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가 자신과 맺고 있는 불편한 관계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와 함께 의식의 과잉이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짐작하신 분도 있겠지만 시인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것은,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말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보들레르가 그런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각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을 또 다른 자기가 끊임없이 관찰하고 의식하는 겁니다. --- p.80
또 하나의 목적은 이 소설을 읽는 19세기 독자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때문이었죠. 이 글을 단순히 청교도 사회에 대한 기록으로만 읽지 말고, 그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겪어야 했던 고통에 집중해서 읽어달라는 얘기입니다. 이게 우리의 어두운 과거다, 그리고 미국은 이런 어두운 역사의 산물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거라고 할 수 있죠. --- p.135
통치국인 일본이 다른 언어를 쓰지 말고 일본어만 쓰라기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너희들도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따라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현실에 부딪쳤을 때 느끼는 좌절과 열패감. 타이완 사람들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p.199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자의 이해를 구해야만 얻어지는 관용, 불의한 세상에 영혼만 위로해주는 것으로 그치는 관용이 과연 진정한 관용인지. 그래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혹시나 델라우라와 클라베르 성인이 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관용의 선결조건인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관용만 부르짖음으로써, 마치 언제든 관용적인 처우가 가능한 세상인 것처럼 호도하는 결과를 빚었으니까요. --- p.253
『한 줌의 모래』라는 제목에도 드러나지만 모래에 대해 집착을 가지고 글을 썼어요. 시적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모래라는 소재는 한국인에게는 이색적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모래를 서정적으로 바라보자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유원지나 해변일까요? 모래라는 것을, 죽어서 수천 년이 지나 생명도 향기도 완전히 증발해버린 어떤 서글픈 가루라고 보신 적 있나요?
고통 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뭘 보든지 간에 고통으로 그려내게 되어 있습니다. --- p.270
카르펜티에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형상화하는 경이로운 현실은 작위적인 것, 머릿속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현실 자체가 경이롭기 때문에 진정한 경이로운 현실이 담긴 작품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관념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훨씬 더 낫다’는 선언을 한 셈입니다. 대단한 자신감이죠? --- p. 310
누가 문학 작품을 쓰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절실하게 있는 사람들이다. 그 이야기가 처절할수록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내부식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선주민, 흑인계, 라티노 들의 차례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이래저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그 이야기들을 새겨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곳은 더 좋은 세계가 될 것이다.-우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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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자신의 진짜 얼굴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걸 새삼 떠올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고전 읽기는 ‘진짜 얼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고전을 읽으면서 가면 뒤에 감춰진 진짜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가면을 진짜 얼굴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당신, 정상인가요? 고전 읽기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이병훈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 곧 나와 타인을 심층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타인을 ‘타인의 방’에서 발견하고 또 그 ‘타인의 방’에 타인과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의 무자비한 평가에서 살아남은, 그러니까 깊이와 넓이가 검증된 타인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때로 아니 이왕이면 ‘거물급’ 타인들의 속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에는 분명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다.-김용민
세계의 고전이 머리맡에 있다는 것은, 모든 인류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내 옆에 계신 것과 같다. 그 선생님들은 언제나 우리의 질문을 기다린다. 왜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무엇을 겪어야 하는지, 왜 행복해지는지, 왜 불행해지는지, 이 모든 인생 질문에 대해 ‘선생님’들은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답을 준다.-심원섭
문학은 자국어의 틀을 넘어선지 오래다. 문학이라는 글쓰기는 애초부터 번역과 공생했고, 바벨탑의 언어를 지향해 왔다. 이제 우리 땅에서 번역을 통해 소비되는 이국어 문학들은 한국어 문학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학 앞에 붙는 형용사가 독자들에겐 필요 없다. 문학은 늘 세계를 상대한다. 그러니 다만, 읽자.강우성
불안하고, 걱정하고, 복수할 것도 많은 현대인들의 삶.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시절부터 이미 현대인들의 삶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고요. 자기 삶의 시나리오를 디자인해놓고 그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런 의식과잉이 현대인의 삶에 있어 가장 커다란 질환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은 19세기 무렵 우리 현대인의 선배로서 앞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1강 중에서
여기 우줘류가 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문 작가일 것이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일제 강점기를 겪은 대만의 이야기를 대만인으로서 써내려간 작가다. 우리는 대만이 ‘아시아의 고아’라고 불리는 까닭을 그의 소설 『아시아의 고아』를 통해 알게 된다. 대만 소설이 일본어로 쓰여진 이유와 식민지 대만인의 영혼이 어떻게 문학에 녹아들었는지를 어쩌면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호기심과 탐구심은 드디어 한 권의 고전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여기 ‘이제부터 고전할’ 당신을 위해 준비된 책이 있다. 가장 쉬운 시작을 위해 『더 넓은 세계문학』은 더 많은 세계를 준비하고 있다.
문학으로 우리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
세계문학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무엇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과거에 쓰인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익숙한 일상의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게 된다. 고전을 읽는 동안 우리의 생각은 점점 넓어진다.
라틴아메리카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이래저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그 이야기들을 새겨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곳은 더 좋은 세계가 될 것이다.- 우석균
어제의 문학이 내일의 우리를 더 넓게 만들어주는 일, 그것은 시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보물일지 모른다. 지역과 시대를 넘어서 전달되는 생의 진리들은 시들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계문학은 지구보다 크다. 여덟 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 『더 넓은 세계문학』이 우리를 이루는 세계의 둘레를 한 뼘씩 넓혀줄 것이다.
--- 「저자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