝고 명랑하고 웃기기까지 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한층 더 사랑받게 됐다. <br/><br/> ‘현장 수사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엘리트 수칙을 지키려는 순애보 프라모델 마니아 다나카 서장, 그런 다나카 서장을 바로 옆에서 보필하는 기쿠치 경사, 늘 놀림 받지만 알고 보면 수사 천재가 아닌가 싶은 돼지마쓰 순경, 우직한 경찰의 표본인 모리 부서장 등등, 우연의 연속으로 ‘어쩌다 보니’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다나카 서장과 열혈 부하들의 모습을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연민이 느껴진다. 읽을수록 그들이 어디선가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을 것만 같다. 등장인물들에게 정들고 말았다는 일본 독자가 많았던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한편, 호러미스터리로 사랑받은 작가답게 코믹한 상황과 별개로 추격전이라든지, 살인 사건 묘사 같은 것은 꽤 긴장감 넘치고 짜임새 있다. 심각하지 않고 경쾌한 소설이 읽고 싶을 때, 엉성하지 않고 추리 소설의 본분에 충실한 소설을 읽고 싶을 때, 딱 좋은 추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