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어도 믿기지가 않아 이건은 숨을 멈추고 눈을 슴벅였다. 연화는 굳어 있는 이건의 손바닥 위에 꼭 쥐고 있던 부절을 올려놓았다. "기억하시지요? 이것을 제게 주며 하셨던 말씀 말입니다. 이것은 국인의 태대형이 아닌 고이건이란 한 남자가 공주가 아닌 대연화에게 주는 보호와 충성의 징표라 하셨지요. 절 공주가 아닌 한 여자로만 봐 준 것은 태대형이 처음이었어요. 저 자신조차도 제가 공주이기 전에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공주라는 것은 제게 주어진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 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은애하고 있습니다. 태대형이 아닌 고이건이라는 한 남자를……. 공주가 아닌 대연화라는 여자로서 은애하고 있습니다."
"제가 태대형이 아니더라도, 동생의 손을 놓아 버리고 어머니를 미치게 만든 원죄를 진 죄인이라 해도 절 은애한다는 말입니까?" 가슴이 시큰거리고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처럼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태대형이 아닌 그를 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부와 명예, 권력의 허울을 벗어 버린 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지독한 운명이었을 뿐이에요. 결코 태대형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뿐입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주는 벌은 이제 그만 하셔요. 어머님도, 아우님께서도 원치 않으실 거예요." 빛에 반짝이는 물기에 가슴이 아려 연화는 이건의 눈가를 손끝으로 쓸었다. 이건의 그 손을 잡고 입가로 끌어당겼다.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태대형이 아닌 제 이름을 말입니다."
"……이건."
▶ 이 전자책은 2007년 4월 출간된 나비 『파애 2』를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