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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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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 가하 | 2011년 08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2 리뷰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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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10g | 128*188*30mm
ISBN13 9788997081448
ISBN10 899708144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간단하게 끼니를 챙겨먹은 뒤 예쁜 연보라색 치마와 당의로 갈아입고 경대 앞에 앉았다.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며칠간 지하 치료실을 오간 것이 전부인 터라 내 얼굴은 유난히도 희었다. 핼쑥해져 살도 조금 빠진 여윈 얼굴. 평소보다 병약미가 넘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도 예쁘니까. 화려하게 치장을 하면 선이 또렷해져서 그 미모가 도드라지고, 꾸미지 않으면 순수하고 청순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한참이나 감상하고 음미했다.

“아, 아씨! 저기에 사람이!”

연주가 뻣뻣해진 뒷목을 잡으며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어디에 사람이 있는데?”

연주는 창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창 밖에는 까마득한 절벽의 비경밖에는 없을 텐데?
그때 열린 창 너머에서 시커먼 머리통 하나가 불쑥 튀어 올라왔다. 내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오, 옴마야아아아!”

놀란 연주가 기겁을 하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연주를 경악시킨 머리통의 사람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어깨 아래로 머리카락을 멋대로 늘어뜨린 하얀 얼굴의 남자는 낯이 익었고 그의 등에는 익숙한 흑검이 매달려 있었다.

“이호?”

흑의를 입은 그가 긴 몸을 기울여 내 호화로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너무 놀라 손가락질을 하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호의 얼굴은 기억하던 것보다 살이 빠진 듯 턱선이 더 날카로워져서 볼은 퀭했고 눈빛조차 날카로워 한 자루의 잘 벼린 검을 보는 느낌이었다.
뻔질이 같은 놈이 입을 열었다.

“빚을 받으러 왔소. 잊지는 않으셨겠지?”

“빚?”

기억을 더듬다가, 날 구해주면 이호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끄응. 헌데, 분명 놈이 날 업고 이동한 기억은 있는데 그 뒤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 추면괴호도 답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날 칠독문으로 데려온 건 이 뻔뻔한 놈이 아니었다.

“날 구한 건 너지만 이곳으로 데려온 건 추면괴호 쪽이야.”

이호 역시 뭔가를 떠올린 듯 제 무릎을 쳤다.

“아, 그 괴물 말인가?”

추면괴호는 괴물인 건 맞다. 허나 이호의 입에서 그리 들으니 기분이 나빴다.

“괴물이 아니라 내 남편이야.”

그 말을 들은 척 만 척 이호는 자연스럽게 내 침상 위로 올라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놈은 흑검을 풀어 침상 옆에 가지런히 세워두기까지 했다. 대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저 검 챙겨서 얼른 나가!”

“빚을 돌려받기 전에는 나가지 않을 거요.”

“그럼 저 검이라도 치우라고!”

“어차피 날도 서 있지 않은 쇳덩어리고 나밖에 쓸 수 없는 물건이니 상관없지 않소?”

그 말투 하나하나가 내 속을 무진장 긁는다! 연주나 아버지보다 더한 놈이잖아, 이거!
더 놀라운 일은 잠시 후에 벌어졌다.
무단 침입자 놈은 내 침상을 자연스럽게 무단 점거하더니 배를 깔고 드러누웠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내 시녀들조차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계속 힐끔대는 연주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녀들에게 먹을 것을 부탁했는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시녀들이 이호를 훔쳐보며 얼굴을 발그레 붉히더니 후다닥 단체로 장지간으로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이호 놈이 대체 뭐기에 간이라도 빼어줄 것 같은 얼굴들이 된 거지? 언제는 추면괴호가 헌신적이어서 좋다더니?
진수성찬을 차리러 간 것인지 돌아오지 않는 시녀들을 기다리다 못해 그는 내 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기가 막혀서 이호 놈의 긴 팔다리를 끌어내리려고 해도 천근추(千斤墜)라도 단 마냥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한다. 잠시 깨어난 놈은 피곤해서 자야 하니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다. 아, 돌겠다!
시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산해진미를 차려 왔을 때에야 놈은 부스스 일어나 아예 내 침상에서 밥상을 받았다, 맙소사!
이젠 괴물 남편으로도 모자라 빈대 손님?
고난 끝에 낙이 온다더니 이건 첩첩산중에 끔찍한 점입가경이다.
이호란 놈을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니, 죽일까? 아니지. 추면괴호를 세 번이나 죽이는 동안 독살에는 되레 넌더리가 났다. 특히 이호란 놈은 혈성마검인가 하는 몽국 최고의 파괴무공을 펼칠 수도 있으니 칠독문을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뒤덮고 싶지 않으면 이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다만 보고 당하는 입장에선 부아가 치민다. 언제까지 내 처소에 방치하고 방목시켜 키울 수도 없지 않은가.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이호는 다시 내 침상으로 돌아가 깊은 잠이 들었다. 시녀들은 사지를 뻗고 잠이 든 불한당에게 감탄을 표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연주는 그가 깰세라 깨금발로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아씨, 저놈-아니, 저 대인은 또 무엇입니까요?”

연주는 괴물 신랑 대신 다른 놈을 벌써 꿰찼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니거든?

“너나 다른 애들이야말로 왜 저놈에게 공손한 건데!”

연주가 얼굴을 붉혔다.

“훈남이지 않습니까? 물론 유강 공자님보다야 미모는 떨어지십니다마는, 저희가 보기엔 유강 공자님보다 더 사내답고 훤칠해 보이시는 것이.”

시녀들이 단체로 얼굴을 붉히는 걸 보자 내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유강처럼 사근사근하게 생겨야 제 맛이지! 저건 너무 남자답게 딱딱하게 생긴 얼굴이잖아! 아아, 내상이 악화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너무 기분이 나쁘다.
그래, 차라리 저런 핏기 없는 면상을 보고 있자니 붕대 아래 숨겨진 추면괴호의 얼굴을 추리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이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건 그 후로도 한참 뒤. 저녁이 다 된 시간이었다.
저녁까지 한상 거나하게 차리겠다며 약재를 잘 먹여 통통하게 살을 찌운 오리를 잡아 상에 올려주겠다는 연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별을 고했다. 그래, 잘 가라. 가!
어디로 가려는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이 들어왔던 팔각창으로 다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이다.

“어디로 가는 건데?”

“알 것 없소이다, 홍 소저. 다시 오겠소.”

“언제?”

이호가 하얀 얼굴을 갸웃거린다.

“글쎄, 아마도 내킬 때. 자주는 못 오겠지. 잘 쉬었소.”

가겠다는 말과 달리 또 그는 한참이나 멀뚱히 서 있었다. 뭔가를 바라는 눈치로. 그가 유심히 내 얼굴을 보더니 교만하게 손짓을 했다.

“잠깐만.”

이호의 앞으로 다가가니 놈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뭐가 묻은 것 같소.”

그가 내 얼굴을 손가락질했다. 얼굴을 아무렇게나 닦아내보아도 하얀 분가루밖에 묻어나오지 않았다.

“거기 말고 그 옆에.”

이호가 내 얼굴 가까이 접근해오며 유심히 날 살피고 있다. 얼굴에 뭔가 묻은 것 같지 않은데 뭐지? 놈의 눈동자는 빛도 없이 무저갱 같은 까만색이다. 뭔가 낯익다는 느낌이 들기도 전에. 놈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다.

“뭐, 뭐야!”

그가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우악스럽게 입을 맞춰왔다.
으아악! 이놈 대체 뭐야!
한참이나 놈을 떼어내려 실랑이를 벌였지만 이 인간!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빨판 붙이듯이 흡착시키고 있었다. 왜 안 떨어지는 거야앗!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데 힘마저도 세다. 아악! 이놈, 왜 하필 내 입속에서 혀를 돌리고 있는 거냐고! 네 거 아니잖아! 왜 맛보는 거냐고!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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