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퍼펙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잠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 엄마도 따라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점 몸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가 받은 모든 것들이 전부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평균’을 견딜 수가 있지? 퍼펙트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긴 했지만, 이제 어느 거인도 자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퍼펙트의 인생은 엄마를 기쁘게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 p.25
양육자의 감정 상태나 행동 때문에 아이가 계속해서 비난을 받고,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방법도 없이 혼자서 양육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부적절한 수치심과 부적절한 죄책감이 모두 커진다. 이런 아이들은 ‘내가 더 똑똑하고, 더 강하고, 더 사랑스럽기만 한다면 우리 부모님은 술을 덜 마시고 행복해지고 우울해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 p.52
자이언트는 자기중심적이고 강인하며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자이언트의 행동이 변장의 겉모습이라면 카멜레온이 자신을 방어하려는 모습은 그 옷의 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이언트는 카멜레온에게, 카멜레온은 자이언트에게 각자 상대방이 가장 갖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자신을 감추려고 입은 변장은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부적절한 수치심의 옷감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퍼펙트의 수치심은 또 다른 변장을 입고 있었다. 카멜레온의 비현실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수치심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또 자신의 결점을 보상하려고, 퍼펙트는 늘 완벽함을 찾아다녔다. 물론 이렇게 완벽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고 만다. 애초에 ‘완벽’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61
많은 사람들이 심한 수치심 때문에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려고, 또는 자율성을 얻으려고 일을 미루는 버릇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목요일까지 제출해야 할 숙제가 있다고 해보자. 어린 시절 잘 해보려고 한 일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거나 숙제를 엉터리로 했다고 심한 잔소리를 들어서 자신이 무능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가진 채 자랐다면, 자신이 숙제를 잘 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수요일 밤까지 숙제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때까지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에서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 p.82
정상적인 죄책감을 느낄 때는 벌을 받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죄책감을 느낄 때는 끊임없이 스스로 벌을 주고 박탈을 안겨도 그것은 결코 제대로 벌을 받는 것이 될 수 없다. 자기 생일에 엄마에게 선물을 한다 해도,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퍼펙트가 느끼는 수치심이 보상받을 수는 없다. 거절당했다는 기분 때문에 화가 나는 것도 보상받을 수 없고, 화가 나는 것에 따르는 죄책감도 보상받을 수 없다. 수치심은 변함없었고, 죄책감도 마찬가지였다. --- p.121
수치심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커플들이 다툴 때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에 자신의 존재가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다툼에는 승자나 패자가 있고, 옳고 그름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투는 이유에 견주면 두 사람의 감정은 너무 격하다. 누가 개에게 먹이를 주는가, 치약을 짜는 방법이 옳은가 그른가를 가지고 싸우고 며칠씩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커플들을 본 적도 있다. 논쟁의 해결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이 사람들의 논쟁 이면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논쟁이 있다. “내가 틀리지 않도록 당신이 내 관점을 공유해주는 것이 필요해. 내가 처한 현실을 당신이 인정해주면 좋겠어. 틀린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나는 옳았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어. 당신이 나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나는 어떤 의견이나 감정도 가질 수 없어." --- p.144
수치심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난받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재빨리 배운다. 이런 환경에서 타협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반드시 한 사람은 감정적인 상처를 받아야한다. 상대방이 틀리거나 자기 자신이 틀려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적절한 수치심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실수는 ‘자기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체’이다. 비난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은 이미 상처받은 자아가 더한 상처를 입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다. --- p.154
자기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 버려진 부분을 드러낼 만큼 다른 사?을 충분히 신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성적 학대로 고통받은 사람이 학대받은 일을 배우자와 공유하려면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자기 입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시 듣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에게 인정받으려면 수치스러운 감정과 그 감정에서 오는 행동의 고통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감춰온 가면의 크기를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 그 가면을 보고, 그 아래 있는 고통을 알게 된다면 다시 그 가면을 쓰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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