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잖아. 사랑, 평화, 용서, 이게 도대체 오늘 우리 사는 세상에서 무슨 소용이야. 안 그렇소?” “…….” “게다가 설상가상 십자가? 희생?” 민규가 확인한 김인철의 표정엔 진심 어린 역겨움이 묻어 있었다. 그 대상이 누굴까. 누구를 향한 역겨움일까. (p. 61)
‘하나님이 나의 길을 더 강한 곳으로 나아가게 이끄시는 거야. 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의심하지 않아. 결코.’ 민규는 가증스럽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파혼을 통보했다. “정은아, 여러 날을 고민하면서 기도했어. 결국 너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았지. 이건 말이지…… 우리 둘 모두, 서로가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 그러니 우리 헤어지는 걸로 생각하지 말자. 서로 더 좋은 길로 나아가는 신의 뜻에 뜨겁게 순종하는 길이라고 믿자. 그렇게 믿어보자, 정은아. 우리 그렇게 믿자.’ --- p.112~113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하셔야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신애원?” “이곳과 교회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곳의 아이들을, 구원해야 해요. 그럼 교회도 구원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요? 구원이라니.” “목사님은 지옥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예요. 절망조차 사치스러운, 숨 쉴 수 있는 어떤 통로도 막혀버린. 이곳보다 더한 지옥은 없어요. 이곳은…… 하나님도 버린 곳이에요.” --- p.131
“그렇지만 어느 정도 때를 묻히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특히 이런 아이들처럼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들에겐 인권, 평등, 자유를 앞세우는 이상주의보단 한 끼의 밥과 하루의 잘 곳이 더 절실해요. 그게 친구를 칼로 찌르고 친구 몸에 불을 지르고도 계속 이곳에 남아 먹고 잘 수 있는 힘이에요. 아시겠어요?” --- p.223
“우릴 이렇게 아프게 한 사람들을 벌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이 하는 거라고.” “핑계 대지 마. 아저씬 지금 도망치고 싶은 거야.” “뭐?” “아저씬 우리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애들과 엮이고 싶지 않은 거야. 내 말 틀렸어?” --- p.226
“부활의 믿음이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이요!” “입 닥쳐!” “…….” “그런 믿음은 없어! 그런 하나님, 없단 말이야!” 기도하던 교인들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민규가 그들을 향해 절규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쏟아내고 또 쏟아내 외쳤다. “너희들의 하나님은 미쳤어. ……악마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퇴장해버린…… 진짜 나쁜 하나님이라고!”
작가 주원규는 한국 교회의 심장을 향해 곧바로 육박해 들어간다. 예수의 피가 아니라 돈, 권력 그리고 병든 역사 인식으로 움직이는 괴물이 된 한국 교회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다. 이들의 동맹 세력은 ‘나쁜 하나님’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탐욕이 여기에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또 하나의 에덴동산 이야기와 마주한다. 타락을 넘어서는 아담과 하와를 기대하며. _김민웅 (목사,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나쁜 하나님’, 제목처럼 이 소설에 ‘주의’ 카드를 듭니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야말로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소설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추천합니다. 더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너머에 있을 ‘희망, 치유, 소망’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_강도현(뉴스앤조이 대표)