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도안 아저씨의 배를 탔던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되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던 남부정부 밑에서도 서로 목숨까지 나누며 살았는데 정작 사회주의로 통일을 한 나라에서 그 어떤 자본주의에서보다도 더 지독하게 제 몫만을 챙기는 세월을 살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쩌우는 도안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이 어른거려 눈을 질끈 감았다. “세월이 그렇게 된 걸 어떻게 해요.” --- p.32~33
159번으로 올라온 린은 축하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기막힌 축하였다. 미친 세월이지 않고서야 이게 어떻게 축하를 받을 일인가. 비참한 부러움과 끔찍한 기다림이 교차하는 박의 눈동자는 바다처럼 흔들렸다. 열일곱 살 딸을 기다리는 남자는 두터운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박의 아내는 손에 쥔 묵주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 “추웠을 거예요.” 투이가 옮겨주는 말이 그의 귓전을 지나쳤다. 악몽보다 더 혼란스러운 밤이 지나갔다. --- p.50
“어르신, 이건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고 돈만 벌어먹으려는 회사가 배를 불법으로 개축해서 평형수를 줄이고, 과적을 하고, 나라가 그걸 관리하지 않아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배를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자기들만 도망치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던 승객들을 나라가 구하지 않아 304명의 국민이 희생된 사건이에요.”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한 번 더 찬찬히 읽어야겠다. 소설 『세월』은 ‘세월호’라는 한국의 당대사 최대 비극을 지적하는 그늘에서 동아시아적 삶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 실화의 서술행위에서 문학의 허구를 사절해야 할 또 다른 현실의 재현을 지향한다. 작가 방현석의 과묵을 찢어낸 이 작품의 혈친적인 문체는 시대가 양심을 은유에 갇히지 않게 하는 정치적 응급의식과 인간 본연의 체온이 어우러지게 한다. 작가는 이것을 쓰는 동안 내내 울었다. 이 소설의 교정쇄를 읽는 한나절 내내 내 눈시울도 붉었다. 1960년대 말의 베트남전 끝 무렵 나는 생전 처음의 해외여행에 나섰다. 최인훈과의 동행이었다. 그로부터 30년 뒤의 전후 베트남 방문이 방현석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의 포괄적인 아시아 의식의 단초였다. 이 소설은 불가결의 소재와 불가피한 결정(結晶)으로 이루어진 한국 소설이자 베트남 문학이기도 하다. 내가 나중에는 울음판이 될 막걸리 술상을 차리겠다. 소설 속 맹골수역 시체유무의 ‘축하한다’라는 처절한 표현을 떠올리며 이 소설 『세월』을 축하한다. 고은(시인)
엄마는 희생자. 아빠와 오빠는 미수습자. 그리고 세월호에서 홀로 살아 돌아온 다섯 살 아이. 이 아이가 멋진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이 소설이 그런 마술을 부릴 수 있기를...!! 유경근(예은 아빠/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