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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볼테르

루소와 볼테르

: 인류의 진보적 혁명을 논하다

푸른들녘 인문교양-018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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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98g | 148*210*15mm
ISBN13 9791159252860
ISBN10 1159252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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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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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나는 1694년 11월 21일에 파리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이름은 프랑스와-마리 아루에(Francois-Marie Arouet)예요. 어렸을 때부터 시와 연극에 재능을 보였는데, 실용적인 것을 좋아했던 나의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실망하여 나의 장래에는 기대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출세하는 첩경은 성직자가 되든가 법관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였거든요. 나는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과대학에 들어갔지만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고, 무신론과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탕플(Temple)’이라는 귀족들의 문학 살롱에 드나들면서 종교와 도덕을 비웃는 일에 열중했지요.
171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아들이 너무 어려서 필립 공이 섭정을 하게 됩니다. 이때 파리는 환락과 부도덕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나는 사회를 비판하는 시를 썼고 그것 때문에 바스티유 감옥에 구금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는 볼테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진짜 시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의 장편 시 「앙리아드」가 완성되지요. 왕정은 나의 무죄를 인정하고 석방한 후 연금까지 지급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나는 무대로 덤벼들었습니다. 나의 희곡작품 「오이디푸스」가 성공하자 나는 기고만장해졌고 그것 때문에 귀족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결국 어떤 귀족과의 결투 사건에 연루되어 나는 영국으로 추방되었지요. 영국에 3년 동안 머물면서 나는 영국의 사회제도와 이념을 배워 『철학서간』이라는 저술을 통해 조국 프랑스의 발전에 공헌하려 노력했습니다.
_〈사랑과 모험의 시절_철학자들의 청년기〉

루소: 나는 1712년 6월 28일에 제네바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글을 알면서부터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열 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사소한 일로 군인과 다툰 후 구금이 두려워 나를 외삼촌에게 맡기고 니용으로 떠났습니다. 외삼촌은 나를 그의 아들과 함께 보세에 있는 랑베르시에 목사에게 보내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곳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나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배웠어요. 교육이 끝난 후 직업을 얻기 위해 여러 곳에서 일을 배웠으나 하나의 목표를 꾸준히 추구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냄비 뚜껑을 열고 오줌을 싸는 장난도 했고, 수습공이 되어서는 좀도둑질도 했지만 책을 빌려 읽는 데 빠져들면서부터 그런 장난은 더는 하지 않았습니다. (…) 나는 다시 바랑 부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인은 나를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에 보냈습니다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나의 성격이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라틴어 공부에 잘 맞지 않았거든요. 그 후 부인은 나를 교회음악학교에 보냈는데 나에게는 음악적인 재능이 잠재해 있었나 봅니다. 연주는 물론 음악 이론도 빨리 습득했고, 작곡까지 하게 되었거든요. 음악을 배운 후 집에 돌아오니 부인은 파리에 가고 없었습니다. 나는 로산느를 비롯하여 이곳저곳 방랑하면서 음악교사 행세를 한 후 파리에 들렸다가 다시 샹베리로 거처를 옮긴 바랑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20세가 된 나는 이때부터 13살 연상인 바랑 부인의 애인이 되어 과학실험에도 참여하고 독서도 열심히 했는데, 이 시절이 나의 일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_〈사랑과 모험의 시절_철학자들의 청년기〉

볼테르: 페르네에서 멀지 않는 곳에 프랑스의 도시 툴루즈가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이 우세했으므로 이 도시에서도 가톨릭 신부들이 모든 권리를 장악하고 있었지요. 이 도시에 칼라스(Calas)라는 선량한 신교도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딸이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1761년 10월 어느 날 밤 그의 큰아들이 아버지의 가게에서 목매어 자살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자살은 죄악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자살자는 벌거벗겨 수레에 매어 거리로 끌고 다니다가 교수대에 매달아놓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이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아들이 자연사한 것으로 증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가톨릭 쪽으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아버지와 작은 아들이 큰아들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가톨릭 신도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칼라스와 작은 아들은 체포되었고 살인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었지만, 당시는 툴루즈 사람들이 신교도를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아들은 추방당했고, 칼라스 자신은 고문을 당한 후 바퀴에 매달려 으깨져 죽는 가장 처참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살아남은 그의 둘째 아들이 박해를 받다가 페르네로 도망쳐 나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박해의 이야기를 듣고 경악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의 해명을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었고, 그 실천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명쾌한 전말서를 인쇄하여 친구들에게 돌렸고 영향력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칼라스의 부인을 파리로 보내 청원하게 했고요. 교회는 나를 회유하려 들었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쓰는 모든 편지의 끝에 “파렴치를 분쇄하라!(Ecrasez l'imfae!)”라는 말을 삽입했습니다. ‘파렴치’란 광신을 의미합니다. 결국 3년간의 투쟁 끝에 이 사건이 파리에서 다시 취급되어 지난날의 판결이 번복되었습니다. 칼라스의 아이들은 자유를 얻었고, 나는 친지들로부터 거두어진 성금으로 이 가족들의 장래를 보살펴주게 되었지요. 칼라스의 사건은 전 유럽을 통해 알려지고 나는 미소를 띨 수 있었습니다.
_〈영광의 박수를 보내다_철학자들의 후반기〉

칸트: 솔직히 말해서 볼테르 선생님의 책보다는 루소 선생님의 책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소 선생님의 책 가운데서도 교육소설 『에밀』이 가장 감동적이었지요. 나는 매일 규칙적인 일과를 정해놓고 기계처럼 정확하게 실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산책 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바늘을 맞추기도 했지요. 그런데 『에밀』에 얼마나 빠졌는지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산책 가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내 일생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나는 무식한 사람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평범하고 소박한 인간이 중심이 되는 민주적인 사회에서만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마디로 루소 선생님으로부터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거예요. 나는 루소 선생님의 초상화를 서재에 걸어놓기까지 했습니다. 볼테르 선생님의 칼라스 이야기는 신문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행동하는 철학자이셨지요. 또한 나는 볼테르 선생님의 『철학서간』을 읽고 영국의 철학, 특히 로크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볼테르 선생님의 『관용론』은 훗날 종교 문제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_〈영광의 박수를 보내다_철학자들의 후반기〉

루소: (…)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이 불평등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선 두 가지 종류의 불평등을 구분했습니다. 자연에 의해 정해지며 연령이나 건강, 체력, 정신, 혹은 영혼의 상태에서 생기는 자연적 혹은 신체적 불평등과 일종의 약속 혹은 사람들의 동의에 의존하는 도덕적 혹은 정치적 불평등입니다. 정치적 불평등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로 얻은 모든 특권, 예컨대 다른 사람들보다도 부유하다든가, 존경 받고 있다든가, 권력을 갖고 있다든가, 더 나아가서 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등의 특권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반자연적 성격을 지닙니다. 자연적 불평등과 더불어 태어난 인간은 물론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발생하지 않았던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선하므로 소박한 덕이 지배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만족하면서 타인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투쟁하는 상태가 아니라 누구나 자유로우며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낙원의 상태였지요.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이해관계에 눈을 뜨게 하여 소유의 개념을 낳게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기심은 인간과의 교제에서 오는 이차적인 것이며,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선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은 소유의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 결국 개인의 이기심과 이에 동조하는 무력한 인간들의 방관에 의하여 토지가 분할되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면서 인간이 행복했던 자연 상태는 종식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남을 희생시키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없게 된 거예요. 주인과 노예가 발생하고 폭력과 약탈이 자행되었으며 인간은 소유욕과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져 간악한 존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홉스가 말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늑대’의 상태가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재빨리 토지를 점거한 부자들은 투쟁의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묘안을 짜냈지요. “우리는 뭉쳐야 한다. 그래야만 토지를 빼앗기지 않는다. 우리는 힘을 합해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수행할 정치권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누구나 자기의 소유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권력기관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_〈인간의 불평등_자유냐 소유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에서

오이저만: 나는 국제포이어바흐학회에서 강물 선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부탁을 물리칠 수 없어 발언하겠다고 했는데요. 나는 『역사적 범주로서의 소외』라는 책에서 소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소외란 인간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어떤 대상으로부터 적대감을 느끼게 되는 심정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루소가 말하는 문명으로부터의 소외,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종교로부터의 소외, 맑스가 말하는 생산물과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모두 이러한 의미를 지닙니다. 포이어바흐의 경우가 소외과정을 잘 설명해주는데요. 유한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에서 오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무한한 신을 만들어내어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했는데 점차 신이 독자화하여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많은 소외를 느끼고 있으며, 소외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학자들도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 학자들은 소외의 원인을 인간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성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내야 하고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나 대상은 그 필요성이 감소되거나 그 수요가 늘어날 때 필연적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사회주의 학자들은 소외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서 찾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과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신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가 무너지고 사유재산이 폐기되면 인간의 창조적인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소외가 점차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_〈인간의 불평등_자유냐 소유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에서

루소: 교육자의 역할은 아동들이 가능한 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을 계발하도록 도와주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야 합니다. 모든 악과 오류는 인간의 제도를 통하여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동들의 성향은 이성보다 감정이나 정열에 의존하기 쉬우므로 조급하게 이성적인 사고를 강요하면 안 됩니다. 나쁜 정열과 좋은 정열의 구분은 원래 없습니다. 정열이 인간을 지배할 때는 나쁘지만 인간이 정열을 억제할 때에는 거의 모든 정열이 좋은 것으로 간주되지요. 아동들에게 놀이하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동들로 하여금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을 파악하고 거기에 순응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교육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_〈교육의 본질_교사의 역할과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

볼테르: (…) 나는 모든 역사에서 공통적인 하나의 발전 요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인류의 문명사 전체를 한 가닥의 실로 꿰뚫을 수 있는 통일 원리를 추적한 거예요. 이러한 원리를 추적하면서 기술되는 역사란 제왕들의 역사가 아니라 민중이 중심이 된 사회 세력의 역사이며, 한 나라의 국민보다 인류를 안목에 두고,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진전을 다루는 역사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각 민족의 풍습과 정신에 관한 연구』(1756)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서 내가 ‘역사 철학(Philosophie de l'Historie)’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철학자만이 참된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역사의 발전에서 신의 개입이나 기적 또는 우화 같은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역사 발전을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자연적인 방식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역사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항상 어떤 법칙에 따라 변화합니다. 역사를 변화시키는 주요 요인은 자연, 제도, 인간의 이성입니다. 종교는 정치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문화가 발전되면서 나타난 일종의 사회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 나의 역사 철학은 이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어요. 나는 모든 민족의 갈등과 몰락을 신의 섭리로 보는 기독교 중심의 역사관에 반대하여 인류의 발전을 유대인 이전부터 설명하고, 종교의 기원을 고대 동양 민족에서 찾았습니다. 신에 의해서 선택된 유대 민족이 역사의 시발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고대 동양, 곧 중국이 역사의 시발점이 되며 서양은 중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종래의 역사관에서 주(註)로 격하되었던 중국, 인도, 페르시아의 역사와 종교가 이제 역사 고찰의 중심적인 텍스트로 들어섰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모든 기독교 교리와 기독교 역사관은 빛을 잃었으며, 유럽 문화는 세계 문화의 한 요소로 떨어졌습니다. 중국에 대한 나의 서술엔 성서적인 창조의 신화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간접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시도를 감행하는 데 있어서 내가 내세운 논거는 야만 대신에 문명의 편을 든다는 것입니다. 나는 중국의 역사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사건들보다 더 오래되었고 방자한 유대인의 역사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의 역사를 더없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역사로 낙인찍었지요. 잔인했던 유대 민족의 역사에 비해 중국의 역사는 말할 수 없이 고귀합니다. 나는 침실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유대인의 선지자보다 훨씬 더 위대한 현인으로 존경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역사관을 유럽인은 용서할 수 없었고, 파리의 학자들과 성직자들의 증오는 날로 높아갔습니다.
_〈역사 철학_인류의 역사 연구에 철학이 필요한 까닭〉

볼테르: 미래의 철학은 보편적인 이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경제·문화를 주도해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편견을 분쇄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세계 평화를 달성하는 데 전념해야 하며 철학은 그것을 위한 이론적인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일동 우레 같은 박수)
루소: 빈부의 격차,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갈등이 사라지고 인간이 인간답데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철학·교육·예술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나는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라는 김남주 시인의 시를 듣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이 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어 하나의 조국 안에서 시인들이 즐거움을 노래하기를 빕니다. 시인들은 물론 철학자들도 항상 민중의 편에 서서 역사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가리켜주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_〈에필로그_미래의 철학〉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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