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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우화

: 세상을 읽는 이야기

서정오 | 보리 | 2017년 10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6.0 리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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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02g | 128*188*20mm
ISBN13 9788984289802
ISBN10 8984289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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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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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말 잘 듣는 청개구리가 살았습니다.

이 대목을 듣고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테지요.
“말 잘 듣는 청개구리가 아니라 말 안 듣는 청개구리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어머니 말뿐 아니라 모든 어른들 말을 다 잘 듣는, 아주아주 착한 청개구리 이야기랍니다.

청개구리는 정말로 어른들 말을 잘 들었습니다.
“말을 들어라, 말을 들어. 어른이 뭐라면 말대꾸하지 말고 다소곳이 들어.”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청개구리는 말 잘 듣는 일이 아주 몸에 푹 배었습니다.
“공부해라, 공부해. 빈둥거리지도 말고, 딴 생각도 말고 죽자 사자 공부만 해.”
그러면 청개구리는 공부를 했습니다.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어른들 말을 어길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겨라, 이겨. 다른 청개구리와 겨뤄서 무조건 이기란 말이야.”
그러면 청개구리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했습니다. 남과 겨루는 일은 괴롭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어른들이 시키는 일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겨루어 이기면 상을 받고 지면 벌을 받았지요.

그런데 참 견디기 힘든 것은,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동무를 적으로 삼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무를 적으로 삼는 일은 차마 할 짓이 아니었기에, 청개구리는 겉으로만 그러는 척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청개구리가 속속들이 말을 듣지 않은 단 한 가지였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청개구리는 동무들과 함께 나뭇잎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지며 나뭇잎 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청개구리는 동무들과 함께 배에서 내려 헤엄쳐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청개구리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리고 물살은 점점 더 세어졌습니다.
청개구리는 그래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착한 청개구리는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이 험해졌습니다.
착하디착한 청개구리는 그래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폭풍우가 멎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청개구리들은 말 잘 듣는 착한 청개구리를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청개구리 어머니는 강가에 나가 자식 이름을 부르며 슬피 울었습니다.
말 잘 듣는 착한 청개구리도 물속에서 넋이 되어 슬피 울었습니다. 말 잘 들은 것을 뉘우치며 울었습니다.
“차라리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될 것을…….”

그 뒤로 비만 오면 수많은 청개구리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말 잘 듣다 저세상으로 간 착한 청개구리를 그리며 울었습니다. 뉘우치며, 뉘우치며 울었습니다. 말 잘 들은 것을 뉘우치며, 말 잘 들으라고 다그친 것을 뉘우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청개구리 울음소리는 온 세상을 가득 메웠습니다.
누군가 시끄럽다고 짜증을 냈지만, 그 소리는 곧 크고 우렁찬 울음소리에 묻혔습니다.

요새도 비만 오면 청개구리들은 웁니다.
말 잘 들은 것을 뉘우치며, 말 잘 들으라고 다그친 것을 뉘우치며 웁니다.
---「‘원본’ 청개구리 이야기」중에서

“남보다 더 똑똑해지려고 힘껏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뒤처지는 사람이 생기는 법, 남을 뿌리치고 저만 앞서가면 죄가 되지. 적은 밑천으로 큰 이문을 얻으려고 밤낮없이 일하다 보면 반드시 손해 보는 사람이 생기는 법,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저만 잘 살면 죄가 되지. 사람을 잘 다스리려고 상 주고 벌 주는 일을 어김없이 하다 보면 반드시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법, 남에게 원망을 사고 저만 귀하게 되면 죄가 되지. 싸움터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다 보면 반드시 죽는 사람이 생기는 법, 남을 죽이고 저만 살면 죄가 되지.”
염라대왕은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는 남보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네. 그러니 자연히 남을 뿌리칠 일도 없고 남에게 손해 입힐 일도 없고 남에게 원망 살 일도 없고 남을 죽일 일도 없었지. 죄지을 일이 도무지 없었단 말일세. 저 네 사람에게 견주면 깨끗하고 깨끗한 사람이지.”
---「저승에 간 다섯 사람」중에서

하루는 백성 원숭이 한 마리가 왕을 찾아가 하소연했습니다.
“대왕님,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 백성들은 한 해에 과일 열두 상자를 세금으로 바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벼슬하는 원숭이들은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더라고요. 위대한 경전에도 ‘하늘 아래 모든 원숭이는 평등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경전 말씀을 함부로 어겨서야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원숭이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전에 ‘하늘 아래’ 모든 원숭이가 평등하다고 했지. 어디 ‘하늘 위’ 원숭이까지 평등하다고 했더냐? 그렇게 위아래도 없이 살아서야 우리가 멧돼지 무리보다 나을 게 무엇이냐? 백성 원숭이가 태생이 천하여 하늘 아래 원숭이라면, 벼슬하는 원숭이는 태생이 고귀하여 하늘 위 원숭이니라. 그러니 세금을 똑같이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왕은 백성들 세금을 과일 열다섯 상자로 올렸습니다.
---「원숭이 왕의 경전 풀이」중에서

사나이는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먹지도 못 하고 잠도 못 자고, 손발이 부르트고 허리가 휘도록 일했습니다. 불평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너무나 바빠서 그렇습니다. 마침내 사나이는 지쳐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어도…….”
---「시간이 없는 사나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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