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 주려는 자(흑자 주체)는 어떤 자가 정직하고 성실한지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돈을 빌리고자 하는 자(적자 주체)를 일단 의심하면서 높은 이자를 부과한다. 그러면 정직하고 성실한 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용에 비해 이자가 너무 혹독하므로 돈 빌리기를 포기한다. 반면에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자는 그저 남의 돈을 빌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높은 이자에도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이처럼 상대의 신용에 대한 평가가 어려워 높은 이자를 부과한 결과 신용 위험이 높은 자에게 돈이 흘러가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바로 '역선택의 문제'다.
그런데 역선택은 종종 도덕적 해이의 문제로 이어진다.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한 자는 돈을 빌리고 난 후 그저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에 무조건 수익률이 높은 사업에 뛰어든다. 그런데 수익률이 높은 사업은 예외 없이 위험이 큰 사업이라 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돈을 빌린 자가 돈을 신중하게 운용하는 게 아니라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탕진하게 된다.
이처럼 흑자 주체와 적자 주체 간의 정보 비대칭 문제로 인해 역선택이 빚어지고 이것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 그 결과 돈을 빌려 주면 뜯기기 쉽다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흑자 주체는 돈을 빌려 주기를 꺼리게 되고, 그 결과 금융이 위축된다. 이처럼 정보 비대칭의 문제로 인해 금융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며 이는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 문제를 위험의 분산과 규모의 경제로 해결한 것이 바로 은행이다. --- pp.35-36
트레이더들은 왜 적시에 손실을 털어 내지 못하는가?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인간을 '경제인(economic man)'으로 상정해 왔다. 그런데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각종 심리적인 편향(psychological bias)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시장의 가격을 왜곡시킨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기본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새로이 등장했으며, 금융 분야에서는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이라는 분파가 만들어져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적인 연구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이 이익과 손실 앞에서 비대칭적으로 행동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규명했다.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위험 회피적(risk-averse)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해 왔는데, 카너먼의 주장은 인간이 이익 앞에서는 위험 회피적이지만 손실 앞에서는 위험 추수적(risk-seeking)으로 바뀌면서 일관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트레이더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카너먼의 주장이 쉽게 이해된다. 트레이더는 자신이 만든 투기 포지션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이를 즉각 실현하고자 한다.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있음에도 트레이더들은 당장의 이익 앞에서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한다. 반면 투기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트레이더들은 이 손실의 실현을 가급적 미루고자 한다.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여지가 큰데도 손실이 당장 실현되는 것이 싫어 더 큰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 경제학에서 주장하듯이 트레이더들이 합리적이라면 당장에 이익이 나건 손실이 나건 일관되게 위험 회피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 pp.55-56
트레이더들은 왜 적시에 손실을 털어 내지 못하는가?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인간을 '경제인(economic man)'으로 상정해 왔다. 그런데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각종 심리적인 편향(psychological bias)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시장의 가격을 왜곡시킨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기본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새로이 등장했으며, 금융 분야에서는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이라는 분파가 만들어져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적인 연구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이 이익과 손실 앞에서 비대칭적으로 행동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규명했다.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위험 회피적(risk-averse)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해 왔는데, 카너먼의 주장은 인간이 이익 앞에서는 위험 회피적이지만 손실 앞에서는 위험 추수적(risk-seeking)으로 바뀌면서 일관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트레이더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카너먼의 주장이 쉽게 이해된다. 트레이더는 자신이 만든 투기 포지션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이를 즉각 실현하고자 한다. 그대로 놔두면 ? 큰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있음에도 트레이더들은 당장의 이익 앞에서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한다. 반면 투기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트레이더들은 이 손실의 실현을 가급적 미루고자 한다.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여지가 큰데도 손실이 당장 실현되는 것이 싫어 더 큰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 경제학에서 주장하듯이 트레이더들이 합리적이라면 당장에 이익이 나건 손실이 나건 일관되게 위험 회피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 pp.71-73
선물은 앞에서 예로 든 바가 있듯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크리스마스이브를 혼자 보내야 하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미리 데이트 약속을 해 둔 것과 같다. 이처럼 선물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서로 약속을 맺은 것이므로 약속 이행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즉 일단 데이트 약속을 했다면 크리스마스이브 전에 더 좋은 데이트 상대가 나타나도 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처럼 선물은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하는 하향 손실(downside loss)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더 좋은 데이트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상향 이익(upside profit)의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옵션이 등장한다. 옵션은 하향 손실의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동시에 상향 이익의 기회를 열어 두는 특성이 있다. 앞의 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데이트 약속을 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만약 크리스마스이브에 '다른 약속이 없으면' 나랑 만나자."라고 했다고 하자. 즉 "다른 약속이 없으면"이라는 조건을 닮으로써 여자에게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옵션을 부여한 것이다. 이제 여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이 남자와 데이트를 해도 좋고, 혹 그사이에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옵션을 행사해서 더 좋은 남자와 데이트를 해도 좋다. 이처럼 옵션은 이를 부여한 자에게는 의무이지만, 이를 부여받은 자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된다. --- p.339
금융의 역사에는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 붐이 일어난 적이 많았다. 1850년대의 철도 건설이 한 예다. 철도는 통신업, 유통업을 크게 부흥시킬 것으로 기대되었고, 실제 이들 업체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철도 회사의 높은 주가가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철도 회사가 경제 전반의 효율을 높인다고 해서 이익을 많이 내고 주가가 반드시 높아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신흥 전력 산업도 공장의 배치와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면서 경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전력 회사는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아 20세기 전반에 걸쳐 주가가 매우 낮았다. 이후 자동차, 라디오, 비행기, TV 등 신기술 제품들이 계속 등장했으나 열광적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는 달리 높은 주가 형성에 실패했다. 이처럼 신기술 산업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신기술 산업이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높은 주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효율을 높였지만, 그렇다고 인터넷 기업들이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인터넷 거품은 파열했다. --- pp.384-385
서브프라임 위기 때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변동 환율제가 정착되어 있었음에도 서브프라임 위기의 여파로 외자가 빠르게 이탈하면서 통화 위기의 위험성이 재차 부각되었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충분했고 국내 금융 기관이 미국 주택 대출 유동화 증권에 투자한 규모도 크지 않았다. 단지 경상 무역 수지가 소폭의 적자 상태였고 금융 기관의 단기 외채 비중이 다소 높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작은 이유만으로 국제 자본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보다 단기 외채 비중이 월등히 높고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 손실도 훨씬 큰 영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국제 자본의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아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크루그먼은 이 같은 현상을 가리켜 "신뢰의 게임(game of confidence)"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똑같이 변동 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데도 어떤 나라에서는 유사시 국제 자본의 이탈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반면 어떤 나라는 매우 급속하고 과대하게 외자가 이탈하면서 통화 가치가 무제한 폭락하는 사태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과 같이 금융 시장 개방의 경험이 일천한 나라의 입장에서 매우 심각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금융 당국이 경제 사정을 고려해 자본 자유화를 선택하고 고정 환율제를 포기했는데, 나머지 하나의 목표인 금융 정책의 자율성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대외 신인도가 높지 않은 나라일 경우 자본 자유화가 이뤄진 환경에서는 고정 환율은 물론이거니와 금융 정책의 자율성까지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삼위일체 불가능성 원리와 달리 하나의 목표를 선택한 후 두 가지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됨에 따라 자본 자유화 폐해론 혹은 자본 이동 규제론이 대두되었다. --- pp.423-424
금융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렇다고 중동과 아시아에 아무런 역사적 성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슬람 민족에 의한 인도양 교역의 개척, 중국의 해양 국가로서의 경제 활동은 역사가 오래며, 상업과 화폐 경제의 발전에 있어 동양이 서양을 앞섰던 시기도 있었다. 특히 중국의 북송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의 기간(11~14세기)에는 중앙은행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음에도 지폐가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동양에서도 금융의 맹아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왜 중국은 오랜 상업 발전과 화폐 경제의 역사에도 금융 강국이 되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금융의 제도적 발전이 미흡해 상업으로 축적한 부를 자본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화폐 경제의 발전은 단지 상업의 일환이었을 뿐, 은행의 발전, 금융 자본의 형성, 자본 시장의 발달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서양은 금융 시장을 키워 민간 자본 주도로 대항해나 철도 건설과 같은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계속적으로 추진했으며, 국가도 식민지를 개척하고 교역을 증대하는 데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로써 중국은 중세까지만 해도 상업과 기술의 최첨단을 달렸지만 결국 서양에 밀리게 되었다. 중국이 발명한 나침반은 오히려 서양의 대항해 시대를 촉발했고, 중국이 발명한 인쇄술은 서양의 종교 개혁과 근대화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지폐 및 은행 제도의 보급을 이끌어 냈다.
--- p.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